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rdest thing in the world
오늘은 와이프와 내가 연애를 시작한 지 24주년이 되는 날이다.
와이프와 나는 대학시절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났다. 한때 왕십리(往十里) 인문대 캠퍼스의 퀸카(?)라 불리우는 미모를 자랑했던 와이프는 몸이 약해서 자주 쓰러지는, 중앙 음악동아리에 열정적이어서 과 생활은 별로 안하는, 하지만 노래는 썩 잘하는 후배로 불리웠다.
제대 후 복학을 했던 나는 한창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우연히 들렀던 중문과 학회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탐스런 갈색머리, 와인색 브라우스와 까만 스커트,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하얀 피부의 그녀와 어색한 첫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그 학기 중어중문과 원어연극 준비에 함께 참여하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 졌다.
급기야 2001년 봄, 서로의 미래를 함께 하자는(?) 약속하에 용기를 내어 군인 출신이셨던 지금의 장인어른을 찾아뵙고, 그해 여름 북경에 있는 같은 대학으로 함께 어학연수를 가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로부터 7년 후, 우리는 결혼과 함께 나의 근무지 였던 일본 나고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우리의 첫 아이(아들)가 태어났다.
그 이후에도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우리는 주로 해외에서 결혼생활을 했다. 중국에서는 둘째 아이(딸)도 낳았다. 때론 남들처럼 다투기도 하고, 때론 부쩍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함께 흐뭇해 하기도 했다. 우리가 여느 부부들과 조금 다른 점은 결혼생활을 해외에서만 해서 그런지 늘 함께였다. 더구나 국경과 집밖 출입을 엄격히 봉쇄했었던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시기 3년여간의 시간도 우린 한 집안에서 늘 함께 보냈었다.
어쨌건 24주년 이라는 시간이 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짧지 않은 시간인데, 생각해 보면 우린 연애시절 부터 지금까지 좋은 일 궂은 일을 막론하고 줄 곧 늘 함께 해왔던 것 같다.
엊그제 저녁 우연히 와이프와 함께 재작년 방영했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이혼을 전제로 별거 중인 한 번역작가가 출판사를 경영하는 아내가 대장암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살게되자, 먹는 것을 주의해야한다는 의사의 말에 아내를 위해 요리를 시작하고, 매일매일 그것을 기록하게된다. 병색이 짙어가는 아내를 보살피고 그 아내를 위해 요리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는 내용의, 원래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영상 속에선 아내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둘 만의, 혹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소소한 삶을 담다가도, 중간중간 병마에 괴로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드라마에 빠져들던 중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내 와이프가 어느날 갑자기 병에 걸려 죽게 된다면, 나는 어떨까? 저렇게 담담하게 사실을 받아들이고 아내를 위한 요리를 준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극심한 공포감이 마음속 한 켠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면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이란 어쩌면 돈을 잃는 일도, 명예를 잃는 일도, 직장을 잃는 일도 아닌, 항상 가까운 곳에서 나를 사랑해 주고 지탱해 주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순간이 아닐까?
만약 내가 와이프와 저런 이별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면...
나는 더이상 울음을 참지 못하고 꺼이꺼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문득 옆에서 지켜보던 와이프가 나를 그윽히 바라보며 물었다.
"왜? 니가 먼저 죽을까봐 슬퍼서 그러니?"
…
그때 내 뺨을 타고 흐르던 뜨거운 눈물이… 순식간에 하얗게 말라버렸다
아, 갑자기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