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쓰 Jul 21. 2024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들은 위로의 한 마디

생후 21일이 되었을 때, 수호는 우리나라에서 신생아 뇌로 가장 유명하다는 신촌 세브란스로 전원을 갔다.

운이 좋아 생각보다는 빠르게 전원을 갈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더 빨리 전원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만큼 세브란스는 다른 병원들과는 교수님도, 간호사들도, 시스템도 모든 것이 달랐다.

세브란스에 전원을 가고부터는 왜인지 수호가 좋아질 것 같다는 희망에 안심이 되었다.

세브란스를 가서 첫 면담을 했다. 세브란스에서도 신생아 쪽에서 가장 유명한 은교수님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들으셨겠지만 수호는 뇌손상이 상당히 큽니다. 뇌의 대부분이 사라졌고, 남아있는 부분들도 대부분 손상이 되었습니다. 수호는 아직 매우 어린 아기이기 때문에 희망을 놓아서는 안되지만, 여기 NICU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손상이 큰 편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전 병원에서는 평생 누워있을 것이고, 감기만 걸려도 사망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진짜 그럴까요?"

"현재 수호의 뇌를 봤을 때는 평생 누워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뇌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회복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놀랍습니다. 저도 여기서 놀라운 회복을 보이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저 수호를 사랑해 주고 아이를 믿고, 최선을 다해주세요.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낮은 확률이 어머님, 아버님에게 온다면 그 확률은 100%인 것입니다."


교수님은 자신감 있는 말투로 확신 있는 말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듣고 싶었던 기적과 같은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결국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이의 예후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이 말을 듣는다고 수호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수호는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약 2달 동안 입원을 했다.

매주 면회를 가며 새로운 소식을 기대했지만 눈을 뜨고 약간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 외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퇴원하기 전 뇌 MRI를 다시 찍게 되어 큰 기대를 했지만, 이전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 우리가 생각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호는 생후 86일이 되던 날 우리의 품으로 왔다.

100일 가까이 된 아이였지만 작게 태어났고, 수유량도 많지 않아 너무 가볍고 작았다.

수호가 뱃속에 있을 때는 그토록 바라던 네 명의 일상이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상상과 매우 달랐다.

아픈 아이가 있다 보니 우리의 관심은 수호의 건강뿐이었고, 자연스럽게 모든 생각과 행동이 수호에게 맞춰져 있었다.


수호는 뇌손상으로 인해 수유를 하는 것도 참 쉽지 않았다.

수유량이 많지 않아 3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해야 했고, 아침저녁으로 경련약도 2종류를 먹여야 했다.

조금이라도 많이 먹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토를 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먹은 것을 입과 코로 다 토해내고 엉엉 울고 있는 수호를 보면 화가 나면서도 짠했다.


지호를 키울 때는 새벽 수유를 한다는 자체가 힘들었고, 먹는 속도가 느린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수호에게서 느끼는 힘든 점은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먹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너무 감사했고, 새벽에 일어나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먹기를 바랐다.


세브란스에서는 뇌손상 아기들에게 재활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유라고 항상 강조했기 때문이다. 뇌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조금이라도 뇌가 더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호에게 필요한 수유량 이상의 수유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먹는 것이 치료의 기본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먹였지만 참 쉽지 않았다.


뇌손상이 심한 아이들 중에는 마른 아이가 아주 많다. 우리가 흔히 '뇌성마비 아이'라고 생각하면 생각나는 것은 빼빼 마른 이미지일 것이다. 그만큼 뇌손상이 있으면 먹는 것이 쉽지 않다. 수호도 그랬다.


한 번에 30~40ml 정도밖에 먹지 못할 때도 많았고, 하루 수유량이 500ml가 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병원에서 이야기한 수유량인 800ml는 하루도 달성한 적이 없었고, 수호는 갈수록 조금씩 키가 커졌지만 조금씩 말라갔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먹은 수유량이 250ml도 되지 않았다. 잘 먹는 아이는 한 끼에 200ml를 먹는 경우도 많은데 하루동안 200ml를 겨우 넘긴 것이다. 우리에게는 '먹지 않는다=뇌손상이 회복되지 않는다'라는 공식이 있었기 때문에 단 5ml라도 더 먹기 위해 주사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젖병을 거부하는 수호에게 주사기에 분유를 담아 강제로 먹인 것이다.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수호를 보니 마음은 아팠지만 나에겐 그것보다 뇌가 회복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제로 먹여도 많아야 4~50ml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수호가 너무 고통스러워했고, 위험한 방법이어서 한 두 번 해보고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수호를 키우면서 느낀 것이 당연한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뒤집기, 되집기, 분유 먹기, 트림하기, 하다못해 숨 쉬는 것까지 당연한 것은 없었다. 그만큼 모든 것에 소중함을 많이 느끼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픈 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직접 경험하며 힘들지만 감사함 또한 많이 느끼고 있다.

지금은 내가 이전보다 많이 성숙해져서 수호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예뻐해주고 있지만, 사실 수호가 집에 왔던 초반의 나는 정말 나쁜 아빠였다. 모든 것을 수호의 책임으로 돌리며 수호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많이 했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일들을 하나씩 적으며 반성해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