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억

by 가끔은

그날 난 무척 졸렸다. 엄마는 연신 울었고, 나도 따라 울다가는 그냥 너무 졸려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얼결에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아빠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때 조금 슬펐던 것 같다. 더 크게 울고 싶었는데, 엄마가 너무 입을 틀어막고 울고 있었다. 그 어린 내 눈에도 엄마가 더 슬퍼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눈물을 꽉 참았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때 처음 손톱을 뜯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눈물이 날 때 손톱을 물면 마음의 안정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슬플 때면 손이 늘 입에 머물러 있었다. 이렇게 생긴 버릇은 초등학교 내내 고쳐지지 않아 많이 힘들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한 달 정도는 엄마와 단둘이 아빠와의 추억이 있는 집에서 밖에도 나가지 않고 누워있었다. 중간중간 외할머니가 몇 번 오시긴 했는데, 잠깐 냉장고 안을 채워주시고는 가셨고, 엄마의 친구, 고모들, 여러 사람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려 했었다.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모두를 만나지 않았다. 아빠가 사람들과 원수를 지고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신 건데 엄마는 그 모두의 위로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딱 한 달이 되고 난 후에 우리는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

그 모든 일들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던 터라 나는 내가 이사 간 동네에서의 생활이나 전학 간 학교에서 새 친구들 이런 것에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너무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나 버려서 내가 스스로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내가 이사 간 곳은 경기도 외곽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8살 때였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전학을 간 나는 시골마을의 따뜻함을 한 몸에 받으며 4학년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시골마을은 참 정이 깊고 좋았다. 난 동네 할머니들과 아줌마들의 관심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동네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지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내 기준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잘 지내는 듯하다가도 아빠가 없다는 그 어떤 뉘앙스에도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했다. 솔직히 동네분들은 궁금했을 것 같기도 하다. 젊은 애엄마와 여자아이 하나가 시골마을에 내려와서 살고 있다는 것 자체로 동네 어른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순진한 나는 동네분들의 친절에 마음을 활짝 열고 아빠의 죽음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종이야, 파란 지붕 할머니한테 아빠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했니?”

“응. 파란 지붕 할머니가 엄마아빠 이혼했냐고 막 물어보셨는데, 이혼이 죽는 거야? “

유독 나를 예뻐해 주시던 파란 지붕집 할머니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셨냐고 물어보셨다. 난 이혼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아빠가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동네 아주머니들은 더 많은 나눌거리들을 내 손에 들려 보내시곤 했다. 엄마는 내가 가져오는 음식들을 가지고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셨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엄마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가장 어두운 표정의 시절이었다.

엄마는 또 한 번 짐을 쌌다.

생각해 보면 난 그때의 엄마를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지금도 살짝 원망의 마음이 들기는 한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그 어떤 것도 쉬운 것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극적인 내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때까지 나름 엄청나게 노력했었고, 그렇게 이뤄낸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큰 말 없이 어깨를 토닥이는 걸로 위로하시고는 굳은 표정으로 이사를 강행하셨다. 어쩌면 엄마가 지금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주고 기다려주는 것은 그때의 미안함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새로 이사 간 곳은 그냥 조용한 도시였다. 이번엔 동네 할머니들도 안 계셨고, 큰 도시도 아닌데 온 동네가 그냥 조용한 그런 곳이었다. 시골마을은 아니었지만, 주변 환경은 그래도 산도 있고 큰 산책로도 있어서 시골마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난 초등학교 고학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내가 원하지 않은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해야 한다는 억울함과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겹쳐서 난 나름 복잡한 시간을 보냈다.

난 평화주의자이다. 하지만 딱 그 시절만은 쌈닭이었다. 진짜 싸움이 일어난 건 딱 한 번이지만 늘 난 마음속으로 싸우며 지내고 있었다. 주로 난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선의가 모든 관심이 다 공격으로 느껴진 시절이었다. 그 한 번의 싸움은 아직도 어제 일같이 생생하다.

그날…

“아얏”

여름날의 풀은 죄다 날이 서 있다. 살짝 스쳐도 이내 상처를 남기고야 만다. 티비에서 보던 손끝에 스치던 초록색의 풀들은 진정 연출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성질이 났다.

성질이 나는 이유는 분명 풀에 베인 손가락 때문은 아닌데 모든 원인이 이 날이 서 있는 풀잎 때문인 양 성질이 났다. 날 아프게 한 풀을 한 움큼 잡고 힘껏 당겼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던가, 손바닥이 날카로운 풀 끝에 이리저리 긁혀버렸다. 대신 내 손에는 풀들이 한 움큼 끊어져 나왔다. 많은 풀들 사이에 내 손으로 끊어내 버린 한 움큼의 풀.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인데, 뭔가 뿌리째 뽑아 던져버린 것 같은 후련한 기분이 든다. 다 그 여자애 때문이다. 아니 그 애랑 싸우게 냅두지 않고 말린 그놈 때문이다.

산책로에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첫 싸움에서 잡힌 머리를 다시 고쳐 묶었다. 머리카락이 툭툭 끊어져 나왔다. 어렴풋이 아빠가 생각나서 울컥했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내 머리는 아빠가 묶어줬었는데,

엄마와 아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는 여기 이사오기 전에 시골마을에서는 아빠와 관련된 그 어떤 이야기도 입에 담지 않으셨다. 최근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내가 걱정이 되어 그런 건지 무표정한 엄마는 점점 얼굴에 인위적인 표정이라는 것을 장착하고는 아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는 아빠 이야기를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아빠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웃는 가면을 쓴 엄마를 보니 뭔가 모를 배신감마저 들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한참을 산책로를 걷다가 조금 어둑어둑 해지려 할 때 집으로 향했다. 엄마의 유도신문에 대답을 하게 된다면 몹시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나는 집 문을 열자마자 큰소리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나 오늘 우리 반 애랑 싸웠어. 엄마가 선생님한테 뭐라고 전화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잘못한 거 없고, 오지랖 넓게 내 얘기 뒤에서 하고 다니는 그 여자애랑 싸웠어.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아빠 없다고 지들끼리 쑥덕대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앞으로 다시는 그럴 일 없을 테니까.”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날 밤, 엄마는 밤새 흐느껴 우셨다. 내가 본 엄마의 울음은 늘 짧게 스쳐 지나가거나 힘겹게 참는 울음뿐이었는데, 밤새도록 서럽게, 우셨다. 정말 너무 고통스러운 소리였다. 난 그날 이후 그 어떤 엄마의 마음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냥 착하고 열심히 사는 딸이 되어야만 했다. 그 울음소리는 정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공포였다.

세 번째 전학은 중학교 때였는데, 나는 나의 첫 싸움이 있던 날 밤 엄마의 울음소리 이후로는 그 어떤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했다. 외부적인 괴로움은 그냥 집에 오면 해결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내가 집에 와서 편히 지낼 수만 있다면 다 괜찮았다. 그렇게 난 모든 상황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낯선 곳으로의 이사는 내가 마음 둘 곳이 없음을 느끼게 해 주었고, 엄마는 그런 상황을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안의 평화가 나에겐 가장 중요하게 생각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정말 사이가 좋은 부부였다. 어린 내가 항상 질투가 날 정도였으니까, 그 어떤 애정표현을 강하게 한다기보다는 늘 아빠와 엄마는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정말 짝 잃은 기러기처럼 늘 풀이 죽어있었고, 난 늘 엄마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하지만, 나에게 대하는 표정은 늘 최선을 다했다. 난 그걸 알았다. 엄마가 많이 힘들지만, 날 위해서 힘을 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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