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흔히 말한다. 사라진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양이에게 사라짐은 늘 ‘조금 남기는 방식’이었다.
털 한 올, 기척 한 번, 혹은 창가의 빛이 잠시 흔들리는 정도의 아주 작은 존재의 잔향.
인간의 말로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사라지는 법을 잘 안다. 그래야 하는 때도 안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데는 우리가 인간보다 훨씬 유리한 우주의 존재다.
하지만 나처럼 ‘기억’을 들고 다니는 고양이에게 완전한 사라짐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몸은 잠시 비울 수 있어도, 내가 본 것들은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카페 카뮈에 머물지 않는다.
발바닥이 닿는 자리는 사라졌고, 꼬리로 바람을 툭툭 건드리는 일도 없어졌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는 여전히 이곳의 기척을 느낀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말들이 벽에 붙은 종이처럼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본다.
몸이라는 경계가 사라지자 나는 공간과 시간 사이의 틈에 가까워졌다.
그 틈은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도윤은 그 틈을 바라본 적이 있다.
말하지 못했던 날, 말하려고 떨던 날, 그리고 마침내 말한 날.
그가 보지 않으려 했던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그를 찾아왔고 마침내 그의 손끝까지 닿았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고양이의 눈은 기억이 스며들기 좋은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카페 카뮈의 벽에는 사람들이 남긴 문장들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고백’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훌쩍 떠난 마음의 잔재’라고 부른다.
그 문장들은 처음에는 별것 아닌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주 큰 용기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꺼내놓는 것’은 인간들에게 참 어려운 일이다.
말한다는 것은 사라져 가는 자기 자신을 붙잡는 행위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를 어딘가에 조용히 올려두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단 두 마디로, 누군가는 엽서 한 장으로, 누군가는 떨리는 글씨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벽에 걸어 두고 간다.
나도 알아본다. 그 무게를, 그 떨림을.
진정한 공감은 외면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 문장들을 볼 때마다 예전처럼 허세를 부릴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수연은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 가장 가가운 곳을 향해 있었다
내가 인간의 마음에 대해 배운 것 중 절반은 그녀의 말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도윤.
그는 스스로를 오래도록 용서하지 못했다. 하지만 용서란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와 어깨를 맞대고 걷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씩 알게 된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모든 존재는 결국 자신이 외면한 진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진실을 ‘말하는 순간’ 비로소 현재를 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떠난다.
떠난다는 것은 종종,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남기는 일이다.
편의점 앞 골목에서 간식을 구걸하며 인간을 관찰하던 때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때의 나는 배고픔과 외로움만을 알았지만 지금의 나는 사람이 마음을 내어놓는 방식에 대해 조금 더 배웠다.
그들이 쓰는 말, 숨기는 말, 결국 꺼내게 되는 말들.
나는 이제 이곳을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본다. 바라봄은 돌아오지 못하는 시선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시선이다.
오늘도 카페 스탠드가 작게 흔들린다. 바람의 탓이지, 전등의 탓이진, 혹은 나의 탓인지 알 수 없다. 나는 그 흔들림 속에서 한 문장을 읽는다.
”여기서 지나간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마음이다."
고양이는 원래 떠난 곳을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조금 오래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남긴 말들, 그 말들이 서로를 살린 순간들, 그리고 나를 마지막으로 불렀던 목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여전히 내 고리 끝처럼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카페 카뮈의 공기 속에 내 그림자 하나를 살짝 걸어 두고 간다.
언젠가 사람들이 또 다른 문장을 벽에 붙일 때, 나는 그 옆을 지나며 아주 작은 인사를 대신할 것이다.
“괜찮아. 그 마음, 내가 보고 있어.”
카페 카뮈는 늦은 말들이 도착하는 장소였다.
카페 카뮈는 오늘도 그렇게 조금 늦은 사연들을 품은 채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언젠가 당신이 가슴 깊숙이 잠가둔 당신의 문장을 남긴다면,
나는 또 한 번 편의점 앞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당신이 기억하는 그날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게 고양이가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