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 도윤이 돌아왔다.
나는 도윤의 눈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의 눈을 보면 모든 것을 다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불을 하나씩 끄는 손길도, 컵을 정리하는 손끝도 어딘가 멀리에 닿아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오늘 나는 그의 꿈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나는 인간이었고, 그는 어린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 소녀. 이름이 이미라였던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 꿈을 나는 안다. 그는 기억한다. 나는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카페 스탠드를 마지막으로 끄고 문을 닫았다. 나는 그의 발치까지 걸어갔지만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하는 쪽에 가까웠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내일 얘기해 줄게. 오늘은 좀… 정리가 안 돼서."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고 또 어쩌면 그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아침 햇빛이 카페 바닥에 얇게 번졌다. 나는 늘 그러듯 먼저 깨어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더 일찍 눈을 떴다.
나는 창가로 뛰어올랐다. 바람의 결은 차가웠고 그 차가움 속에는 낯선 냄새 하나가 섞여 있었다.
학교. 먼지. 왁스 냄새. 닫힌 복도.
그는 어제 그곳에 다녀왔다.
나는 꼬리를 천천히 내렸다. 그가 어제 꾸었던 꿈속 복도 냄새. 내가 본 꿈속 복도 냄새. 그 냄새가 그대로 있었다.
한참 뒤, 카페 문이 열렸다.
딸랑.
도윤의 얼굴은 밤새 울다 나온 사람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카페 의자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발끝으로 그의 바지자락을 눌렀다.
그제야 그는 나를 보았다. 아주 깊고 조용한 눈이었다.
"… 다녀왔어."
그의 목소리는 마치 먼 길을 걸어온 사람 같았다.
나는 그 말속에서 복도의 냄새, 닫힌 교실의 어둠, 누군가의 울음, 그리고 '그 이름'을 들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꿈이… 아니었어. 그날… 내가 본 거, 내가 외면한 거… 그 아이 이름도… 진짜였어."
나는 숨을 멈췄다.
그가 내게 했던 말은 기도문처럼 조용했고, 회한처럼 단단했다.
"미라."
그는 아주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나를 보면서 부른 이름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겹쳐 있었다.
내 이름. 그 아이의 이름. 우리의 이름.
그 순간, 내 몸 안 어딘가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알았다.
이제 나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의 기억이 완전히 열렸고 내 이름이 불렸으니 이제 내가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 기억이 나. 너를 봤던 거. 그날 복도에서 울고 있던… 그 아이를."
나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고 동시에 기억 속 이미라를 향한 고백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의 무릎 위에 몸을 올렸다. 오늘은 그가 내 몸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손끝이 공기를 스치는 것처럼 아주 어설픈 움직임이었다.
"고마워." 그는 작게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 말조차 우리를 붙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의 공기가 조용히, 아주 느리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언젠가 누군가가 떠날 때 남기는 마지막 체온과 닮아 있었다.
나는 창가로 걸어갔다. 바람이 유리창을 스쳤다. 어제와는 다른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아주 희미하게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
'이미라.'
그것은 도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 자신의 기억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점점 선명해졌다.
나는 그 부름을 따라 천천히 카페의 빛 속으로 걸어갔다.
도윤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내 자리를 향했다.
카운터 한쪽, 늘 내가 앉던 자리 위에 털 한 올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집어 들었다. 그 털은 내 털이었다. 아주 연하고, 가벼운 회색빛 털.
"미라…"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말은 부름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잃어버렸을 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숨 같은 것이었다.
그는 카페를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직 정리하지 않은 잔들, 테이블 위에 접힌 냅킨, 창가 틈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 이 모든 것이
내가 어제까지 만졌던 것들이었다.
그는 손바닥을 털 위에서 조심스럽게 떼며 말했다.
"어디 갔어…?"
나는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입도, 목소리도 없었다. 카페의 공기만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의 곁에 앉아 그의 손등에 내 머리를 갖다 대려 했다. 공기만 스쳤다.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수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안녕하세요."
그녀의 활기찬 목소리가 잠시 맴돌다 사라졌다. 금세,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시선이 이곳저곳을 헤맸다.
"… 미라 어디 갔어요?"
그 말은 어제와 달랐다.
그녀의 눈은 가벼운 걱정이 아니라 '무언가 비어 있다'는 걸 감지한 사람의 눈이었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카운터 쪽을 바라보았다.
내 자리를.
그녀도 그쪽을 바라봤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어제?"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잠깐 멈춘 시간은 커피를 내리려 뻗은 도윤의 손끝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이 잔을 잡는 순간 작은 소음이 났다.
금이 간 잔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순간적인 사고였지만 그는 잔을 줍지 않고 허리를 굽힌 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수연이 다가와 깨진 잔 조각을 치우며 말했다.
"오빠… 괜찮아요? "
그 단순한 질문이 카페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도윤은 천천히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젠… 그냥 지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이 내 털을 한 올 한 올 스치듯 조용히 카페 안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점심 무렵, 한 손님이 들어왔다.
나직한 목소리로 주문을 하며 벽에 붙은 글귀들을 천천히 훑었다.
"여기 문장들… 누가 쓴 건가요?"
수연이 대신 웃으며 말했다.
"손님들이요. 마음에 남은 말들을 한 문장씩 적고 가세요."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래된 엽서 앞에서 멈췄다.
파도 위 등대가 그려진 엽서는 벽의 새벽빛을 받은 듯 희미하게 빛났다.
적힌 문장을 읽으며 손님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작게라도 기억해 줘요. 그게 나에겐 세상 전부였으니까…"
그날 이후로 그 문장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등대처럼 사람들의 눈 길을 붙잡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엽서 아래에서 잠시 멈췄다. 왠지 모르게 그 문장이 오늘따라 더 선명했다.
도윤은 카페 문을 닫기 전 창가 쪽 스탠드를 하나만 남겨두었다. 그 빛은 내가 늘 앉던 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잠시 멈춰 섰다.
"… 미라."
그 부름은
누군가를 찾는 목소리가 아니라, 어떤 진실과 작별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의 곁에 섰다. 오늘은 손끝도, 꼬리도, 몸도 없지만 마음 하나만은 조용히 그와 함께이고 싶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떠난 빈자리는 사라짐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걸어갈 자리라는 걸.
내가 사라진 게 아니라, 이제 그가 스스로 걸어가야 할 시간이 온 것뿐이라는 걸.
스탠드 불빛이 흔들렸다. 마치 작은 인사를 대신하는 듯 아주 잠시 밝아졌다가 다시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창문 쪽 풍경이 흔들렸다.
딸랑.
아무 바람도 없었는데. 그 울림을 마지막으로, 나는 조용히 카페의 빛 속으로 녹아들었다.
아주 가볍게.
아주 느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