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한 생명의 온전한 우주가 되는 일은 부럽다
대학 동기 조영과 희경을 내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옥을 카페로 개조해 남다른 운치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오후 4시쯤 만났다. 평일 낮에 친구를 만나려면 휴가를 내야 한다. 전업주부인 희경과 조영은 주말에는 남편과 자식 밥 차려줘야 한다고 약속을 잡지 않으려고 한다. 스무 살 넘은 다 큰 아이 밥을 하루쯤 안 챙겨주면 어떠냐는 질문을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라고 한다. 주중에는 남편과 아이들 모두 바쁘게 다녀서 밥 차려줄 시간이 없으므로 주말에 집에 있을 때라도 챙겨주고 싶다고 한다. 처음엔 그 마음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엄마를 떠올리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도 금요일 밤이 되면 내게 물어보신다. “내일은 집에 있어?”라고. 약속 있다고 하면 몇 시에 나가는지 확인하신다. 집에서 밥 먹을 시간이 되는지를 가늠하시기 위해. 점심이든 저녁이든 한 끼라도 집에서 먹을 시간이 되면 그때 맞춰 음식을 하신다. “우리 딸 집에 있을 때 맛있는 거 해줘야지”라고 하시면서.
엄마는 나의 우주다. 쉰 중반의 나이라도 내게 엄마는 심적 의지가 되는 사람이다. 가끔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남편이 있어도 이런 마음일까? 의문스럽다. ‘엄마’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그 자체로 절대적 존재일 것이다. 가끔 엄마에게 투정 부리고 난 후 ‘나잇값 못 한다’하며 반성한다. 친구들이 내게 ‘애 같다’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아마도 이런 모습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은 내게 결혼하지 않아서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는 둥, 결혼해서 인생의 깊이를 느껴봐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애 안 낳아도 돼, 결혼하지 않아도 돼, 네가 부러워, 혼자이면 어때 등등의 말을 한다. 반대로 나는 자식 낳은 친구들이 큰 어른으로 보일 때가 있다. 특히 그들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봤을 때. 희경이 딸은 매일 퇴근할 때마다 전화하고 가끔 자기 무릎에 앉아서 “난 엄마가 제일 좋아”라며 안아준다고 환하게 웃었다. 자기는 딱히 딸 뒷바라지를 한 게 없는데 좋아해 주니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조영이가 “우리가 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했는데 당연히 좋아해야지”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만 둘인 조영이는 딸 키우는 재미가 그런 거냐며 부러워했다.
대학 동기, 직장 동기, 일로 만나 친해진 또래 친구, 선, 후배 등 결혼해 아이 낳은 모두가 한 아이의 절대적 존재, 온 우주가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신기하다. 이, 삼십 년 전 치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마치 거대한 어른이 된 듯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모습이 버거워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 생명이 온전한 사람으로 이 사회에 일원이 되도록 키워내는 일을 다들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나도 한때 ‘엄마’가 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났을 때는 ‘아이’라도 낳고 싶었다. 그냥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 마음은 자손 번식하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고, 어쩌면 엄마의 영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결혼해서 아이 낳아야 한다.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아니. 힘들다가도 애가 한번 방긋 웃으면 시름이 사라진다. 남자는 없어도 아이는 있어야 한다. 아이만 낳으면 넌 하고 싶은 일 하고 회사 계속 다녀라. 내가 다 키워줄게. 나이 들면 아이는 있어야 한다. 너 혼자서 어떡하려고 그러니” 등등의 말씀을 내 나이와 상황에 맞게 변주하며 말씀하셨다. 남자는, 남편은 없어도 되지만 자식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엄마가 간절히 되고 싶었던 마음은.
라떼 시절, 아이 낳기에 적합한 나이는 이십 대였다. 그래서 삼십 대가 지나고 사십 대가 되었을 때 좀 초조했다. 마흔 초반에 폐경된 친구가 있었는데 나도 조만간 그런 날을 맞이할 것 같아 두려웠다. “더 이상 여자가 아니다”라고 선고받는 기분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출산 경험 없이 인생을 마감한다고?’ 이런 마음이 들 때는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다행히 마흔 중반에 남자 친구가 생겼을 때 생전 처음 산부인과에 갔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검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항상 생리불순에 손발이 찼던 나는 내심 아이를 잘 갖지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는 했다. 병원에서는 잠재 산모라는 전제로 여러 가지를 적게 했는데 배우자 이름을 적는 곳이 있었다. 망설였다. 아직 결혼한 상태가 아닌데 상대 동의 없이 이름을 적어도 될까. 기록으로 남으면 곤란해질 일은 없나 하면서. 그러나 망설임은 잠시, 이내 ‘남자 친구와 결혼할 거니까’ 하며 그의 이름을 적었다. 막상 적고 나자 어이없게도 결혼이라도 한 양 뿌듯했다. 초음파, 피검사 등을 하는데 곧 아이라도 가질 사람처럼 마음이 둥실, 붕 떴다. 결과 보러 남자 친구와 가고 싶었지만, 너무 앞서간다고 할까 봐,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다행히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다. 다만 나이 때문에 임신될 확률이 낮다고 했다. 마흔 중반, 남자 친구 있는 시기, 이때를 놓치면 영영 아이 낳을 기회는 없을 터였다. 내 인생 마지막 기회였다. 만일 이 남자와 헤어지더라도 아이만은 남았으면 했다. 그때는 그 정도로 아이 갖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막상 헤어지고 나니 ‘아이가 있었더라면’ 하는 미련은 남지 않았다.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면 “애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나”를 발견할 거면서 그리 바라다니.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의 절대적 존재가 되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나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내 배 아파 자식을 낳을 일은 아예 없을 것이다. 인생은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는데 특히 결혼과 아이가 그렇다. 내 팔자에 남편과 자식이 없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운명론자도 아니지만, 손 쓸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있다고 믿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운명의 수레바퀴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 보려고 노력했을 테지만, 이제는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있을 자리는 아내, 엄마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일 것이다. 한 생명의 온전한 우주가 되는 일은 어쩌면 꼭 내가 낳은 자식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예상치 않은 삶을 살 듯이, 그런 날이 예기치 않게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