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미래 Nov 15. 2024

네 잎클로버

리한나 - take a bow

that was quite a show

정말 멋진 쇼였어.

very entertaning

정말 재미있었어

but it's over now

하지만 이제 끝났어

go on and take a bow

가서 인사해



어릴 때 보컬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연습한 노래를 녹음해서 학원 선생님이 이메일로 보내주곤 했었다. 첫 달은 윤하의 기다리다, 두 번째 달은 이선희의 인연, 세 번째 달은 태연의 들리나요. 묵은 메일함에서 아직도 종종 꺼내 듣곤 한다. 보컬학원은 세 달 정도 다니다가 그만뒀다. 취미로 하는 노래인데 굳이 학원까지 다닐 필요 없다고, 이제 공부 좀 하라고 해서. 초등학교 6학년 겨울 즈음이었다.  학원이라고 하면 치를 떨던 내가 보컬학원을 다니던 삼 개월은 꿈꾸는 것처럼 신나게 보컬학원을 들락거렸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학원 연습실을 빌려 연습했고 과학 시험 용어는 단 일도 못 외우던 내가 연습하는 노래 가사를 달달 외웠다. 눈에 안 들어오는 까만 글자들과 이상한 공식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즐거웠다.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해내는 것도 노력이 가상한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용기 있게 밀고 나가는 일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릴 땐 의자에서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진득하게 앉아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멋있고 강단 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내 안에서 나에게 외치는 실패할 거라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제치고 하고 싶은 일에 온 힘을 쏟고 그 일을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몰두하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하고 용기 있어 보일 수가 없다.


"중학교 올라가니까 이제 공부해!"

그 말에 성적을 올릴 테니 보컬학원을 계속 다니게 해 달라고, 딴짓 안 하고 공부 열심히 할 테니 노래 계속하게 해 달라고 엄마에게 떼를 쓰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왜 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간절하다고, 내가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고 고백하지 못했을까. 13살의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일을 찾은 건 행운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일, 그 일을 하는 나를 보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일,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있어도 짜릿한 성취의 순간을 잃지 못해 그럼에도 계속하게 되는 일. 그런 일을 만나는 건 넓고 빼곡한 잔디밭에서 네 잎클로버를 발견할 확률과 같다. 나는 그날 내 네 잎클로버를 놓쳤다.


리한나의 take a bow는 내 연습곡 중 하나였다. 그즈음 나는 팝송에 꽂혀 있었는데, 학원 선생님이 내 목소리에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연습곡으로 골라주셨다. 아마 그때 리한나라는 가수를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노래를 처음 들어보곤 이런 매력적인 목소리랑 내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선생님의 말을 곱씹으며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했었다. 곡의 가사 중에 '이제 쇼는 끝났으니 인사하고 떠나가.'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삼 개월 간의 나의 네 잎클로버 찾기 여정이 종지부를 찍었던 순간이 생각나는 가사이다. 학원에서 마지막 수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말 그대로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이게 내가 마주한 현실이구나, 공부나 해야 하는 거구나, 재밌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없겠구나, 그런 거구나.





이전 12화 오래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