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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아 레인 Sep 10. 2024

공원에서 주검과 마주하다

외로운 이의 마지막

 항상 같은 풍경을 보며 조깅을 하는 나,

항상 같은 자리에서 맨발로 지압길을 거니는 아저씨...


여느 때와 같이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새벽 조깅 길에 나섰다.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오기 때문에

뒷모습만 보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황톳길 조깅 코스를 달리는데, 그날도 지압길만을 고수하는 아저씨는

결코 그 길을 벗어나는 일은 없다.

그날도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계신다.

그곳은 넝쿨 장미가 아치 모양의 틀을 타고 아롱이다롱이 예쁘게 피어 있어

누구나 지나가다가 한 번쯤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두 바퀴 정도 달리고 나면 아이들 등교하는 시간에  맞춰지기 때문에

서둘러 달리던 그때, 저쪽에서  어르신이 자꾸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달리기를 멈추고 돌아다보니, 방금 지나쳐 왔던 지압길이다.

"저 부르셨어요?" 사실 "아줌마"라는 표현이 좀 불편했지만

그렇게 보여서 부른다는데 어쩌겠는가?

멈춰서 보니  길 옆으로 경찰차가 주차돼 있고 경찰관 한분이

손에 수첩 하나를 들고 내 옆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듯 경찰관이 지인이 아니라면

내심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게로 오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경찰관은 수첩을 내밀며 "몇 시쯤에 조깅하러 나오셨죠?"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로 물어 오는데 옆에 계신 어르신이

한마디 거든다. "항상 같은 시간일 테지!"

그렇게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간사이 깜짝 놀랄만한 사실은

좀 전에 지압하고 계시는 아저씨 옆을 지나왔는데

다름 아닌 살아 계신 게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것이었다.

"내가 주검을 보았다는 건가!"


 경찰관 말로는 그것도  몇 시간 지난 것 같다고 하신다.

순간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고 어르신은 믿기지 않는다는

내 표현에 사실 확인이라도 시켜 주시려는 듯 내 팔을

자꾸만 끌어당기며  지압길 뒤쪽으로 가셨다.

거기엔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디뎠던 발판이 허무하게

나뒹그라져 있었고 넝쿨장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아침 햇살을 받아 더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르신은 연륜 때문인지 주검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옆으로 바짝 몸을 기울이고는 "에고! 이양반이 고생을 무지 했나 보네! 손 좀 봐!"

난 차마 볼 수는 없었고 경찰관을 향해 "이분 빨리 내려주면 안 되나요?" 말했다.

경찰관은 냉랭한 표정으로 본인들 맘대로 할 수 없다고만 했고 누군가와 계속 통화를 이어가면서

연신 큰길 쪽으로만 시선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윽고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아저씨는 편안하게 마지막 길을 가고 있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속으로만  "아저씨!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행복하세요!" 하고

추모하였다.


그날 이후 나는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온통 그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만 생각이 나서

집에 혼자 있게 될 때는 공포감마저 엄습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답을 얻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죽은 나무는 가져다가 땔감이라도 쓰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

소용이 없어! 살아있는 사람은 어떠한 해를 가할 수도 있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그러니 무서워할 것 없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로지 그 아저씨가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공원에 나가지 못했던 나도 다시 용기를 내어 조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공원에는 나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여전히 같은 시간대에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나를 본 어르신은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의 얘기를 쏟아 놓기 시작했다.

공원 옆, 아파트에 홀로 거주하고 있었다는 그 아저씨의 집에서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지병도 있고 홀로 너무 외로웠다는 내용이었단다.

순간 나는 "외로움"이란 단어에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어떤 느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아저씨는 오로지 지압길만을 고수하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을 왜  공원을 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고 마음속에 자신만의 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통해서 마음을 나누며 서로에게 기대고 살아갑니다.

이마저도 되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한 번쯤 돌아보고

그들이 손 내밀어 오면 한 번쯤 손 잡아 줄 수 있는 잔잔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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