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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아 레인 Sep 03. 2024

그들만의 섬

착한 사람들의 섬

 화창한 주말 아침,  엄마는 주섬주섬 콩이며 참기름을

엄마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광목 보자기에 정갈하게 싸놓으신다.

오늘도 그분이 오시나 보다!

흰 저고리에 검정 긴치마를 입고 머리에 비녀를 꽂은, 어쩌면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머리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밥상을 무르기도 전에 언제나 그렇듯이

싱글벙글 반가운 얼굴로 우리 집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엄마는 헤어졌던 친구와 아주 오랜만에 마주하듯이

맨발로 뛰어나가 반기신다.


엄마의 여동생들을 만났을 때보다, 친구분들을 만났을 때보다도 더

기나긴 대화와  연신 웃음꽃 수만 송이를 피우시는지 우리 집 마당 가득

꽃향기로 채워지는 듯하다.


그렇게 긴 대화가 이어지는 중, 갑자기 그분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내 조그마한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신다.

그분의 눈동자는 맑아도 너무 맑아서 새벽이슬만 먹고사는 듯하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시더니 무릎을 탁 내리치며 "아니 코에 복이란 복은 다 들었는데

납작하다고 불만이라니!"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엄마가 이분한테 다 얘기하셨나 보네!"


다른 형제들보다 코가 낮았던 나는 항상 불만이었고

그런 나를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엄마는 빨래집게까지 동원해서

코를 집어 주곤 하셨다. 아파도 콧대가 조금이라도 높아질 수만 있다면

감당할 수 있었다. 사실 낮은 코 때문에 집 나간 얘기까지 그분한테 해서

난 한동안 그분한테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엄마, 아빠 코는 아무리 보아도 오뚝하니 예쁘신데 분명한 건 다른 형제들 또한

나처럼 낮은 코는 없었다. 아무리 얼르고 달래도 안되니

"그래 우리 막내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

체념하듯 하신 표현이 어느 날 나를 집밖으로 떠밀게 되었다.


난 곧장 주섬주섬 옷가지와 인형을 챙겨 들고 다리 밑으로 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를 낳았다는 엄마는 오지 않고 집 밖을 나설 때부터

아무리 쫓아도 쫓아도 연신 꼬리를 흔들며 따라붙는 강아지 꼼이와

그렇게 노을이 다리 밑에 고개를 들이밀 때까지 버티고 있었다.

꼼이는 배고픔을 견딜 수 없었는지 튀어 오르는 개구리 한 마리를

잡는 시늉을 하다 냉정하게 우리 집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다리 위에서 시끌벅적하니 손전등의  불빛이 비치는데

엉뚱한 방향이다. 무섭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가 고픈데 선뜻 나갈 수가 없었다.

낳아주신 엄마 찾아 집을 나왔는데 그깟 배고픔에 항복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도 잠시 다리 밑 시위의 종지부를 찍게 한건 다름 아닌 우리 집 강아지 "삐꼼이"였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꼼이는 그렇게 내게로 다시 왔다. 맨 끝에서 일행을 따라가던

엄마가 꼼이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챈 것이다.

그날 난 엄마한테 등을 얼마나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배고픔에 밥을 한 양푼 가득 비벼서 먹은 기억이 더 크다.

그날 이후, 난 나를 낳은 엄마고 뭐고 결코 찾겠다고 집을 나간 적은 없었다.


그런 얘기까지 하실 정도로 그분은 마을의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계셨다.

저 멀리 섬 안에서 단체 생활을 하며 관상, 손금, 일명 사주팔자를 봐주시고

곡식으로 대신 가져가신다. 똑같은 복장을 하고 여러 마을을 나뉘어 다니시는데

엄마 표현으로는 잘 맞추신다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만능인 것 같다.


형제가 많은 집은, 껌을 씹다가 벽에 붙이고 잠든 사이 떨어지는 바람에

자고 있는 아이들 머리카락에 붙어서 학교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가위로 이쁘게 잘라 주시기도 하고, 무슨 기름을 묻혀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쭉쭉 잘 떼주시기도 하셨다고 한다.


마을을 다니시다가 재래식 변소에 어린아이가 잘못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발견하고 꺼내서 씻겨 주기도 했다는 고마운 분이시다.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이 아찔한 상황에 놓인 적도 있었다.

아이들이 자치기 놀이를 하다 막대기의 뾰족한 부분이 잘못 떨어져

그분은  이마를 찍히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놀다가 그런 거라고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신다.


얼굴 한번 찌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그 섬사람들...

누구 하나 가봤다는 사람 없고, 가보려고 하지도 않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면 정적만이 흐르는 그 섬을

우리는 그저 좋은 사람들이 사는 섬이라고 생각했다.


낮은 코로 살면서 안경 낄 때 빼고는 아직까지 큰 불편함 없이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유혹에 한 번쯤 손대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왜 그분 말이 떠오르는지 왠지 손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을 보다가 아주 가끔씩은 내 낮은 코를 보면서 웃음 짓곤 한다. 관상, 손금, 사주팔자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마을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웃음으로 대하는 사람들,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걱정해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섬사람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삶을 풍요롭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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