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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an 03. 2024

광활한 초원, 사람보다 많은 양 떼

- 연애 세포가 깨어나나? -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후 친구 집으로 갔다. 친구와 로토루아에 같이 가기로 했다. 감기 기운이 있던 친구에게 여행을 취소해도 된다고 했는데, 로토루아에서 볼 일도 있고 약을 먹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쉬엄쉬엄 천천히 가자며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마타마타(Matamata) 지역을 들렸다. 그곳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 족 마을 세트장(Hobbiton Movie Set)이 있는 곳이다. 영화 시리즈 세 편을 모두 본 사람으로서, 영화 세트장을 한번 들려보고 싶었다. 친구는 “거기 뭐 볼 거 있다고 가냐?”라고 했지만, 그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다. 비록 세월이 흘러 영화 장면을 속속들이 기억은 못해도 호빗족이 살던 마을은 기억난다. 영화나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그 장소를 방문하려는 마음은 동서양, 남녀노소, 나이와 상관없는 것 같다.      

마타마타는 오클랜드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다. 차 안에서, 양쪽으로 펼쳐지는 초원과 양 떼들을 보았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와, 저기 봐. 양 떼야. 말도 있어. 저건 젖소네!” 이러면서, 친구와 얘기하다 말고 사진 찍기 바빴다. 여기 살 때 흔히 보던 광경인데,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이런 풍경을. 역시 뉴질랜드는 사람보다 양 떼가 많은 나라다. 이렇게 시야가 트이고 눈에 좋다는 초록색을 쉽게 볼 수 있는 점이 뉴질랜드의 매력이다.      

영화 세트장이 만들어진 목장도 마찬가지였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젖소, 양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영화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이 거대한 목장이 사유지라니 놀라웠다. 개인 소유의 목장인데 세트장으로 이용된 후, 그 세트장을 보존하여 관광객을 받고 있었다. 영화감독 피터 잭슨(Peter Jackson)이 영화 촬영지 물색을 하다가 발견한 곳이라고 한다.      

호비튼 투어는 표를 구매하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친구는 할 일이 있어 차에서 일을 하기로 했었다.  나 혼자 투어에 나섰다. 버스에 탑승하자 가이드가  간단한 영화 소개를 한 후 영화감독 인터뷰와 세트장이 나오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여줬다. 세트장에 도착해서는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는데 그중에 잔디를 밟지 말라는 부탁이 있었다. 원래는 밟아도 되는데,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오다 보니 잔디가 견디지를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길만 따라 걸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리고 영화 세트장이기 때문에, 호빗족의 집은 겉모양만 만들어져 있으니 굳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니 예쁜 사진을 많이 찍으라는 당부를 했다.

세트장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호빗 족 키에 맞춰 작게 만들어진 집은 물론이고, 식탁, 의자, 벤치, 그릇 등이 그에 맞게 앙증맞게 작았다. 빨래가 널려있고 잼인지 꿀인지 소스인지 모를 양념통이 테이블에 올려있는 것은 꽤 사실적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리고 세트장 가장 높은 곳에서 본 목장의 전경은 광활했다.    

가이드는 세트장에 나무 모양을 한 가짜가 있는데 맞춰보라면서 몇 곳을 가리켰다. 관광객들이 각자 의견을 내놓자, 그중 한 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가 가짜”라고 말했다. 영화 스텝들이 나뭇잎 하나하나 다 붙인 거라고 했다. 감독이 원하는 나무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이 세트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을 들였을지 상상이 되었다.   

가이드가 한 호빗의 집에서 관광객들의 독사진을 일일이 찍어 주었다. 아마도 포토 스폿(photo spot)인 듯했다.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얘기로 말을 건네며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관광객들은 가이드와 주거니 받거니 농담을 하며 투어를 즐겼다. 그중 특히 리액션이 좋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 친인척 관계로 보였다. 처음에는 커플끼리 온 줄 알았는데, 아이들을 서로 번갈아 가며 안고 손잡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가족 같았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까지 3대인 것 같았다.    

문득 외국 사람들, 특히 서양 사람들은 짝 없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 잠깐 솔로(solo)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있겠지만, 평생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우리보다 자유롭게 하는 것 같다. 연애에 관해서는 사고도 열려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방종, 문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만 느끼는 것일 수 있지만, 우린 사람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뭔가 틀에 얽매어 있다. 이것저것 재는 것이 많다. 어쩌면 나도 다른 환경에 놓였더라면, 연애를 수없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투어의 마지막 코스로 맥주, 에일(ale) 등이 제공되었다. 다들 한 잔씩 들고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었다. 한 젊은 커플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며 웃고 있었다. 그 커플도 나와 같은 그룹의 관광객이었다. 둘이 손잡고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아 눈길이 갔었다. 마침 셀피(selfie) 말고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 커플이 옆에 왔다. 여자가 내 휴대폰을 건네받더니 여러 각도에서 찍기 시작했다. 내심 마음에 들었다.      

기념품으로 머그잔을 받았다. 머그잔은 꽤 크고, 도자기로 되어 있어 깨질 것 같았다. 서울까지 가져올 엄두가 나지 않아 로토루아에 사는 친구 동생에게 주었다. 동생은 이 머그잔이 유명하다면서 온라인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알려줬다. 공짜 물건을 판매하는 건 어디에나 있나 보다.

호비튼 투어는 기대한 만큼 좋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대자연에 지어진 세트장이 원래 그런 마을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점이 놀라웠다. 친구에게 너도 한번 구경해 보라고 권했다. 대자연이 주변에 널린 일상이라 나만큼의 감동과 재미는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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