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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언호 Oct 21. 2024

과거로부터의 기적

 집 앞에 도착할 즈음 비가 그쳤다. 어둠이 감실감실 가라앉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강아지가 낑낑대며 반겼다. 부모님은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걸음을 내려놓으며 얼굴을 비췄다. 엄마는 재밌었냐고 물으며 내 짐을 받았다. 나는 웃으며 여쭈었다.

- 오랜만에 다녀오니 후련하네요. 닭강정이랑 순대 사왔어요. 뭐 보세요?

- 어, 「그해 여름」이라고. 느이 동생 생겼을 때 본 거. 오랜만에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있네.

 옆에서 아빠가 얼른 발 닦고 와서 같이 보자며 거들었다. 나는 확인해야 할 게 있다며 방에 들어갔다. 책장 첫째 칸에서 『영혼의 편지』를 꺼내 먼지를 털었다. 재록양피지 냄새가 났다. 지난해 장마전선을 함께 거둬들인 그 책에는 꼬깃꼬깃한 메모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나는 페이지를 넘겼다. 끝이 말려 올라간 그림엽서가 한 장 떨어졌다.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산 엽서. 뒤편에는 연필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흔들릴 때면 설아의 편지를 읽어볼 것. 소중한 순간을 잃지 말 것.’

 한창 설아와의 끝이 다가올 시점에 적었던 글이다. 나는 씁쓸하게 입술을 웅그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설아의 편지들은 이미 오래전 잉걸불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내게 남은 건 작년 4월 그녀가 보낸 마지막 편지뿐이다. 사랑하던 기록은 이제 애쓰지 않으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눈살 찌푸려 기억하려 해왔을 뿐이다. 한때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아직 허기진 소망이 가득 메워질 때까지

김필, 그때 그 아인



 나는 설아를 잊을 수 있을까? 세간의 흔한 말처럼, 재연과 만나 사랑하다 보면 설아는 잊히고 말까? 먼 훗날 중년의 내가 동창들을 만나, 참 좋았다, 한 잔 술에 말아버리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어설프고 우습다. 하지만 진실이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 그녀를 잊어야 할 것이다. 지금껏 나의 감각에서 단 한 번도 유리된 적 없던 설아라는 자취를,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한다. 장작에 타던 사진과 편지들도, 소각장에 간 선물도, 그녀를 떨쳐내려 더욱 타오르던 내 꿈의 횃불로도 설아는 끝내 앗아지지 않았다. 나는 책을 덮었다. 내 마음이 정리된다면, 혹 그때 재인의 인사가 아직 정류장에 놓여 있다면, 낙서와 빗물로 무르익은 고흐의 편지글을 꼭 전해 줄 것이다. 그리고 함께 머나먼 여정을 떠날 거다. 시간이 쫓아오지 않을 때까지, 우리에게 좇을 것이 오직 미래뿐일 때까지. 나는 책상에 앉아 엽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르크 샤갈의 「연」이 프린팅돼 있었다. 싸락눈이 내리던 비엔나의 궂은 길을 견디고 여기까지 온 엽서다. 여행의 편린이 아렴풋하게 되살아났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냉정해져야 했다. 설아와 연결된 이상 버리는 게 좋다. 효성이가 시를 읽어봤냐고 문자를 보냈다. 답하지 않았다. 내 생각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먼지 싸인 노트북을 열고 메일을 검색했다. 열린 창틈으로 바람이 새어들었다. 나는 군에서 공모하는 여러 가지 대회들에 최대한 참가하려 했다. 계속 움직이는 일만이 내일을 기대하게 했기 때문이다. 복귀 전까지 공군 홍보 영상의 대략적인 밑그림과 레퍼런스, 그리고 문학상에 공모할 작품을 완결해야 했다. 나는 일과가 끝나면 시간이 나는 대로 자대의 컴퓨터방에서 소설을 쓰고 이메일에 저장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그 습작들을 휴가 때 정리하기로 했다. 자책, 회의, 절망, 슬픔. 까짓것 일진일퇴 병가지상사, 난 차라리 계속 쓴다.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쓸쓸함은 외려 영감이다. 무심히 메일함을 열고 저장 메일들을 훑어보았다. 문득 용량이 거의 다 찼다는 알림이 눈에 띄었다. 발신함부터 차근차근 지워나갔다. 작년에 앨범을 유통하면서 보냈던 대용량 파일들이 잔뜩 있었다. 작업 내용을 하나하나 살피는데 미소가 나왔다. 어리숙하고 열정 많던 재작년의 기록이다. 때론 진부하고 서러웠지만, 이제는 애틋하다.

