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팝콘
옥수수 알갱이가 갑자기 어른이 되다
온 마을이 떠나갈 듯 굉음과 함께 뽀얀 연기를 내뿜으며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
기다랗고 얼기설기 엮은 망 안에 가득 찬 올망졸망 귀여운 모습들이
바깥세상이 신기한지 내다보고 있다.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와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것은 바로 "팝콘"이다.
일명 "튀밥"이라고 불리는, 작은 알갱이의 옥수수가 어떤 기계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몸집이 갑자기 커져서 나온다.
마을을 돌면서 옥수수, 보리, 콩, 쌀등을 튀어 주는 일명 "튀밥장수" 아저씨다.
"엿장수" 아저씨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분이다.
아저씨가 오는 날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튀밥 기계를 돌리는 일을 자청한다.
개구쟁이 오빠들은 서로 하겠다고 앉는 의자까지 들고 도망가기도 한다.
아저씨는 야단치지 않고 흐뭇한 미소로 "그래 가지고 언제 튀어서 먹냐?" 한마디 하신다.
어떤 아이는 마당에 널어놓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콩을 들고 왔다가
엄마한테 들켜서 한 대 맞은 다음에야 울면서 다시 집으로 들고 가기도 한다.
아저씨의 곡식을 담는 깡통은 낡지도 않는지 매번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의 곡식을 담고 순서를 기다리는 깡통이 바뀌는 일은 없다.
명절날, 방앗간의 가래떡 뽑는 순서를 기다리며 서로 자기의 가래떡이 완성될 때마다 나누어 먹듯이
우리는 튀밥 튀어질 때마다 그냥 가져가지 않고 한 움큼씩 나누어 주고 간다.
그러다 보니 그날 저녁은 아이들이 밥을 못 먹게 되는 게 다반사였다.
물론 엿장수 아저씨가 오시는 날 또한 아이들이 입가에 하얀 밀가루를 묻힌 채로
달달한 엿 한 조각씩은 물고 다녔는데 저녁때가 되면 입에서 단내가 나서 밥을 못 먹었다.
엿장수 아저씨는 튀밥 아저씨와는 달리 빈병이나 냄비, 프라이팬 등을 엿 하고 바꾸어 주신다.
정확히 일주일에 한 번, 요일까지 정해져 있어 마을 사람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물론 아이들은 더 하겠지만...
꼭 엿을 먹는다기 보다는 집에 뒹굴어 다니는 고물이 보기 싫어
빨리 엿으로 바꾸고 싶기 때문일 게다.
급한 마음에 엿 한 개 값도 안 되는 빈병을 가지고 나갔지만 내 친구 막순이와 쌍으로 혼난 적이 있다.
그날따라 아저씨가 기분이 안 좋았던지 고물 다루듯이 우리에게 함부로 말해서
급기야는 고물을 가지러 간 사이 바로 옆, 대나무 밭에 엿판을 숨긴 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아주머니들한테 몇 배로 혼나서 온 마을이 막순이와 나의 울음바다로 끝나 버렸지만...
아빠도 창피해서 이사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 후론 우리만 지나가면 마을 사람들은 "엿판 또 숨길래?" 하며 놀려대신다.
엿판 숨기기가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난 엿이라면 별로 달갑지 않다.
그 시절처럼 납작한 쇠막대기로 툭툭 쳐서 건네지 않고 요즘은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지 포장도 예쁘게 돼서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팝콘이야말로 전문으로 튀어주는 기계가 있어서 작은 구멍으로 톡 하고 튀어나오는
그 모습을 보노라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간다기보다는 맛있는 팝콘을 먹는다는 설렘으로
영화관에 도착하기 전부터 즐거운 마음이다.
양파맛, 치즈맛, 캐러멜맛등 그 맛도 다양하게 만들어 내지만
난 그래도 사카린의 진한 단맛이 베인 그 시절 팝콘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뻥소리와 함께 몸집이 몇 배로 커져서 나오는 옥수수 알갱이의 변신과
뿌옇게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춤을 추던 그 시절의 개구쟁이 아이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웃음소리가 더 큰 그리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