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산부인과에서 보낸 3일의 기록
하루가 지났다.
밤을 새웠는지, 잤는지도 헷갈릴만큼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분명 아침이 되었는데 현실감은 하나도 없고, 꿈을 꾸는 것 같다.
밤새 서로 흐느끼느라 대화할 힘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와이프와 함께 산부인과에 입원해있다.
와이프는 너무 슬퍼서 아기를 낳은 고통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산후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산부인과에서 아침 식사가 나왔다.
밤새 와이프는 침대에, 나는 바닥에 가만히 누워있었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려고 와이프와 눈을 마주쳤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보통 눈물을 흘릴 땐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슬픔이 차오르는 전조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은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집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고 미처 가져오지 못한 짐을 챙기러 집에 갔는데, 부모님이 첫째를 봐주고 계셨다.
덤덤한 척, 괜찮은 척 집에 들어가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부모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흐른다.
어른이 되고 '엉엉' 운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눈물이 너무 많이 흘러 손으로 다 닦을 수가 없었고, 팔뚝으로 눈물을 닦아야 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눈물을 많이 흘릴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이 날 알았다.
이 날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이후엔 눈물이 많이 나지 않는다.
산부인과에 같이 입원해있는 3일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없다, 평생 병간호하면서 살겠지'
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하루 종일 한숨만 나오고 아무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살고 싶지도 않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질 것만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내가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큰 두려움은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차라리 하늘나라로 가면 아이도 편하고 우리도 편할텐데, 평생 누워있을 상태가 되니 더 절망적이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3일 내내 계속되었다.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고, 오로지 와이프와 나 둘이서 이 슬픔을 감내했다.
3일간 답답한 마음, 화나는 마음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출산할 때 아이를 받은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굉장히 고령이었고, 출산 경험이 많은, 대한의사협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이었다.
의사에게 출산할 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물었다.
"아기는 굉장히 운이 없는 케이스입니다. 출산 전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출산을 해보니 원인 모를 이유로 호흡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출산 후에 대처는 좋았으나, 출산할 때 아기 상태로 보아 중증 뇌손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도 안타깝지만 이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출산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극히 드물게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원인은 알 수 없으며, 병원은 잘못이 없다. 오히려 빠른 대처를 했다. 운이 없는 경우다.
단순히 운이 없다고 넘어가기엔 아이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하지만 출산 현장에 없었던 나, 출산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와이프는 어떠한 반론도 제시할 수 없었다.
소송을 고려해보았으나, 이긴다는 확신도 없을뿐더러 소송에 투자할 시간과 비용으로 아기 회복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결론을 냈다.
찾아보니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소송을 포기한다. 병원을 상대로 한 소송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으며,
확실한 근거가 있지 않는 한 개인이 소송에서 이기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지 운이 없음을 탓하기엔 아이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참 슬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을 가지는 것이었다.
손상 범위가 컸으나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좋은 예후를 보인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기적과 같은 확률이겠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뇌의 절반이 없었는데 멀쩡하게 살아가는 사람, 뇌손상이 심한데 걷고, 말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계속해서 뇌가소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의학이 발전하면 그래도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희망에 차서 기분이 좋다가도, 다른 아이들의 안좋은 사례를 보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계속 반복되었다.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희망은 대학병원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