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제단의 봉사자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Dieu, viens à mon aide!" ("하느님, 저를 도우소서!")
여느 때와 같이 프랑스 수도원 성당에 저녁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도가 끝나고 우리 수도원 공동체의 책임자 신부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나는 조심스레 신부님을 찾아뵈었고, 신부님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축하한다. 오늘 주교님께서 너의 부제서품을 받아들여 주셨어".
프랑스에서 받는 부제품이었기에, 이곳 주교님의 동의가 필요했던 나로서는 이 소식은 희대의 기쁜 소식이었다. 나는 기쁜 마음을 추스르고 그동안 내가 살아온 길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원에 들어와 4년간의 신학교 학부생활, 2년간의 군생활, 2년간의 실습을 거치고, 예상치 못한 프랑스로 유학을 와서 대학원 과정을 낯선 땅에서 2년째 치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기간 동안 한 순간도 쉬운 길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고, 나도 모르게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에너지를 받으며 하루하루 걸어왔다. 예상치 못한 일들에 두려워했지만 이겨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기도 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눈물을 닦고 새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모여 오늘의 이 기쁨의 문턱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제서품이 허락된 그날 밤, 오랫동안 성당에 앉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되돌아보면, 나의 길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던 길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내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고 동행해 주셨기에 내가 부제서품이라는 꿈같은 길에 안착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았다.
이 길을 걷다가 몸에 상처도 났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하느님은 모든 약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다만, 그 약을 다 발라주시는 분은 아니었다. 그 약을 받아서 나 스스로 발라야 했다. 상처에 발리는 연고는 따갑고 아프지만, 나는 아픔을 감수하고 그 약을 발랐다. 이 아픔은 잠시 지나갈 뿐이고, 낫게 될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느님이 건네주는 연고의 효능을 믿지 않았다면, 약을 바를 때의 따가움이 싫어서 거부하지 않았을까. 결국, 하느님을 믿은 덕분에 부제서품의 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부제' 제단의 봉사자
가톨릭에서 부제서품을 받는다는 것은 사제서품을 받기 바로 전 단계로써 '성당의 봉사자'가 됨을 의미한다. 성당에서 거행되는 미사예식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는 '복음'을 낭독하고, 복음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강론'을 하고, 미사의 중심이 되는 성체성사에 필요한 성구들을 제대 위에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세례를 줄 수 있고, 성당에서 결혼을 하는 혼인성사와 아픈 분들의 쾌유를 바라고 돌아가시는 순간에 하느님께서 영혼을 받아주시길 청하는 병자성사를 집전할 수 있다. 더불어 부제는 더 이상 일반 신자(평신도)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성직자가 된다. 나는 부제서품을 준비하면서 신자분들의 말씀을 더 귀 기울여 듣는 착실한 봉사자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더군다나 나는 프랑스에서 사도직을 하고 있었으므로, 한국인의 상식으로써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기에 더욱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봉사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리라고 다짐했다.
특별한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의 부제서품이 허락되고 날짜가 나오자, 나는 특별하게 마음을 먹기보다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에 더 충실히 임했다. '내가 어떤 직책을 맡는다' 또는 '이제 성직자가 된다'라는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발바닥에 더 땀나게 뛰는 봉사자의 마음을 갖기로 했다. 부제서품 허락 소식을 들은 프랑스와 한국의 여러 선배 신부님, 부제님들이 축하한다고 한 마디 씩 하실 때마다 나는 부제라는 봉사자의 자리가 나에게 과분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분한 자리임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허락하신 자리라고 확신했기에 힘차게 서품식을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12년간 수도원에서 걸어왔듯이 똑같이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사실 나는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면서 예정된 서품 연도 보다 약 2년 늦게 부제품을 받게 되었다. 이 부분에 있어 꽤 많은 선배 형제 신부님들이 '힘들지?' 하며 위로해 주곤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 때문에 힘들진 않았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하느님이 나에게 필요한 만큼의 교육시간을 더 주시는 걸로 여기고 배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걸었다.
부제서품 성구를 고민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한국에서 부제서품을 받을 때는 '성구'를 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부제서품 때도 성구를 정해서 부제직을 행하는 기간 동안 마음에 품고 그 뜻에 맞게 지낸다. '성구'란 성경구절의 한 구절을 의미한다. 마음에 들었던 성경구절 중 하나를 택하여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진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 코린 13.1-3)'
(Si je n'ai pas l'amour, je ne suis rien (1Co 13.1-3))
나는 나의 부제서품 성구를 이 말씀으로 정했다. 혼인성사에도 자주 쓰이고, 평소에도 흔히 들을 수 있는 구절이지만, 나에게 이 구절은 모든 필수 불가결한 요소를 담고 있는 걸로 보였다. 사랑은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사랑을 가르치셨고, 그걸 본인의 삶으로 보여주셨다. 부제품, 사제품, 수도자. 내가 걷고 있는 삶의 길은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사는 것이므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하나뿐이었다.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사랑'은 단순히 달달한 것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으신 것처럼, 사랑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때로는 큰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겠노라고 결정한 길.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나의 고백은 성당의 봉사자가 되고자 하는 진실한 고백이었다. 매일 밤, 이 구절을 노트에 쓰고 마음에 새기며 부제서품을 받을 날을 기다렸다.
그날은 천천히 다가왔고, 그해 가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부제서품의 영광을 받았다.
이 글을 빌어 부제서품에 이르기까지 나를 이끌어주고 나의 부족함을 받아주며 함께 지낸 모든 수도원 형제들과 기도로 늘 힘을 준 모든 신자분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부제서품 예식 이야기는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