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rother
나에겐 네 살 터울 친형이 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부모님과 함께 한식당을 운영 중이다.
우리는 같은 부모 밑의 한 형제 였지만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형은 어려서 부터 공부엔 별 관심이 없었고, 잡기에 능했으며, 항상 사람들과 어울려지내며 순발력이 매우 뛰어난 편 이었다.
거기에 비해 난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는 조용한 아이 였으며, 누가 뭐라할 필요도 없이 공부도 자기 일도 스스로 잘 찾아 하는 편이었다.
당연히 맏이라는 책임감도 있었겠지만, 그런 성격 탓에 부모님의 질책은 항상 형의 몫이었고, 나는 부모님이 별로 간섭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부모님의 신뢰를 잔뜩 받고 자랐다.
나는 그런 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항상 덤벙덤벙 대고, 무슨 일을 하든 끝까지 꾸준히 하는 법이 없었다. 항상 요행을 바라고, 진지하게 차근차근 무언가를 쌓아가 보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외형적으로도 너무 달라서 형은 항상 뚱뚱하고 둥굴 둥글한 편이었지만, 나는 어릴적부터 깡마르고 좀 예민한 체질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형은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는 빌미로 부모님이 모아두신 돈까지 탕진하기 일수 였고, 심지어 내가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여 모아놓은 돈도 사업자금을 핑계로 빌려가서 갚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런 형을 두고 부모님은 항상 “너만 정신차리고 잘 되면 되는데.”하는 말씀을 입버릇 처럼 하셨다. 그래서 나도 정말 그런 것 인 줄 만 알았고, 마음 속으론 항상 형을 무시했다.
사실 그런 형이 너무 챙피했었고,
원망 스러웠고, 싫었다.
그러던 어느덧 나도 나이를 먹고, 연륜이 느껴지는 몸매가 되었다. 심지어 재작년, 아이들을 데리고 발리 부모님 댁에 왔을 때는 나의 아이들에게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다.
“아빠, 아빠 큰 아빠랑 완전 똑같이 생겼어요!”
“무슨 소리야?! 큰 아빠랑 아빠는 너무 다른데?“
”아니요, 완전 똑같이 생겼는데?“
“…”
결국 핏줄은 속이지 못하는 구나!
나와 형은 서로 닮은 점은 별로 없지만
결국 한 핏줄에서 나온 한 형제 였다.
당장에 사는 모습을 봐도
예전에 부모의 속만 썩히던 말썽쟁이 형은 이제 지점까지 관리하는 어였한 한식당 사장님이 되어 연로하신 부모님의 곁을 지키고 있고,
난 항상 내 아내, 내 아이들을 챙긴다는 핑계로 해외로만 전전 하다가, 지금은 독립해서 아직 제대로된 사업적 기반도 만들지 못하고, 부모 걱정만 끼치고 있는 늦깎이 불효자에 불과하다.
얼마전 아이들 국제학비로 현금이 급하여 발리에 있는 형에게 전화를 건 일이 있다.
“형, 내가 다음달 애들 학비를 내려면 돈이 좀 부족해서…”
이야기를 듣던 형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 내가 바로 보내 줄게. 뭐 또 필요한거 있음 언제든 형한테 얘기하고…”
“…”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에는 누구나 굴곡이 있고,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살기 마련이지만,
형과 내가 살아온 인생 중,
그 누구가 맞고 틀린 것이 아닌,
형과 나는 그냥 달랐을 뿐이라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입장에서,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었을 것을…
나의 옹졸하고 편협한 생각 때문에,
내가 그 동안 형을 많이 오해하고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었구나 하는…
마침 며칠 전 형이 친구들과 함께 자카르타에 놀러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형과 점심 약속을 하고, 오늘 아침 연락하여 만날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형은 “내가 차가 있으니 너희 집 부근으로 갈게. 출발하기 2시간 전에 연락할테니 그리로 나와…” 했다.
아침 일찍 형한테서 연락이 왔고 약속 장소를 정해서 보내왔다.
근데 왠 걸.
약속 장소는 저기 북쪽 자카르타네.
나는 남쪽에 살고 있다고 지도까지 미리 보내줬는데… 이곳 교통지옥에서 아침에 거기까지 가려면 한시간 가까이나 차를 타고 가야했다…
역시… 배려라곤 1도 없는 우리 형 맞네!
우리는 천생 형제인가보다
#형제 #서로다름 #사람은역시안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