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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ul 24. 2024

비자발적 비혼1

마흔다섯 살 어느 아침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세수한 후 거울을 보며 이를 닦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말이 들렸다.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 안 된다. 혼자 있으면 안 된다.’ 누가 속삭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말들이 귓전을 때렸다. 순간 칫솔질을 멈추고 얼굴을 봤다. 마음이 초조해진 것과 대조적으로 무척 평온한 얼굴. 서둘러 양치를 끝내고 다시 거울을 봤다. 왼쪽, 오른쪽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살폈다. 아직 팔자 주름은 봐줄 만했다. 눈 밑, 볼 위쪽에 기미가 살짝 보였다.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니 양쪽 눈가 주름이 선명했다.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결혼을 늦게 하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과 일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일을 선택할 거라고 했다. 엄마는 항상 일찍 결혼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다가 스물일곱에 결혼하라고 하셨다. 그 까닭인지 나도 스물일곱쯤에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니까 늦게 한다는 기준은 스물일곱이었다. 그때는 스물두세 살부터 결혼해서 스물다섯이면 거의 다 했다. 마침 스물여섯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도 같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썸만 타고 관계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렇게 스물일곱을 넘겼다. 이십 대 후반이 되자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초조해했다. 한 친구는 결혼정보회사에 같이 가입하자고 했다. 그 무렵 선우, 듀오 두 결혼정보회사가 등장하여 소위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 엄청나게 광고할 때다. ‘뚜쟁이’, ‘중매쟁이’가 인맥으로 알음알음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던 시대에서 회원 정보를 기반으로 서로의 요구사항을 매칭시켜 주는 점이 뭔가 선진화된 느낌을 주었다. 회원가입은 철저한 신원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나 굉장히 자본주의 냄새를 풍기는 시스템이었다. 시장에 매물로 나온 물건 취급을 하는 것 같아 기분 나빴다. 친구는 신분이 확실한 사람을 소개받으니 그게 더 낫지 않냐고 했다. 결국, 친구 성화에 못 이겨 함께 갔다. 결혼 정보회사에서는 서른 살을 목전에 두었기 때문에, 이십 대 초, 중반의 여자보다 좀 나쁜 조건의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나쁜 조건의 남자란 나이 많고 초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실망하는 마음을 안고 고개를 떨구었다. 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하는거지, 조건 보고 만나 결혼할 수 있겠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내 결혼관은 그랬다. 자연스럽게 만나 인간적으로 친해지다가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는 상대를 만나고 싶었다.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사람을 만나 첫눈에 반한 사랑을 하든가. 후자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경우지만, 실제로 기차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직장 후배가 있었고, 한 친구는 출장길 기내에서 만나 결혼했으므로 확률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소개팅, 중매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가 소개팅을 제안하면 거절했다. 여자 나이 서른이면 늙은 줄 알았던 때다. 2000년에 지구가 망한다는 흉흉한 얘기에 ‘그때면 서른이 넘었으니 죽어도 아쉽지 않겠구나’ 싶을 정도로 서른 살 이후는 더 이상 젊지 않고 희망 없는 나이라고 여겼다. 그 탓에 서른을 목전에 둔 스물아홉 살, 마음이 날카로웠다. 늦어도 서른 전에 짝을 만날 줄 알았는데 나만 남는 것 같아 초조했다. ‘서른이 넘으면 결혼도 못 하고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속이 시끄러웠다. 이십 대 후반부터 농담처럼 듣던 ‘노처녀 히스테리’란 말이 싫었음에도 나조차 ‘이게 히스테리인가?’ 싶을 정도로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은 종잡을 수 없게 널뛰기를 하면서 표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갑게 무장했다. 원래도 얼굴이 무표정해 차갑게 보이는 인상인데 그때는 ‘건들지 마시오’라고 시위하듯 일부러 더 차갑고 딱딱한 표정으로 다녔다. 노처녀라고 얕잡아 볼까 봐 ‘접근 불가’ 모드를 취했다.      


그러다가 서른에 소개팅을 열심히 했다. 직장 선배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다. 1년쯤 만난 것 같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사귄 기간이 정확하지 않다. 곱씹어 보니, 여름옷을 입고 그의 집에 인사하러 갔고, 12월 31일을 같이 보내자고 여행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니 1년쯤은 만났을 것이다. 남자와 처음으로 여행 간다는 사실에 좀 들떴지만, 막상 여행은 즐겁지 않았다. 즐겁기는커녕 그 여행을 계기로 그 남자와 결혼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는 느낌이 없었다. 그도 나도 “우리 결혼하자”라는 말없이 혼기가 꽉 찼다는 이유로 서로의 집에 인사를 드렸던 것 같다. 뭔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이렇게 다들 결혼하나 보다’라며 시간에 끌려갔다. 그러다 늦은 밤 나를 데려다주는 택시 안에서 그가 다른 여자와 통화하는 걸 듣게 되었다. 전화 볼륨이 크게 되어 있던 건지, 상대방의 목소리가 컸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자였다.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참 다정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화가 났었다. 그리고 그 일을 핑계로 그와 헤어졌다. 헤어지고 싶었는데 때마침 그가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그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헤어짐에 따른 상실감은 일주일도 채 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후련했다. 결혼하지 않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그때의 나는 ‘결혼해야 한다’라는 초조함과 나를 좋아한다는 상대방의 말에 끌려갔던 것이다.      


그와 헤어진 후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를 만날 때 얼굴 보고 대화는 했지만, 그의 눈빛을 제대로 본 적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시력이 나쁜데도 데이트할 때 안경을 끼지 않았다. 안경 끼면 예뻐 보이지 않아서. 렌즈는 괜히 무섭다고 낄 생각을 안 했다. (난 겁이 많다. 무서워서 귀도 뚫지 않았다. 예쁜 귀걸이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앞으로는 상대의 말만 믿지 않고 눈을 똑바로 보며 거짓인지 참인지 직접 판단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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