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6
얼마 전까지만 해도 19세기 사람들이 실존인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먼 옛날사람이었다. 오스트리아 분리파 화가들의 그림 전시회를 볼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살아있던 인물임을 자각했다. 그들이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사망했기 때문에,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사는 내게 바로 대입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기원전 인물은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신화 속 인물, 상상 속의 인물처럼 실감 나지 않는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저자인 마사 누스바움이 기원전 인물인 키케로가 쓴 "나이 듦에 관하여"라는 책과 그의 절친한 친구 '아티쿠스'와 주고받은 서신을 근간으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여러 소주제로 쓴 책이다. 키케로가 기원전 45년에 쓴 책과 서신이 지금까지 전해져 왔다는 점, 그가 쓴 책에 내가 지금 느끼는 육체적, 심리적인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기원전에 노화를 겪은 인물이 깨친 것을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들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게다가 그 시대에 80세, 90세까지 장수했다니 그 또한 경이롭다. 환경적으로 늘 걸어야 했고 좋은 공기를 마셨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인데 그럴듯하다.
키케로는 건강한 생활 습관을 들이고 규칙적으로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질병과 싸울 수 있다고. 그리고 기운을 회복할 만큼 먹고 마셔야지,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먹어대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나 지적이고 정신적인 능력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그것은 정신적 능력은 램프와 같아서 기름을 계속 채우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구절절 모두 맞는 말인데, 이 말을 2천 년 전 사람이 했다.
마사 누스바움은 나이 들면 필연적으로 불행이 따라오는데 유머, 이해, 사랑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제공하는 것은 우정이라고 하면서 나이 들수록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또한 맞다. 나이 들수록 함께 늙어감을 얘기하고 공감하고 서로 기운을 북돋워주는 친구는 중요하다.
오늘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게임> 낭독극을 봤다. 역시나 졸았지만 좋았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를 얘기할 친구도 필요하지만, 취미를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도 필요하다.
늙어감에 따라 깨닫게 되는 것들을 쓰고 싶었는데, 더 보탤 것이 없다.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미 훌륭하게 말했다. 내가 그들을 몰랐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