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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an 01. 2024

매력이 사라진 도시

- 사람 사는 곳의 똑같은 문제 -

오클랜드도 다른 일반 대도시와 비슷해져 가고 있다. 특색 없는 높은 빌딩들이 들어섰고 지금도 그런 빌딩들이 들어서려고 한창 공사 중이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발전하여 차 없이도 다닐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사람들도 많아져 복잡했다. 뉴질랜드 인구는 500만 명 전후인데 이민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반면, 뉴질랜드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있단다. 특히 젊은 층은 학업, 직장을 위해 호주, 영국 등으로 옮겨가고 있단다. 같은 일을 하는 경우 호주가 뉴질랜드 급여의 두, 세배가 많으니 당연한 현상이라고 자조 섞인 말들을 했다.      


친구만 해도 딸의 대학 진학은 미국이나 영국으로 보낼 계획을 하고 있었다. 뉴질랜드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직장을 호주에서 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똑똑한 애들은 다 빠져나가고 떨거지만 남아있게 되는 거 아냐?” 하는 우려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단다. 강경파들은 호주와 하나로 합치자는 얘기를 한다고 한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력이 꼭 우수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뉴질랜드로 이민 가는 사람이 진취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고, 이민 기준을 보더라도 우수한 인력일 가능성이 높다. 뉴질랜드는 영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제2외국어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려면 꽤 공부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인이 떠난 자리를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 잘 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뉴질랜드의 미래가 그렇게 어둡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에어컨 설치하는데 2개월 이상이 걸릴 만큼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워낙 일을 빨리 처리하는 곳이 아니지만, 에어컨 설치 하나 하는데 2개월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호텔 방에서 오전 내내 책을 봤다. 읽고 싶어 사놓고 한 장을 넘기지 못한 책들이 침대 옆에 쌓여가고 있었다. 직접 산 책도 손이 가지 않아 묵혀두었으니, 선물 받은 책은 더했다. 몇 년이 흘러도 그 자리에 탑을 쌓고 있는 책들을 보며, 얼른 책장에 꽂겠다는 결심을 하고 올해부터(2023년)는 열심히 읽었다. 책탑이 좀 낮아졌지만, 여전히 읽어야 할 것이 많았다. 그중 2021년 생일선물로 받았던 책 한 권을 들고 와 여행 중 틈틈이 읽었다.      


너무 방안에만 있는 것 같아 산책할 겸 주변을 걸었다. 가고 싶은 곳이 특별히 없었기에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곳만 둘러보는데, 부동산에 눈길이 갔다. 여기는 시세가 얼마인가 싶어 부동산이 눈에 뜨일 때마다 멈추어 살펴봤다. 시내에 있는 아파트는 대략 5-6 억 원이었는데 주로 원룸 아니면 방 두 개짜리였다. 주택은 기본 100만 달러가 넘었다. 90년대에 100만 달러는 갑부가 사는 집이었다. 백만장자 소리를 듣던 액수인데, 이제 백만장자는 부자에 속하지도 않는 것 같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 힘든 건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여기는 특히 중국 사람들이 집값을 많이 올려놨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코로나 이후로 외국인은 집을 살 수 없게 막았다고 한다.      


마트에 들러 크래커(cracker), 칩스(chips), 초콜릿 등을 구매했다. 여행용 기념품으로 먹을 것을 많이 사는 편이다. 그 나라에서만 팔고 살 수 있는 것으로. 요즘엔 인터넷으로 뭐든 다 살 수 있지만, 현지에서 산 느낌은 아무래도 색다르다.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양인지 가늠한 후에 계산을 치렀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셀프 계산대는 괜히 긴장된다. 화면안내에 따라 천천히 하면 되는데 실수로 다른 곳을 누르거나, 카드 대는 곳을 찾지 못하거나 하며 허둥대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져서 초조해진다. 기다리는 뒷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럴 때 직원이 도와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여기 마트의 계산대는 실수 없이 술술 잘했다. 그간 퀸스타운 마트에 몇 번 들렸더니, 확실히 경험한 효과가 있나 보다.   


친구가 집으로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해서 또 가기로 했다. 지난번처럼 뉴마켓에서 만나기로 하여 브리토마트 기차역으로 갔다. 표를 사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려는데 막혀있었다. 기차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역무원이 버스 정류장을 알려주며 그곳에서 대체 버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주었다. 왜 운행을 안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토요일이어서 운행 시간이 단축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을 뿐. 버스 정류장은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며 봤었던 곳이어서 금방 찾았다. 운전사에게 기차표를 보여주고 뉴마켓에 가냐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들의 탑승이 어느 정도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출발했다. 뉴마켓으로 바로 가는 버스여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만나기로 한 역으로 걸어갔다. 픽업 나오는 사람은 친구가 저녁 멤버로 부른 사람이었는데, 여기 살 때 잠깐 만났던 사람이다. 이름은 기억나지만,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 알아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 바로 알아봤다.      

그의 부인이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서로 밝게 인사를 나누며 30년 전 옛날 얘기를 했다. 저녁식사 시간까지 옛날 얘기는 이어졌다. 이번에는 친구의 남편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두 부부는 가끔 만나 식사를 하는 사이라고 했다. 일적으로도 함께 한 적이 있어서 친한 관계로 보였다. 역시나 맛있는 음식, 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저녁시간이었다.     


뉴질랜드로 이민 간 지 30년 된 친구는 그곳에서 무척 안정되어 보였다. 개인적인 삶도, 일도. 그리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가끔 볼 때는 어떻게 사는지를 피상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직접 보니 자랑스러웠다. 많은 것을 일군 친구가 대견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냉수로 샤워하고 불경을 읽고 기도하는 친구의 아침 루틴을 볼 때마다 놀라웠다. 그 강한 의지와 실천력에. 그 원동력의 결실을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친구의 성공을 기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나 자신도, 기특했다.     


호텔방에 돌아와 창밖을 봤다. 반짝이는 항구의 불빛과 바다는 다른 나라에 왔음을 알려주었다. 한때는 여기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매력이 사라진 오클랜드는 그런 마음을 사라지게 했다. 내게 이 도시는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즐기기 위해 거치는, 관문으로서의 역할만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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