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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ul 30. 2024

아직 혼자예요? 아니 왜?

태어나고 자라 결혼하고 아이 낳고 늙어 죽는 인간의 여정은 인류가 생겨난 이래 거의 모든 사람이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 큰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남들 다하는 것을 같이 하지 않을 때 한 무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비주류가 되는 것이다. 비주류는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주 외면당하고 본질이 아닌 상상, 추측, 억측으로 만들어진 고정관념의 피해자가 된다. 대표적으로 혼자 사는 여자를 얕보는 것이고, 혼자 사는 남자를 하자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거기에 여자의 외모가 좀 화려하다면 성적 대상으로 쉽게 보는 경향이 있고 울타리 밖에 있다(혹은 보호자가 없다)고 여겨 집적거리기 쉽다고 본다. 남자도 외모가 왜소하다면 ‘남자구실’ 못 할 사람 취급한다. 겉모습이 약해 보이니 체력, 경제력, 지력 모두 약할 것이라 치부한다. 심지어 아무 경험 없는 사람보다 이혼 경력 있는 남자가 낫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그런 편견 어린 말을 듣고 자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독립해서 살 때 얕보이고 싶지 않아 현관에 남자 신발을 두거나 칫솔 2개를 놓았다. 여자는 남자, 즉 아버지와 남편 혹은 남자 형제에게라도 보호받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었고 남자들에게 일로 뒤처지고 싶지 않아 요령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공부까지 했음에도 결혼과 남자 문제는 그런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깨지 못했다. 일로 만난 사람들이 당연히 유부녀인 줄 알고 아이가 몇 명이냐고 질문하면, 가끔은 “아이는 없다”라고 했다. 마치 남편은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액면이 아줌마인데 아줌마라 불리는 건 싫으면서, 미혼이라고 말하는 건 창피했다. 나이를 밝히는 게 싫었다.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여 혼자 산다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은 때다. 1인 가구가 늘고 MZ 세대 직원이 많아지자 사적 질문을 삼가는 문화가 생겼다. 여기에 나이가 한몫한다. 그만큼 내 생각도 바뀌었다.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나를 보는 시선이 어떠하든 당당해지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그렇게 어려 보이냐?”라는 질문에 “결혼하지 않아서 그래요”라고 농담할 만큼.

      

근 이십 년 만에 만난 옛 동료 L과 점심을 먹었다. 이름은 기억나지만,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옛 직장 후배 C가 연락하고 지냈던 모양이었다. C가 L과 같이 만나자고 하여 오랜만에 후배 C를 볼 겸 만났다. C는 코로나 때 배달일을 했던 덕분에 걸어 다니며 돈 벌고 건강 챙겼다며 웃었다. 생활력 강하고 낙천적인 가장의 면모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L이 내게 물었다. “애는 몇이에요?” 후배 C는 웃으며 “이 누나는 아직 결혼 안 했어요”라고 대신 말해줬다. L은 놀라서 말했다. “아직 혼자예요? 아니 왜?”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었다. 이십 대 후반부터 “언제 결혼할 거야?”라는 질문을 삼십 대와 사십 대 중반까지 꾸준히 들었다. 심지어 단순히 궁금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결혼하지 못한(?) 이유를 단정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라고. 많은 이들이 그 결론으로 말할 때는 ‘내가 정말 눈이 높은가?’ 스스로 의심하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안타까움과 훈계의 경계 언저리에서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야. 웬만하다 싶으면 그냥 해.”라고. 때로는 위로를 건넸다. “아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이러한 안타까움, 훈계, 위로의 말은 모두,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좋은 의도라는 걸 아니까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말은 ‘무슨 조건을 그렇게 따지니. 너 주제를 알아야지’하는 비아냥을 내포하고 있었고, ‘혹시 짚신만도 못한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 내게 결혼이 지상최대의 과제처럼 여겨지던 시절 얘기다. 그렇게 나조차도 잊고 있던 “왜 아직 혼자냐”라는 질문이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언젠가 결혼하겠지. 이젠 꼭 결혼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었을 때는 듣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 때문인지 기분 나쁘거나 화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의아한 듯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러게요. 제가 왜 혼자일까요?”     


굉장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L은 그 후 문자로 만나서 반가웠다고 인사를 남기더니 며칠 후에는 전화했다. 뭔가 일과 연관되어 말하는 것 같았으나, 용건 없는 전화였다. 그 후 몇 번 더 전화와 문자가 왔는데 불쾌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 응답하지 않았다. ‘내가 혼자라고 얕보나?’ 싶었다. L은 순수하게 반갑다는 제스처인데 너무 오버 하나 싶기도 했다. 이런 걱정을 친구에게 털어놨더니 친구가 “너 느낌이 맞는 거다”라고 해줬다. L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작업’으로 느꼈다면 그게 맞는 거라면서. 아직도 ‘성적 대상’ 혹은 ‘못 먹는 감 찔러보는 대상’으로 보였다는 게 씁쓸하면서도, 그걸 대응하는 내공이 상승했으므로 큰 고민거리는 아니다. 예전이라면 자책했을 것이다. 내가 무슨 행동을 잘못해서 우습게 보였을까 하면서.     


작년 여름휴가 때 다른 직장의 옛 동료 K를 만났다. 거의 삼십 년 만에 만났다. 내 절친 J와 사업적으로 관계가 있어 둘은 꾸준히 연락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K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할 무렵 사업도 망해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고 했다. 몇 년을 힘겹게 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 재혼했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재기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두 번 결혼할 동안, 왜 한 번도 못 했어요!” 친구 J와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왜 아직 혼자냐는 질문을 이렇게 유쾌하게 물었다. 그러면서 외국은 결혼하지 않아도 동거하거나, 꼭 이성 간이 아니어도 친구끼리, 혹은 동성 연애하는 사람끼리 다양한 형태로 가족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결혼으로만 가족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외국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동의했다. 대부분 부모와 살거나 혼자 산다. 형제, 자매와 사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친구끼리 평생 산다는 생각은 잘 못 한다.      


어찌 되었든, 세상에는 두, 세 번씩 결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번도 못 하는(? 혹은 안 하는?) 사람이 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하지 않은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이 되었지만,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고 속상해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가지 않아 아무도 없는 길 위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지만, 그 길에 점점 사람이 늘고 있다. 여러 갈래의 길에 여럿이 모여 간다. 역시 남과 동떨어진 느낌보다는 어떤 길이든 함께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 위로로 지금 혼자인 삶을 누린다. 결혼했으면 겪어야 했을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어 좋다. 오롯이 나를 위한 선택, 내 위주로 살았다. 내게 집중하는 삶. 결혼하지 않아 얻은 단출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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