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뮈 20 - 꿈이었으면..

by HeartStory

아침 도윤의 낯빛이 좋지 않다.

밤새 나쁜 꿈과 실랑이를 한 것인지, 아니면 꼬박 지새운 것인지 알 수 없다.

나 또한 지난밤 이상하리만치 보일 듯 들리 듯한 환영과 환청 속에서 헤매었다.

내가 사람으로 변해 있었고 누군가 나를 바라보며 ‘미라!’하고 불렀다. 나를 부른 것은 맞는데 내가 사람인지 고양이인지 헷갈렸다. 마치 내가 도윤의 꿈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도윤은 오전 내내 말이 없었다.

말을 시켜도 시큰둥했다. 간식은커녕 아침밥도 못 얻어먹었다. 배고프다고 보채 볼가도 했지만 참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고 침묵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에게도 묵직한 고요함은 지난밤의 꿈을,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었다.

오후에 수연이 오자 도윤은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카페를 나갔다.

수연이 ‘무슨 일 있었어?’하는 눈짓을 내게 보냈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수연이 알아들을 리 없다는 생각에 애처로운 눈빛만 보냈다.

눈치 빠른 수연은 내 빈 밥그릇에 사료를 잔뜩 채워 주었다. 그동안 쓸 일이 없었던 내 필살기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내 표정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주섬주섬 오늘의 첫 끼니를 해결하려 했지만 도통 입맛이 나지 않았다.

도윤은 어디 갔을까?

궁금한 일이 하나 늘었다. 힘든 하루가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무언가 내게 큰 변화가 올 것 같은 느낌이 엄습했다.

수연은 손님 없이 적막한 카페 안을 서성거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카페 안에 흐르는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책을 보다가는 덮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그러다가는 무언가 할 일이 없는지 찾는 듯 카페 안을 맴돌았다.


나는 나만의 공간에서 지난밤의 꿈을 되새김질했다.

복도. 그 익숙한 복도.

나는 이미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엔 내가 거기 있었다.

벽에 붙은 공지문, 반쯤 뜯긴 축제 포스터, 그리고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

그 빛 속에 소녀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작고 여린 몸, 울음으로 젖은 교복. 그 소녀의 이름을 나는 알고 있다.

이미라.

그건 내 이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나와는 다른 존재였다.

나는 문밖에 서 있는 소년을 보았다. 도윤이다.

입술이 떨렸고, 손이 문고리를 향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끝이 멈췄다.

“봤잖아.” 문 안쪽의 내가 속삭였다.

“너, 봤잖아.”

소년은 울 것처럼 입술을 물었다. 그리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 순간 공기를, 숨소리를, 심지어 복 바닥의 차가운 냉기까지도 느꼈다. 그 모든 게 내 몸 안으로 흘러들었다. 빛이 터졌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나는 도윤의 시야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쿵, 쿵, 쿵.

두려움과 죄책이 한 몸으로 뒤엉킨 소리였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단단한 목소리.

“잊어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소리의 주인은 할아버지였다.

그러자 복도의 모든 문이 동시에 닫혔다.

쾅, 쾅, 쾅. 하나씩, 천천히, 확실하게.

그 소리는 마치 기억이 봉인되는 소리 같았다.

소리가 닫히며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복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이었다.

닫힌 교실,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곳.

커튼 틈새로 나직하고 가냘프게 들어온 빛은 부유하는 공기 속 먼지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소년 도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입에서 나온 건 공기뿐이었다.

“도윤아.” 내가 불렀다.

그는 나를 보았다. 아니, ‘그날의 나’를.


교실 안에는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책, 구겨진 가방, 그리고 누군가가 적어 놓은 낙서들.

‘이유? 그런 게 필요한가!.’

‘그냥, 네가 싫어. 재수 없어.’

그 글자들이 마치 생명을 얻은 것처럼 뱍 속에서, 먼지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깨어 있었다.

그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눈물이 말라 붙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도윤을 바라볼 뿐이었다.

‘봐달라’는 눈빛이었다.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었다. 하지만 그 문은 무겁게 닫혔다. 교실의 공기가 그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 눈 속에서 나 자신을 봤다.

인간이던 나. 이름이 ‘이미라’였던 나.

그때의 나는 울고 있었다.

도윤을 향해, 세상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보았지만, 외면했어.” 그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고백이 아니라, 증언이었다.


도윤이 무릎을 꿇었다.

“그날 널 봤어. 근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무서웠어.”

“이제 말할게. 나는 그걸 봤어. 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어. 심지어 증언마저도. 그게 내 죄야.” 그의 말은 떨렸지만, 명확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교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먼지가 하나씩 떨어지듯 기억의 입자들이 흩어졌다.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이제 봤잖아. 말했잖아. 그걸로 충분해.”


몇 번을 꿈을 되돌리고 되돌려 보았다.

내가 꿈속에서 본 것이 도윤이 복원한 기억인지, 능력의 대가로 잊어버린 나의 기억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냥 꿈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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