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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7-4

by 강정민

7-4.


리우데자네이루, 이파네마 해변에서 두 블록 떨어진 작은 바. 저녁이면 노란 가로등 불빛이 길게 번지고, 문을 열면 숯불에 구운 고기 냄새와 바닷바람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디에고는 언제나 같은 자리, 벽 쪽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등 뒤로는 아무도 서지 못하게 하고, 출입문과 창문이 동시에 보이는 각도. 손끝은 무심히 잔을 돌렸지만, 눈은 늘 사람들의 손과 허리를 훑었다. 총을 숨길 만한 옷차림인지, 거짓말을 하는 표정인지. 그건 그에게 ‘사랑’보다 먼저 배운 생존 기술이다.


무대 위에 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갈색 피부, 햇빛을 머금은 듯한 머리카락, 웃을 때 눈꼬리가 부드럽게 접히는 얼굴.

루시아. 그녀의 보사노바는 파도처럼 잔잔하게 밀려왔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가 그에게 다가온다.

“여긴 처음 보는 얼굴이네.”

디에고가 말 대신 빈 잔을 들어 보인다. 그녀가 웃으며 앉는다. 그 웃음은 오래된 콘크리트 벽처럼 단단했던 그의 경계를, 아주 천천히 허물기 시작했다.


그들의 만남은 불규칙했다. 루시아는 가끔 공연이 끝난 뒤 그를 찾아왔고, 디에고는 말없이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대화는 짧았다.

“왜 항상 내 뒤를 살피는 거야?”

“습관이야.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해.”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난 노래하면서 앞만 보는데.”


여름이 깊어지며, 루시아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넌 날 믿어?”

“믿음은 사치야.”

그 말에 그녀의 미소가 살짝 기울었다.


그날 밤, 디에고는 오래 전 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믿는 순간, 약점이 생긴다.”

그 말은 평생을 지배했지만, 루시아 앞에서는 어쩐지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해변에서 루시아가 기타를 건넸다.

“사람들 앞에서 연주해봐.”

그는 거절했지만, 그날 밤 모래 위에 앉아 그녀를 지켜봤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파도 소리에 섞여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두려움이 없었다.


가을, 도심에서 총성이 울렸다. 루시아가 공연 중인 바 바로 옆 골목이었다. 디에고는 반사적으로 무대 앞으로 뛰어가 그녀를 안쪽으로 끌어냈다. 가까이서 들린 숨 가쁜 호흡,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그의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그녀는 겁먹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넌… 사람을 지키는 눈을 하고 있네.”

그 말에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넌 나를 지키지만, 네 마음은 열지 않아.”

그는 대답 대신 담배를 꺼냈다.

“난 네 벽을 부수고 싶었는데, 그 벽은 나를 막는 게 아니라 너를 가두고 있어.”

그녀는 담담히 말하고 떠났다.


겨울, 해변의 바람은 매서웠다. 짙은 바닷소금 냄새 사이로, 아주 희미한 그녀의 향수가 스쳤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내 목숨을 그에게 맡기는 거 아닐까?’


*


관제실.

스크린 속 디에고의 심박수 그래프가 완만하게 상승한다. 헤나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린다.

“박사님, 디에고의 ‘신뢰 반응 지수’가 변동합니다. 관계의 단절 후, 자기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강박사가 화면을 응시한다.

“그는 아직 벽을 부수진 못했어. 하지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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