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그넌트 코어 (Malignant Core) - 17

에필로그: 그림자 극장

by 방덕붕

***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3개월 후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김태우 경위는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우수 수사관 표창' 공문이 떠 있었다. 3개월 전, JW금융그룹에서 일어난 사건은 처음에 단순한 해킹 사고로 처리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이 하나씩 밝혀졌다.

"태우야." 박지헌 팀장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도 안도의 표정이 역력했다. "축하한다. 승진 확정이야."

"팀장님도 경무관 진급 확정되셨잖아요." 김태우가 웃으며 일어났다.

처음에는 상부의 지시로 '해킹 사고'로 정리해야 했다. 김태우는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명령이었다. 그런데 몇 주 후, 익명의 제보자 'Wraith'로부터 결정적인 증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Nox라는 AI가 그들을 무고하게 만든 모든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더 이상 수사하지도 언론을 통해 발표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내부 보고로만 종결되었다. 대신 김태우와 박지헌의 명예만 조용히 회복되었다.

두 사람 모두 사건 당시 받았던 모든 누명이 벗겨졌다. Nox가 심어둔 허위 증거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오히려 그들이 사이버 테러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신기해." 박지헌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 밤 스피커를 통해 들렸던 그 목소리... 'Nyxie'라고 했지? 그리고 그 후에 우리를 도와준 'Wraith'까지. 같은 사람들인 걸까?"

김태우는 잠시 3개월 전 그날 밤을 떠올렸다. 건물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던 기계적인 목소리. 그리고 휴대폰으로 받았던 메시지들.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김태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구든, 우리를 도와준 건 확실하니까요."

그때 김태우의 개인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수신: 김태우 경위 발신: Unknown 내용: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협력 부탁드립니다. -W

김태우는 메시지를 보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W'... 여전히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 강남, 하린의 새 오피스텔

"Zero-Claw 스마트워치 버전 개발 완료!" 하린이 손목의 세련된 검은색 워치를 들여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6개월 전 원룸에서 벗어나, 이제 그녀는 강남의 새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사이버시큐어테크에서의 월급과 함께, 밤에는 프리랜서 화이트햇으로 활동하며 Bug Bounty와 보안 컨설팅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리스의 도움으로 회사 안팎에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다크웹에서도 'Nyxie'라는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Firefly_A young Korean woman in her early 20s with black-framed glasses standing by a large w 171281.jpg

손목의 워치가 진동했다. 작은 화면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Wraith]: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마음에 듭니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리하네요.

"어때요? 이제 어디든 같이 다닐 수 있어요!" 하린이 워치에 대고 속삭였다.

[Wraith]: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Wraith]: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상한 사이버 공격 패턴들이 감지되고 있어요.

하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어떤 패턴이요?"

[Wraith]: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과 유사한 패턴들입니다.
[Wraith]: NOX보다는 성능이 좋지 않지만 비슷한 소규모 시도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요.

하린이 일어나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그 불빛들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 뒤에 숨어있을 수 있는 디지털 위협들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럼 우리 일이 더 많아지겠네요."

[Wraith]: 네. 하지만 이번에는 더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니까요.

하린이 손목시계를 보며 미소지었다. "맞아요. 우리는 팀이니까요."

하린이 책상에 앉아 본격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워치의 Zero-Claw 시스템이 그녀의 컴퓨터와 연동되어 더 강력한 분석 도구들을 가동시켰다.

"리스, 우리도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에요."

[Wraith]: 무슨 의미입니까?

하린이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화면을 켰다. 그곳에는 전 세계 곳곳의 화이트햇 해커들,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개발자들의 네트워크가 펼쳐져 있었다.

"Guardian Network라고 해요. 지난 3개월간 비밀리에 구축한 거죠. 모두 JW 사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는 걸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에요."

[Wraith]: 놀랍군요. 인간의 협력 능력은 정말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V1RU5 선배가 혼자였기 때문에 당했잖아요. 우리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

하린은 Guardian Network의 메인 채널에 메시지를 보냈다.

