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 싫은 20에게 ; <숙론>으로 소통의 첫 단계 알기
'아니, 이 사람 진짜 답답하게 구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시죠? 지금 이런 행동, 논란이 될 수 있는 거 알고 계셨잖아요? 당장 사과문 올리세요.'
유튜브건, 인스타그램이건 이젠 댓글창을 열기가 싫어졌다. 댓글만 보면 죽어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서다. 처음엔 제 말이 맞다, 거친 말로 싸우는 걸 보며 누가 옳은지 전부 읽어 보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는다.
그 모든 토론이 아무 실속도, 결론도, 논리적인 근거마저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토론이란 것은 본디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 대화여야 하는데, 왜 우리의 디지털 세상엔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경쟁 토론과 경청 없이 같은 말만 반복하는 앵무새 토론만 존재하는 걸까. 왜 우리는 의미 없는 토론으로 서로를 헐뜯게 되었을까, 다른 의견을 갖더라도 싸움이 나지 않는 토론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나는 최재천의 <숙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불통사회"인 한국에, 진정 필요한 것이 토론이라 말한다. 뭘 배운 것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 토론하는 걸 보고도 토론이 필요하냐고? 지금의 토론에서 아쉬운 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알면 토론이라는 이름 하에 서로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의 원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다툼은 죄다 나쁜 거라고 배운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후진화의 결과,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와 논의가 된다는 것 자체로도 선진화의 한 발자국이란 걸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숙제는 "사이 좋게 지내기"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모두가 끄덕일 결론을 상처 없이 만들 수 있는가"가 목적이어야 한다.
또 사회적 배경을 깨닫는 것에서 나아가 불통과 갈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어떤 토론이 실속 있는 토론인지를 배울 수 있게 한다. 획일화된 교육으로 인해 고착된 편견을 인식함으로써 보다 차분히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곪아 터졌으니 이제 연고를 바르며 치유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가 미처 민주적 소통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방향성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게 한 문장으로 글을 마치겠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댓글창 닫아 두듯 제 문제 아닌 양,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건 결국 사회의 일원인 우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숙론을 지향하는 소통을 해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 보자. 그리고 나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