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싶다’라는 욕구는 오르락내리락 했다. 마치 주가 차트(chart)처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바쁘게 지내는 틈틈이 ‘임무 완료’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 때는 주변 사람을 종용했다. 결혼은 내게 해결해야 하는 숙제, 임무였다. 한 번도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 없다. 그러나 정작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진심인 적은 없었다. 그렇게 형식적인 말을 건네는 이유는 노력한다는 위안을 얻기 위함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더 초조하니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면서도 일로 만난 사람은 선 밖에 있었다. 간혹 점심, 저녁을 먹자는 제의가 오면 그 일과 관련된 사람 전부와 같이 먹었다. 둘만 따로 만나는 일을 만들지 않았다.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일을 잘해 낼 자신이 없었다. 스물여섯에 썸 타던 사람이 같은 회사 동료였기에 그 당시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한창 PC통신 동호회가 유행할 때 영화, 드라마 등 몇몇 모임에 가입하여 오프라인에 나가봤지만, 친해지는 사람은 죄다 여자였다. 남자들은 또 거의 어렸다. 도대체 내가 만날 수 있는 남자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친구는 운동 동호회에 가입하라고 했다. 등산, 골프, 테니스 등등. 그런데 그때 나는 운동과 거리가 멀었다. 특히 산은 지금이나 그때나 힘들게 왜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내려와야 하는데. 물론 여러 번 등산한 적 있다. 설악산 대청봉에 가본 적도 있다.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나 탁 트인 전망이 멋진 걸 잘 알지만, 오르는 과정을 상쇄할 만큼은 아니다. 남자 만나자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친구는 술을 좀 마시고 풀어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때 나이트에 자주 갔다. 같이 간 선배 언니에게는 말 붙이는 사람이 많았는데 내게는 없었다. 내 표정이 너무 근엄하다나 뭐라나. 그 언니와 일행이라는 이유로 몇 번 남자들과 어울려 봤지만, 난 도대체 풀어질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은 상대가 있어야 풀어지든 뭐든 하지 않나? 아무한테나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원나잇(one night)이 내 목적은 아니었으므로, 모르는 사람 앞에서 술 퍼마시고 해롱댈 수는 없었다. 아무튼 결혼하려고 내 방식대로 나름 노력하며 살았다.
마흔다섯, 그날 불현듯 들려온 속삭이는 소리에 마지막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혐오해 마지않던 결혼정보회사에 자발적으로 찾아갔다. 최후의 보루라는 심정으로. 상담사는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 직업이 좋으니 승산 있다, 초혼이라서 좋다 등의 말을 하며 나의 상품 가치를 평가했다. 잘 팔릴만한 상품이라며 추켜세웠다. 누구에게 잘 팔릴만한 상품이라는 말일까? 나란 상품을 구매할 고객은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데 이십 대 후반에 들었던 조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초혼의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혼 경력 있는 사람에 자녀까지 있는 사람이 잠정 구매자였다. ‘세상에! 이런 조건이면 이십 년 전과 다른 게 뭐야?’라며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뭐, 이럴 줄 알고 온 거니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란 상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은 고객과는 좀 다른 조건의 고객을 원한다고 했다. 큰돈 들여 결혼 상대자를 구하는 일이라면, 그 돈에 걸맞게 결혼정보회사가 좀 더 일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조건을 내걸었다. 상담사는 무척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양보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사랑으로 결혼해야 한다는 결혼관은 어디로 가버리고 결혼이 목적이 되어버린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일단 사람을 만나야 할 것 아니냐고. 조건이든 뭐든 사람을 만나야 그와 맞을지 아닐지, 상대를 사랑하게 될지 아닐지를 가늠할 수 있지 않냐고. 주변에 만날 사람이 없으니 이런 회사를 이용하는 거라고.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강남역 버스 정류장에 한참을 서 있었다.
며칠 후 두 명의 프로필을 받았다. 한 사람은 이혼 경력이 있지만, 법적으로는 초혼. 혼인신고 전에 헤어진 사람이란다. 다른 한 사람은 완전 초혼. 나이는 둘 다 비슷했다. 내가 내건 조건에 맞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만나보기로 했다. 먼저 혼인신고 전 헤어졌다는 사람과 만났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신혼여행 다녀와서 헤어졌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 별 느낌이 없었다. 어렵게 만든 기회이니 애프터를 받으면 더 만날 의향이 있었다. 다행인지 그 남자가 적극적이었다. 일주일에 세, 네 번을 만났다. 그 사이 그의 장점이 눈에 들어왔다. 좀 좋아졌다. 두 번째로 만나기로 한 완전 초혼이라던 남자와 약속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만날지 말지 고민하는데, 마침 그 초혼남이 갑자기 감기에 걸려 나올 수 없다고 연락했다. 내심 잘됐다 싶었다. '인연이 아니구나'라며 단정했다. 결혼정보회사에 첫 번째 만난 사람과 잘해보고 싶어서 다른 만남은 보류하고 싶다고 알렸다. 총 세 명을 만나보기로 계약했으므로, 회사에서는 다른 사람도 만나보라 권했지만, 이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 소개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과 결혼할 줄 알았다. 만날수록 좋았고 사랑하는 감정도 생겼다. 인위적인 만남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는 사실에 기뻤다.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머리에서 종이 울린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랬다. 첫 만남에서는 아니었지만,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만남에서 ‘인연이다.’ 싶었다. 그는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헤어진 경험이 있으므로 결혼을 급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사랑하기에 이해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므로 결혼이라는 형식은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았다. 그런데 사랑 때문에 내가 병들고 있었다. 그와 잘되고 싶어서 나를 감추고 맞추기만 했다. 음식, 술 취향, 정치 성향,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 등 모든 게 달랐다. 그것 때문에 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벌어진 틈을 메꾸기 어려웠다. 사랑했지만,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그와 헤어졌다. 후유증은 오래갔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후,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혼자로 남은 건 내 운명이지 싶다.
좌우명 중 하나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이다.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움직이다 보면 이루게 된다는 걸 살면서 터득했다. 그러나 간절함에도 이뤄지지 않는 일 또한 있다는 것을 안다. 그건 어쩌면 운명일 것이라며 물러선다. 좌우명 중 다른 하나는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말고”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길이 아닌가 보다’하며 포기할 줄 알아야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
내가 그동안 경험하고 체득하고 깨달았던 가치관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 취향에 맞춰 살아야 한다면 혼자이기를 택할 것이다. 실연으로 아픈 시간을 보냈지만, 그 때문에 내 삶을 더 감사하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좀 더 잘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난 독신주의자가 아니었고 비혼주의자도 아니다. 지금 미혼이지만 언젠가 미혼이 아닐 수 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 혼자인 삶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