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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Aug 19. 2024

20, 여기서부터는 어른 구간입니다

살아생전 겪어본 적 없는 고민으로 가득 찰 2N들에게 삶의 길잡이를


Q. 스무살이란?

A. 낭만 가득한 대학 생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기, 한없이 빛나고 아름다운 청춘.

학교라는 감옥에서..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형벌을 받고 있는... 미성년자와는 다르게 마냥 행복한 것.


 10대에게 스무살을 물으면 대개 이런 환상을 답한다. 내가 그리던 스무살도 다를 것 없었다. 정규 교육 과정에 '스물을 아름답게 보기' 과정이라도 있는 건지 스물이 되면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한 자유가 가득할 거라는 믿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씁쓸한 현실은 수능을 갓 마친 만 18세 병아리들을 자유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는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지만 책임도 너의 몫이며, 그로 인해 네 인생이 망가지더라도 원상복구 시켜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실전으로 뼈아프게 일러 준다. 패닉에 빠진 병아리들은 비로소 멀리서만 보던 겪어본 적 없는 책임의 무게를 버텨내야만 하는 나이란 걸 알게 된다.


 나 또한 패닉의 병아리 시절이 있었다. 운이 좋게 서울 소재의 대학에 합격하여, 상경하며 타지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게 시작이었다. 집을 떠나 왔으니 이젠 더 이상 부모님의 간섭도 없을 것이고 누나로서, 딸로서 해야만 했던 일에서도 해방이라 생각했었다. 역시 스무살은 자유의 나이구나...! 감격하며 새 학기를 시작했으나... 내게 펼쳐진 건 엄청난 식비와 책값, 등하교 시 미친 듯이 붐비는 지하철, 쌓이는 집안일, 급격한 건강 악화였다.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나를 이끌어 줄 동향 선배도 없는 타지에서 살아남기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살아남아야 한단 사실조차도 몰랐었다. 처음 겪는 일에서 느낀 당혹감과 곤란함은 서러움으로 변모해 나를 점차 갉아먹기 시작했다. 왜 나는 밥 먹을 돈도 없지, 왜 가난하지, 왜 사람들 속에만 있으면 숨이 막히지, 왜 자꾸 아프지, 왜 이렇게 불안하고 외롭지.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엉엉 울며 물었었다.


 가장 서러운 건 이 질문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딸이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 가족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털어놓을 수도 없었고, 당장 만나 술 한 잔 할 친구와 선배는 다 고향에 두고 와 버린 탓이었다. 이 위태로운 마음이 털어놓는다고 해결되는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누군가 나의 고민을 듣고 배부른 고민이라 생각하면 어떡하지? 별 일 아니라며, 자신의 고민이 더 크다고 무시를 당하면... 그땐 정말로 다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고민 상담에도 용기는 필요한 법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에 정답을 찾는 일은 영영 불가능할 거라고 단념했었다.


   그런 내게 길잡이가 되어준 건 책이었다. 용기를 내지 않아도 누군가의 공감과 위로를 들을 수 있었다. 책 속 활자는 때론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가, 호기심을 일깨워 주는 언니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 책을 읽으며 잔뜩 고인 눈물 때문에 흐려진 눈을 닦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나의 길을 탐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 속에 담긴 수많은 목소리가 내겐 길잡이가 되어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서툴지만 적어도 내 두 발로 땅을 딛고 온전히 설 수 있게 되었다. 불안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때로는 한없이 서러워지지만 흔들리며 잘 넘겨내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 같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갓 거쳐온 길에 대해선 한 술 얹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쓴다. 살아생전 겪어본 적 없는 고민으로 가득 찰 2N들에게, 책과 함께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전하는 글을 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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