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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Dec 29. 2023

창작의 시간

-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  -

퀸스타운을 떠나는 날이다. 항공 예약을 할 때 보통 체크아웃 시간에 맞추어 비행기 타는 시간을 예약한다. 이것도 바뀐 여행 패턴인데, 어렸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여행지에 머물고 싶어서 비행기 시간을 늦게 잡았다. 하지만, 짐 들고 다니는 일이 힘들고, 짐을 맡기고 다녀도 찾으러 가야 하는 일이 번거롭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체크아웃 시간에 맞추어 항공기를 예약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퀸스타운에서 좀 더 시간을 갖고 싶었고 마침, 제일 싼 항공권이 오후 비행기였다.    

 

체크아웃하고 인근 호텔의 카페로 갔다. 원래는 시내 구경을 한 번 더할까 싶었는데 갑자기 왔다 갔다 하는 일이 귀찮아진 데다, 더 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대신,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여행 짐을 싸면서 스케치북을 넣었다가 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림 그릴 시간이 있을까? 시간이야 만들면 되지. 괜히 짐만 되는 거 아닐까?’ 등등을 고민하다가 연필과 작은 스케치북을 넣었다. 사색과 쉼의 여행을 하고자 했으니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카페에서 두 장의 그림을 그렸다. 연필로 그렸는데 결과물이 맘에 들었다. 스케치북을 가져온 보람이 있었다. 숙제를 마친 학생의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와 퀸스타운 공항으로 마중 나왔던 벤자민을 다시 만났다. 비행기 시간이 아직 좀 남아서 공항 가는 길에 차 한잔을 하기로 했다. 벤자민이 힐튼 호텔의 전망이 멋지다고 하여 그곳으로 갔다.      


그날은 햇살이 참 따사로운 겨울 날씨였다. 해가 중천에 떠 있고 호수에 비치는 햇빛은 눈부셨다. 낮은 산과 멀리 보이는 만년설 산. 낭만적으로 보이는 선착장.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과 좌석에 앉아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요하고 평온한 순간을 즐겼다.     

퀸스타운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 올 때는 여기서 묵어보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무척 가벼운 마음으로, 마치 국내여행을 한 듯한 마음으로 퀸스타운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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