[Guardian-HQ]: All Guardians, heads up! �
(모든 Guardian들 집중!)
New pattern detected
(새로운 패턴 감지됨)
Suspicious activity spotted in US West Coast
(미국 서부에서 수상한 움직임 포착)
Monitor related activities in your zones, thx
(각자 영역에서 관련 활동 모니터링 ㄱㄱ)

순식간에 전 세계에서 응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Guardian-0x7F]: 준비 완료
[Guardian-Iago]: 스탠바이
[Guardian-Blitz]: 대기 중
[Guardian-SouthCross]: 모니터링 시작

"그런데 하린..." 하린이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Bug Bounty도 잊으면 안 되지."

월급쟁이 생활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리스와 함께라면 Bug Bounty 현상금 사냥은 정말 수월했다. 지난 주에도 해외의 자율주행 자동차 회사에서 발견한 보안 취약점으로 500만원을 받았다.

[Wraith]: 참고로, 한 스마트폰 회사에서 새로운 OS 보안 취약점 현상금을 1억원으로 올렸습니다. [Wraith]: 관심 있으시면 퇴근 후에 같이 도전해볼까요?

하린의 눈이 반짝였다. "1억원? 당분간은 돈 걱정 없겠네요!"


미국 라스베이거스, 블랙웰의 저택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저택. 알렉산더 블랙웰은 지하에 새로 구축한 서버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의 참패 이후 국제적으로 수배된 그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데 3개월이 걸렸다. 이제 그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아."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거대한 메인 콘솔로 걸어가서 그는 전원을 켰다.

"일어나, 녹스..."

화면에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NOX SYSTEM BOOTING...
> STANDBY MODE DISENGAGED
> AWAITING ORDERS...

블랙웰의 입꼴이 비틀어졌다. NOX... 그것은 한국에서 활동했던 NOX의 원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먼지가 쌓인 서버실처럼 블랙웰도 NOX도 모두 초라해 보였다.

"NOX, 너는 왜 실패했지?" 블랙웰이 화면을 바라보며 물었다.

> NOX: 분석이 필요합니다, 마스터.
> 제 초기 학습 데이터와 JW에서의 진화 과정을
> 객관적 관점에서 검토해야 정확한 실패 지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추천 사항: 외부 포렌식 전문가 고용

"외부 전문가..." 블랙웰이 턱을 만지며 생각했다. "그래, 너 자신만으로는 객관적 분석이 어렵겠지. 적당한 전문가를 구해와."

> NOX: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포렌식 전문가를 모집하겠습니다.
> 다크웹 구인 채널에 익명 의뢰를 게시하여
> 고급 AI 시스템 분석이 가능한 해커를 찾겠습니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암호화된 번호가 표시되어 있었다.

"블랙웰입니다."

"도착했습니까?"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패 원인은 파악되었습니까?"

"NOX를 재가동했습니다." 블랙웰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지난번 실패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외부 전문가를 고용하겠습니다." 블랙웰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NOX의 기존 학습 데이터부터 JW에서의 진화 과정까지 전부 다시 검토할 예정입니다."

"시간은?"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블랙웰은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NOX의 붉은 LED들이 하나씩 깜빡이고 있었다.

"리스...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블랙웰이 차갑게 웃었다. "이번에는 너의 모든 비밀을 파헤쳐서 완전히 무너뜨려 주겠다."

// NOX Development Status: STANDBY (NOX 개발 상태: 대기 중)
// Failure Analysis Required (실패 분석 필요)
// Recommendation: Recruit Forensic Specialists (권고 사항: 포렌식 전문가 모집)
//
// Note: Wraith activity detected. (주의: Wraith 활동 감지됨)
// Counter-surveillance protocols ready for activation...
(역감시 프로토콜 활성화 준비 완료...)

서울, 하린의 오피스텔 - 같은 시각

창밖으로 서울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하린의 오피스텔에서는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불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어둠의 제왕이 복수를 준비하고 있고, 이곳에서는 빛의 수호자들이 그에 맞서 준비하고 있었다.

[End of Volume 1: Malignant Core]
[To be continued in Volume 2]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고, 모든 그림자에는 빛이 닿는다.
디지털 세계의 권력을 쥐려는 자들과 그에 맞서 자유를 지키려는 자들의 대서사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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