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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쓰 Jul 24. 2024

아들이 죽었으면 좋겠다

수호를 낳은 후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왜 하필 그 병원에서 낳게 되었을까? 병원을 옮겼으면 결과가 달랐을까?'

'수호가 죽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키우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병원에서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 소송을 해야 하나?'

'난 이렇게 힘든데, 산부인과 의사는 두 다리 뻗고 잘 자고 있겠지?'


내가 수호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그중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수호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나는 장애인 아들을 평생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것도 수호와 같은 중증 장애인은 더더욱.

수호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수호가 태어난 이후에는 매일 같이 떠올렸던 생각이며, 빈도수는 적어졌지만 요즘도 가끔은 생각이 나고는 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엄청난 죄책감이 든다.

부모가 자식이 죽길 바라는 것만큼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것 같다.

아무 죄 없이 태어난 수호에게 난 나쁜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할까?, 뭐가 걱정돼서 그럴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크게는 세 가지가 무섭고 두려웠던 것 같다. 내 자유의 상실, 부담스러운 치료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첫 번째는 자유의 상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유를 꿈꿨다. 내 꿈은 어떤 직업도, 직장도 아닌 그냥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은 방향으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수호가 태어난 후 나는 평생 간병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재활병원을 다녀야 하고, 옆에서 항상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 삶의 제1목표인 자유가 사라진 것이다.


두 번째는 치료비이다. 자유 중에서도 가장 바랬던 것은 '경제적 자유'다. 누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항상 40살 이전에 돈을 모아 직장을 그만두고 은퇴한 다음 매년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른 은퇴 후에 와이프, 아이들과 함께 매년 여행을 다니면서 사는 삶을 꿈꿨다.

수호가 태어나기 전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원하는 집에 청약도 되고, 와이프와 열심히 목돈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가 태어나면서 많이 바뀌었다.

수호는 매월 100만 원 이상의 재활비가 든다. 또, 내년 예정이었던 와이프의 복직은 무기한 미뤄지게 되었다.

어쩌면 복직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평생 재활을 해야 하는 수호로 인해서 경제적 자유는커녕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지막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내향적인 나는 외부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한다. 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평생 평범한 옷, 평범한 스타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나는 식당을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 구석 자리를 선호하고, 주목을 받게 되는 발표 자리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디서든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살 자신이 없어 이민까지 생각할 정도였으니, 이것은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아직도 이 세 가지가 여전히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다.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내가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냥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요가, 명상, 상담, 독서 등 다양한 노력을 했었고, 시간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데 힘이 된 것은 수호다. 사실 처음 수호를 봤을 땐 예쁘지도, 불쌍하지도 않았다. '왜 이렇게 태어나서 날 힘들게 하고, 와이프를 힘들게 하는지... 다른 애들은 숨을 잘 쉬면서 태어나는데, 수호는 왜 숨을 안 쉬면서 태어나서 뇌를 다쳤는지. 얘 때문에 내 인생은 이제 끝났네.'라는 부정적인 감정만 가득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아닌 '우리 불쌍한 수호. 평생 누워있을 수도, 걷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냥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예쁘고 소중한 수호가 최대한 안 아프게 살 수 있길.'이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수호를 예뻐하려고 특별히 노력을 한 것은 아니다. 매일 같이 자고, 먹이고, 울고 웃고 하다 보니 아이의 예쁜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정이 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태어났을 때 했던 모진 들이 미안해서라도 더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수호가 정말 예쁘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더 예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항상 있지만 이미 바꿀 수 없는 일에 너무 슬퍼하지는 않으려 한다.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현실에 대한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나의 마음가짐, 생각을 바꿔서 같은 상황이지만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밝게 살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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