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에 있는 베트남 식당으로 직장 후배 미영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나와 한 팀에서 일했는데 기획력이 좋았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그녀의 시선은 신선하면서도 색달라서, 대화할 때 문득문득 영감을 받을 때가 많았다. 브레인스토밍 시간에 아무 얘기나 하는 가운데에 그녀가 툭 던진 말이 귀에 쏙 들어와 그 단어를 계기로 프로젝트 이름을 짓거나, 마케팅 캠페인 기획을 일사천리로 끝낸 일이 있다. 사적으로도 대화가 잘 통해 자정을 넘겨 갈 곳이 없자 편의점에 들어가 얘기를 계속하기도 했다. 책을 많이 읽고 사유를 많이 하는 그녀와 얘기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런 그녀가 년 초에 퇴사했다. 대학원에 갔기 때문이다. 회사와 병행하려고 했지만 학교가 멀어서 고민하다 회사를 관뒀다. 우린 일할 때보다 더 친해졌다. 회사에서는 팀장과 팀원이었지만, 지금은 친한 선후배가 되었다.
그녀가 가보고 싶다는 베트남 식당은,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다. 한옥을 개조한 이탈리아 식당, 그리스 식당 등 서양식 음식을 파는 곳은 많이 가봤지만, 베트남 식당은 처음이었다. 그녀만큼 독특한 레스토랑이었다. 예약을 필수로 해야 했다. 퇴근 시간을 고려해 6시 30분에 예약하려고 했는데 그 시간에는 예약할 수 없어서 6시로 했더니 가능했다. 덕분에 1시간 연차를 쓰고 일찍 퇴근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빈 테이블이 많았는데, 6시 30분이 되자 테이블이 꽉 찼다. 음식은 정갈하게 나왔고 맛있었다. 반쎄오가 좀 기름졌지만, 고수, 민트, 바질을 곁들여 먹었더니 중화되었다.
미영이 반쎄오를 먹기 좋게 가위로 잘랐다. 나는 쌀국수를 개인 그릇에 덜어 담으며 말했다. “대학원 간다니까 주변에 결혼 걱정하는 사람 없었어?” 그녀는 나보다 열세 살이 어리지만, 마흔이 넘었다. 소위 ‘나이 많은 싱글 여자’가 공부한다고 하면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여자가 가방끈 길면 결혼에서 더 멀어진다고. 서른 후반에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당시 석사 선배가 박사를 먼저 하고 있었는데 그 선배도 그런 얘기를 숱하게 들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그녀는 남편과 딸이 있다). “그 나이에 공부해서 뭐 할 거냐. 공부 더해봤자 결혼만 늦어진다”라며 남의 인생에 빙의해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기저에는 똑똑한 여자는 ‘팔자 센’, ‘기 센’, ‘드센’ 여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남성의 시각에서 현모양처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묵묵히 참고 지내는 여자를 일컫는데 많이 배운 여자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운 여자는 결혼하기 힘들다.’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시대의 남자 상은 모든 면에서 여자보다 잘나야 했다. 그래서 부부 중 여자가 돈을 더 잘 벌면,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말이 많았고 회사에서도 여자 상사 밑에서는 일 못 한다고 외치는 남자가 태반이었다. 21세기에 그런 인식은 많이 변했지만, 아직 남아있다. 가수 이효리 남편 이상순과 작가 김은희 남편 장항준 감독이 여성의 지지를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돈 잘 버는 부인을 괴롭히는 못난 남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경제력이 더 좋다고 인정한다. 경제력이 좋다고 모든 면에서 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장, 단점이 있는 인간 그 자체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꼬인 구석’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호감도가 올라간 것이다. 사람의 능력치는 저마다 다르다. 그건 성별로 구분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남성의 우월적 사고방식으로 불필요한 갈등이 유발되고 또 겪어야 한다. 게르만족이 세상에서 제일 우월하다는 것과 뭐가 다를까?
한때 웃지 못할 이론이 유행한 적 있다. 남자 등급을 A, B, C, D, E 등으로 나누고 여자 등급을 1, 2, 3, 4, 5 등으로 나눌 때 남자 A는 여자 1이나 2를, B는 2나 3을, C는 3이나 4와 같은 순서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자기와 같거나 자기보다 살짝 못난 여자를 선택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여자는 최하위 등급도 결혼하지만, 여자 1은 남자 A가 선택하지 않으면 혼자 남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재수 없으면 남자 E와 엮이게 된다고 했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눈 것은 아마도 결혼정보회사가 관리하던 회원 분류 방법을 따랐을 것이다. 당시 그 분류 방법이 사회적으로 떠들썩했었다. 비인간적이라고. 그러나, 우리 마음속으로는 이미 직업, 학력, 집안 배경 등을 기준으로 자신과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을 분류하고 있었기에 그 이론이 꽤 설득력 있게 인용되었다. 사회적 세뇌 상태에 있던 나도 수긍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할 생각은 없었다. 박사 했다고 내가 1등급인가? 1등급의 기준이 학력이라면 그럴지도. 그러나 경제력, 집안 배경, 직업이라면 ‘글쎄올시다’다. 세속적 분류로 ‘사’ 자 직업이 아니고, 집이 부자거나 명망 있거나 그렇다고 권력이 있는 것도, 독립유공자 집안도 아니다. 경제력은 내 한 몸 추스르는 정도다. 그러므로 1등급이 될까 두려워 공부를 안 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박사과정을 했기 때문에 이직할 수 있었다. 그것도 마흔에. 서류, 필기, 면접, 영어면접을 거쳐 직장을 옮길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력서에 적힌 ‘박사 수료’가 한몫했다고 믿는다. 비록 새로운 직장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논문을 쓰지 않아 학위는 받지 못했지만, 공부하기를 잘했다. 그때 함께 공부했던 사람, 교수들과 네트워크가 생겼고 일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미영은 다 자른 반쎄오를 자기 접시 위에 올리며 말했다. “결혼 언제 하냐고 걱정하죠. 그런데 뭐 석사 정도로 가방끈 길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 관두고 새로운 공부 하면 연애할 시간이 없으니까, 그래서 다들 한 마디씩 했단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은 바뀐 것 같아 다행이다. 십여 년 전에는 공부하는 여자는 기 세고 드센 여자 프레임으로 결혼 못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연애할 시간이 없으면 결혼하기 힘들다고 걱정했다는 점이. 그런데도 여전히 ‘결혼’이라는 강박에 갇혀, 혼자 사는 사람은 끝내야 할 숙제가 남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 유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