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쓰 Jul 17. 2024

아이는 감기만 걸려도 사망합니다

수호의 대학병원 이야기

수호는 그렇게 태어난 날 저녁부터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병원 면회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우리는 매일 면회를 갔다.

짧은 면회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사실 아이를 보는 것보다 의사가 들려주는 아이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매일매일 새로운 소식을 기대하며 면회를 가는 날이 반복되었다.


수호는 입원 초반엔 자가호흡을 하지 못해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지냈었다.

어느 날은 병원에 가보니 인공호흡기가 바뀌어있다.

들어보니,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고 상태가 괜찮은 것 같아서 인공호흡기를 바꾸었다고 한다.

며칠 후, 수호는 인공호흡기를 완전히 떼버렸다.

의사도 생각보다 빠르게 자가호흡을 하는 모습이 희망적이라고 했으며, 뇌손상이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했다.

이때까지는 뇌 MRI를 한 번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아이가 뇌병변장애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들은 첫 MRI를 찍는 순간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아버님, 검사 결과 알려드릴게요. MRI 결과를 보니 생각보다 뇌손상이 너무나 심각합니다. 이쪽에 보이는 검은색 부분이 뇌가 녹아서 없어진 부분입니다. 아이 경과가 괜찮아서 손상이 적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를 보니 그렇지가 않네요."

"그러면.. 아이는 걸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이 정도 손상이면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평생 누워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의학적인 말들은 내게 들어오지 않았다. 크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아이를 빨리 키우고 같이 해외여행을 다닐 생각만 하던 나였는데,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다.

해외여행은커녕, 평생 병간호만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상담을 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교수님의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더 들으면 더 힘들기만 할 것 같아서 상담을 빠르게 마치고 나와서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결과 어떻대?"

"뇌손상이 생각보다 너무 크대. 평생 누워있을 수도 있대."


희망적이었던 와이프가 이 말 한마디에 절망을 한 것이 통화로도 느껴졌다. 너무나도 소중한 와이프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 고통스러웠다.


아이가 아픈 것이 더 힘든 이유는 가족 전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 그런 우리를 보는 양가 부모님들의 마음, 아픈 형제를 보는 첫째의 마음 등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때로는 더 힘들 때도 있다.

특히 나는, 힘들어하는 와이프 모습을 보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니 나도 모르게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다.

'그래도 아직 어리니까 손상된 뇌도 회복되지 않을까? 뇌가소성이라는 개념도 있던데, 재활치료 잘 받으면 좋아지겠지. 수호가 크면서 의료기술도 빠르게 발전할 텐데, 언젠가는 뇌도 고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희망회로를 돌렸다.

그렇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희망을 가지려고 해도 현실이 나를 가로막는다.

아이는 감기만 걸려도 사망합니다.
그런데, 감기를 걸리지 않는 아이가 있을까요?


더 큰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하기 위해 했던 면담 때 들었던 말이다.

평생 누워있는 것을 넘어, 아이는 곧 사망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는 감기만 걸려도 합병증으로 사망을 할 것이고, 인간이 감기에 걸리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머지않아 사망을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코로나도 극복했기 때문에 저 말은 틀린 말이었지만, 저 말을 들었을 때는 다시 한번 큰 절망감이 찾아왔었다. 그만큼 아이의 상태는 심각했던 것이다.


사망한다는 말까지 들으니 더 이상 희망회로를 돌리는 것은 불가했다.

어차피 갈 것이라면 정들기 전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이 들면 떠나보낼 때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의사들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의사도 그랬다.

물론 아이의 상태는 예측할 수 없고, 특히 뇌는 예측이 힘든 분야라고 한다.


처음엔 의사들이 왜 항상 최악을 말하는지 이해했다. 보호자 입장에서 절망적인 소식을 듣다가 조금만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어도 힘이 나기도 하고, 처음에 희망적인 소식을 접하고 기대하다가 나중에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되면 절망감이 더욱더 커지기 때문이다. 또, 괜히 좋은 소리 했다가 상태가 안 좋아지면 보호자들은 의사를 탓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의사에게 최악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의지가 사라졌다.

아이를 바라볼 때도 어차피 떠날 아이라는 생각에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했고, 그저 잠시 머물다가 갈 불쌍한 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차라리 의사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예뻐하고, 어쩌면 아이가 회복하는데도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의사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들 때문에 힘들었던 입장으로 많이 아쉽다.


다행히 전원을 간 대학병원에서는 같은 아이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는 의사를 만났다.

이전 02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