 그대로 임시보관함에도 들어가 보았다. 쓰다 만 오디션 지원 메일, 교수에게 보내려던 성적 문의 메일, 나 자신에게 보내는 메일이 일기처럼 남아 있었다. 그걸 쓸 때 언젠가 다시 보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겠지. 위부터 하나씩 읽고 지우는데, 뜻밖의 메일이 나타났다. 설아가 2018년 마지막 날, 새해를 맞이하며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겨울 내내 유럽을 주유하는 내게 시차까지 맞춰 보내준 편지. 그녀의 세심한 내조로 외롭지 않았던 여정을 기억한다. 나는 시선을 바로잡았다. 늦봄의 어느 아침 유달리 아파 일어나지 못하던 침대에서, 쏟아지는 망설임을 누르며 간신히 지운 편지다. 우리가 주고받은 단 하나의 온라인 편지. 그걸 지우는 순간, 설아가 나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얼마나 좋아했고 오랜 시간을 기약했는지도 지워질 줄 알았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대신 그 편지에 대한 기억만은 자주 떠오르지 않았다. 줄곧 앞으로만 쌓이는 음반 가게의 시디처럼 모르는 사이 구석께로 밀려난 기억. 그 편지가 바로 지금,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추억이 켜켜이 쌓인 임시보관함에서 날 맞이하고 있었다. 어쩌면 「연」이 그려진 엽서에서 일컫는 편지 또한 이것인지도 몰랐다.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열었다. 답장하다 일이 생겨 넣어두고, 나중에 창을 새로 열어 처음부터 다시 쓴 모양이었다.

    

정들었던 대도시를 뒤로하며 나약해지지만

날 부둥켜안고 너는 속삭였지

너 하나는 언제나 내게 있다고


 설아가 그랬던가? 그랬겠지. 그보다 더 아름답게 말했을 테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이 다음 문장을 읽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곳에 내가 그런 말을 적었을 것이라고 향후 4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몇 안 되는 독자들이여, 그 놀라움과 혼란을 결코 온전히는 표현할 수 없다. 입이 떡 벌어진다느니, 두 눈을 의심한다느니, 이런 조잡한 미사여구로 대체할 감정이 아니다. 이로써 느낀 슬픔은 너무나 광막했다.

 2019년 설아의 새해 편지에 답장하던 날 나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뮌헨으로 가고 있었다. 독일의 1월은 물론 여기보다 따뜻하지만 그래도 겨울이었다. 아무도 잘라주지 않은 마른 나뭇가지가 열차의 발치에서 부러져나갔다. 가지가 부러진들 뿌리는 흔들리지 않았으니 뿌리에 가까운 줄기는 단단한 새순을 달고 있었다. 열차가 건널목에서 잠시 멈출 때면, 나는 어느 나무에나 똑같이 맺힌 새순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면서, 열차가 그곳에 봄이 올 즈음이면 나는 그리스에서 만경창파를 보고 있겠지. 산토리니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사방이 시상(詩想)인 유럽깨나 가 있으니 필치가 고상해진 건 불문가지. 그때 난 담백한 설아와 달리 잔뜩 멋을 부려 답장을 했다. 아, 이제 보니 "인간의 굴레에서"의 애설니와 다를 바가 없구나. 부끄럽다.

 그러고 보니 내가 놀라게 된 문장을 이야기한다는 게 배경만 잔뜩 떠들었다. 내 몇 안 되는 독자들이여, 미안하다. 순간 과몰입해 의식이 흘러가 버렸다. 그때 봄을 기다리며 내가 설아에게 보낸 답장, 그중 나를 백지장처럼 질리게 만든 문제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초록이 드리워 우리가 다시 만나면

대서양을 적신 내 귓가에 기대

오랫동안 파도 소리를 듣자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파도 소리가 알려줄 거야


 '초록이 드리워 우리가 다시 만나면.' 설아가 라디오에서 부른 건 손효성이 아니라 나다.



*"3. 여름이 좋아지려면 당신이 있어야 해요(부제: 그늘을 조용히)"는 "4. 한밤의 수중발레"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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