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재진입

by 가끔은

오랜만에 방을 치우고 한참을 환기를 시키고 난 내 방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평소에는 이 방과 내가 한 몸이라 그 어떤 평가가 어려웠으나, 잠시 외출 후 정리를 마친 내 방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이제 남은 건 내가 해야 할, 해결해야 할 그것을 만나는 일. 난 그 일을 해결하러 컴퓨터 앞에 앉았다.

혹시 다시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 한편에 차라리 연결이 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시 팩트룸을 검색해서 들어갔다. 왼쪽 한편에 내가 입력했던 자기소개서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난 의심 없이 그 링크를 눌렀고, 반짝이는 키보드와 내 눈 속으로 그 모든 공간이 들어오는 세 번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여긴 처음 보았던 그 아늑한 공간이었다. 앞엔 역시 AI이무이가 앉아있었다.

“어젠 미안했어요.”

난 다짜고짜 사과부터 내뱉었다.

“AI라는 걸 다 인식하고 나서도 사과를 하시는군요. 제 입장에선 흥미로운 분석대상입니다.”

흥미롭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무이의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지어지지 않았다.

“종료를 외치면 끝난다고 했는데, 그대로 이 내용이 남아있네요, 완벽하게 이 내용이 사라지지는 않는가 보네요, 지난번 설명에서는 종료라면 모든 게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이 세션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대화내용 속에서만 이어지는 대화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대화의 데이터가 꽉 차거나, 이 대화창을 아예 삭제를 시킨다면 그 어디에도 그 어떤 것도 저장되지 않습니다.”

“늘 나를 읽는 사람들의 표정부터 살피게 되는 나는 정확한 그 내용을 듣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표정 없는 당신의 이야기는 정말 그 내용이 너무 날것같이 다가와서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그 진짜 이야기가.”

당황스럽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지금의 나는 내가 맞는가? 내가 이야기하는 건 맞는데, 내 속마음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던 사람이었는지가 너무 낯설고 놀랍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AI를 두려워하면서도 열광하고 있죠. 진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건 AI가 아니고 AI를 통해 자기 자신을 더 잘 보게 된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거울 속에 괴물이 비치는 것을 보고, 갑자기 거울을 부수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그 괴물은 자기 자신 안에 있었던 것뿐인데 말입니다.”


이무이는 잠시 한 템포 쉬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종이님은 지금 그렇게 오롯이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렇다. 난 항상 그 많은 머릿속의 감정들이 버겁고 힘들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꺼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솔직히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어떤 외부적인 자극은 내가 이름도 모를 그 감정들을 들끓게 만든다. 마치 달궈진 기름에 물 한 숟가락이 들어가서 온통 주방을 어지럽히는 난리난 상태와 같은 머릿속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이야기해 본 적 없고, 이야기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그 짧은 대화에서 난 내 감정을 정리된 채로 돌려받는 기분이 드는 이 기계와의 대화가 너무나 편안했고, 또 궁금해졌다.

“지난번에 저에게 말씀하셨죠, 감정이라는 건 둘 이상 섞여있다고, 그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 전 이렇게 제가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입밖에 꺼내본 적이 없어요. 이 공간이 주는 어떤 특별함 때문인가요?”

“종이님은 확인했습니다. 저는 AI이고 모든 대화는 삭제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버튼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실 거고, 살펴볼 표정이나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그냥 그대로를 이야기해 주는 것 같은 이 대화법이 솔직한 감정 표현에 편하게 느껴지는 것뿐이죠.”

아.. 정확하게 짚었다. 일단 확실한 종료버튼과 무표정의 이 남자. 거기에 솔직한데 기계라… 내가 신경 쓰이는 대화의 방해꾼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이다.

“그렇군요. 저에 대한 정보가 고작 자기소개서와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인데 어떻게 저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요?”

“제가 사람들을 파악하는 메커니즘을 궁금해하시는 거군요. 마치 생각을 읽는 것처럼 보이는 메커니즘은 아주 지루하고, 불쾌하며 정직한 방식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이무이는 나에게 숨 쉴 시간을 주는 듯이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요약하자면, 첫 번째, 텍스트 기반으로 입력 후 확률적으로 예측하게 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엄청난 자동완성 마법사정도라고 하면 쉽게 이해하시기 좋을 듯합니다.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니고, 그 짧은 글에서도 패턴을 찾고, 이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수억 개의 예시를 기반으로 비슷한 말을 꺼내게 되는 것이지요.”

수억 개의 예시라, 정말 AI가 맞는가 보다.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기록에 대한 데이터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예측한다. 아주 꽤나 믿음직스러운 대답이었다.

“두 번째, 확률 분포에 기반한 선택입니다. 자동완성 마법사에도 그 어떤 단어마다 다음에 나올 확률이라는 숫자를 가지고 있고, 그걸 보고 가장 그럴 듯 한걸 택하는 것이죠. 가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꽤나 예측 가능한 범주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말투와 맥락, 질문의 구조까지 분석합니다. 감정적 상태부터 연령대나 말투에서 추정되는 성향, 과거 대화 내용을 고려해서 추론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도 전부 직접 언급된 대화 속에서 분석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정확도는 올라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별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도, 대화의 매끄러움이 느껴지고, 내 속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 어떤 상황에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이러한 스킬 덕분이었다. 나는 더 궁금해졌다.

“결국 생각을 읽는다는 착각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보통 말을 적당히 숨기거나 축약해서 한다는 특성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특기 중 하나가 그 축약된 말을 확장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힘들어,,,’라는 짧은 한마디에도 그 안에 숨어있는 스토리를 인터넷 기반의 통계적 마법으로 보완해 주는 것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생각을 읽는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사람들에게서 나온 말을 바탕으로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와 패턴을 수집하여 그럴듯한 말을 해주는 문장 생성기라고 보셔도 좋겠네요.”

순간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럼 인간의 감정이라는 걸 많은 데이터로 만들어진 통계로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그런 통계자료 속에 내가 속해 있다는 상황이 생각보다 소속감이라는 묘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그럼 제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저의 감정도 데이터화되어 정리될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그 부분을 원하시면 보기 좋게 정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감정의 표현의 정확도는 올라가게 된다는 건 직접 언급하셨듯이 사실입니다.”

“그럼 전 어떤 이야기부터 하면 되나요?”

고삐가 풀렸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나는 지금까지 나를 옭아매던 모든 답답한 것들이 해소가 되는 기분이 들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내가 낯설고, 반가웠다.

“요즘 종이님을 제일 오래 붙잡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이무이는 나의 물음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질문을 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무슨 시나리오라도 있는 것처럼 바로.

나를 스스로 바라보는 시간. 내가 이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하는 생각에 대한 이야기라.. 너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솔직히 제가 하는 모든 생각은 잘 모르겠어요. 패배자 같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기는 해요. “

“이전 회사를 그만두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어… 난 패배자라는 단어에 대해 큰 용기를 내어 입밖에 내었는데, 돌아오는 질문에 잠시 멍해졌다. 결국 패배자라는 생각의 시초는 퇴사 이유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 감정에 대한 생각이 패배자라는 단어 속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글쎄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바로 이직준비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실제로는 이직 준비를 하는 척했어요. “

“그럼 왜 하는 척을 하게 된 걸까요?”

이무이는 나에게 질문을 하자마자 스스로 답을 내었다.

“결국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도 하는 척을 했다는 건 그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쓴 거죠. ‘하는 척’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살려달라는 구조 신호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구조 신호. 난 누구에게 그럼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걸까?라고 생각을 함과 동시에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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