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남편과 자식 없는 생이라 단출합니다.

by 지홀

“혼자 살 팔자야” 이 말을 들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사주에 남자 없다는 소리는 불치병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청천벽력일 것 같아 외면하고 싶었다. 결혼을 간절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니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이므로 자연스레 나도 하게 될 줄 알았다.


이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까지 점집을 꽤 다녔다. 언제 결혼할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내림 받은 점쟁이부터 용하다는 점술가까지. 생활반경을 벗어나 먼 곳으로 가는 것을 귀찮아함에도 서울이라면 장소 불문 달려갔다. 한 번은 점을 아주 잘 친다는 전라도에 거주하는 점쟁이 연락처를 입수했다. 전화로도 점을 봐준다고 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알려 줬더니 서른아홉에 결혼한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딱 부러지게 나이를 언급한 점쟁이는 처음이라 신뢰가 확 생겼다. 그때가 서른하나 인가 둘이었다. 서른아홉이란 나이가 오긴 올까 하며 아주 먼 나라 얘기처럼 까마득하게 들렸고, 다 늙어 만나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결혼한다는 안도감에 기분 좋았다. 결론적으로 그 점쟁이는 내 미래를 맞히지 못했다. 서른아홉 즈음에 결혼의 기역도 기미가 없었다.


어떤 점쟁이는 일찍 결혼했다면 이혼했을 거라며 늦게 해야 좋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며칠은 당당했다. 늦게 결혼할 운명이었다며 여기저기 말했다. 어떤 곳은 도화살이 있어 결혼하기 힘들다고 했다. 대신 일로 성공한다고 했다. 그래도 사주에 남자가 보이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언제가 결혼할 거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은 날은 더 의기소침해졌다. 사주에 결혼할 팔자가 아니라고 나왔는데 모진 말을 할 수 없어 ‘언젠가’라는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희비가 엇갈린 말들을 들으며 일희일비했다. 서른일곱, 여덟이 되어도 결혼은 요원한 일이었다. 도대체 점쟁이가 말했던 ‘늦게’, ‘언젠가’의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혼자인 것을 의아해했다. 얼굴 예쁘고 성격 좋은데 왜 못하냐는 말을 했다. 나도 의아했다. 나보다 이기적이고 못된 여자, 나보다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도 다 결혼했다. 왜 날 좋다는 사람이 없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딘가 모자라거나 까다로운 사람 취급을 받아 속상한 건 덤이었다. 자연히 위축되고 주눅 들었다. 그러다가 ‘늦게’, ‘언젠가’ 만난다는 남자를 만나 사랑했고 실연했다. 그 후 결혼에 얽매이는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생은 남편과 자식(남자) 없는 생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더 이상 갖지 못하고 가질 수 없는 걸 바라지 않게 되었다. 이뤄질 수 없는 건 목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덕분에 단출한 인생이다. 단출한 인생이라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다.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남들 말에 귀가 팔랑거려 쉽게 유혹에 넘어갔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마음이 단단해졌다. 공부하고 여행하고 운동하고 취미활동 하는 모든 것을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취미생활 덕분에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느슨한 연대감을 유지하며 생활의 즐거운 경험을 넓힌다. 오래 만난 친구, 지인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같이 울고 웃는다. “즐거운 경험의 합이 행복”이라는 서은국 교수의 말씀처럼 현재에 충실하며 매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그런 즐거운 경험이 쌓이자 마음이 좀 너그러워졌다. 너그러운 마음은 불안을 줄이고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지금껏 심적, 물리적 자립을 일구며 혼자 잘 살아왔듯, 앞으로도 혼자 살 삶이 그리 두렵지 않다. 남자(남편과 자식) 없는 이번 생, 의도하지 않았지만 만족한다.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따라서 비혼 예찬론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꿈꾸는 결혼예찬론자도 아니다. 그러나 사랑 예찬론자다. 사랑의 위대함을 믿는다. 언제나 로맨스를 꿈꾼다. 이번 생은 남편과 자식은 없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만날 기회는 아직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혹여 이번 생에 사랑하는 남자가 없더라도 불행하지는 않다. 순간, 순간 즐겁고 건강한 인생을 살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별것 없는 중년 여자의 개인적인 얘기지만,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고 묘하게 위로받고 묘하게 공감하시기를 바란다. 더불어 묘하게 재미도 느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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