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눈물의 씨앗

by 가끔은

나의 눈물을 설명하자면, 가장 마지막 내가 정리되지 못한 그 무언가가 남아있는 회사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다.

난 생각보다 운이 좋게 인턴의 기회를 얻었다. 엄마의 웃음을 위한 나의 처절한 노력은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낳았고, 적당한 좋은 대학에 장학금까지 챙겨가며 야무지게 대학생활을 해나갔다. 물론 매번 열심히 해서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던 건 사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열심히 한 것뿐이라고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고, 정말 난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밖에 없었다. 가장 쉽고 가성비 있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교수님들께 많은 칭찬을 받았고, 졸업 직전 교수님의 소개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기업의 비공개 인턴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 비공개라고 하더라도 나름 경쟁률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경쟁률을 뚫고 난 인턴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내가 입사해서 가장 처음 배정된 곳은 영업전략팀이었다. 맡은 업무는 정말 단순한 사무보조였다. 복사를 해오고, 분류하여 정리하고, 별거 아닌 업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모든 계획서와 제안서들을 잘된 케이스들만 따로 복사해 회의준비를 하기도 했고, 그런 모든 자료들을 볼 수 있는 게시판 접근권한도 따로 우리 팀에서만 나에게 부여해 주기도 했다. 그만큼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영업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여성팀장님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었다. 난 우리 팀장님을 보며 부드럽지만 강인한 여성의 모습에 매료되었고, 나도 언젠간 저런 강인함을 가지고 있는 회사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내가 잘 따르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팀장님도 나를 참 많이 예뻐해 주셨고, 다른 인턴들이나 신입들이 할 수 없는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종이씨, 난 자기가 과묵해서 좋더라, 묵묵하게 할 일 하면서, 내가 아무에게나 이런 자료들 복사하게 하고, 자료들 열람권한 주지는 않는다는 거 알고 있죠? 그만큼 종이씨 많은 사람들이 탐내고 있어~ 그전에 내가 찜해놓았지만 말이야~.”

영업전략팀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말로만 설명하자면 얼굴에는 아주 인상을 쓰느라 미간에 깊이 파인 주름과 진한 향수냄새, 지나치게 딱딱한 정장차림의 여성이 그려질 것 같지만, 영업전략팀장의 외모는 그 뭐랄까, 비서실 부팀장님 같은 이미지 쪽에 더 가까웠다. 늘 관리된 긴 생머리에 그 어디에도 노출이 없지만, 섹시함이 흘러넘치는 적당한 핏의 정장차림, 목소리가 작지는 않지만 말투에서 부드러움이 묻어 나와 큰 소리의 그 어떤 이야기도 나를 타이르는 듯한 기분을 느껴지게 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을 터, 같이 입사한 동기들도 나를 보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우리 팀장님의 사생활이었다.

“종이씨, 정말 구팀장님 화를 안 내셔? 진짜 영업전략팀 분위기 최고라고 사람들이 엄청 이야기하더라고~ 그 팀에 들어간 인턴은 그냥 빼박 무조건 팀장맘에 들면 정직원이라고~ 종이씨 좋겠다.”

“종이씨, 구팀장님이 종이씨 특별히 예뻐한다는 소문 돌더라~ 그럼 그 팀에 계속 있게 되는 거야? 그 팀에 황대리님도 김대리님도 비주얼만 봐도 난 일할 맛 날 것 같아.”

우리 팀의 다른 팀원들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그만큼 성격도 외모도 실력도 다 갖춘 팀이었다. 내가 그 팀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닌가 라는 주눅이 들 만큼 우리 팀의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난 늘 신나게 일했고, 많은 걸 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구팀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종이씨, 우리 종이씨 내가 너무 아끼는데, 나 이번 실적을 걸고 종이씨를 정직원으로 데려오려고 했거든, 근데 종이씨도 알겠지만, 이번 우리 실적 달성에 조금 못 미쳤잖아. 그래서 종이씨를 다른 팀에 빼앗기게 되었어. 정말 미안해 종이씨. 그래도 우리 제일 많이 협력하는 팀, 전략기획팀으로 가게 되었어. 다른 팀들에서 데려가려는 걸 어떻게든 연결고리 만들려고 제일 친밀한 팀으로 연결하는 것까지는 내가 힘써보았는데, 우리 팀에서 계속 있다가 계약 만료되는 것보다는, 전략기획팀은 지금 내년에 인력충원 확정된 상태라 정직원 되기엔 그 팀이 더 확실할 것 같아. 서운하긴 하겠지만, 내가 더 서운한데 종이씨, 미안하게 되었어…”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오히려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에요 팀장님, 그래도 저 팀장님과 함께 일하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전략기획팀이면 저희 계속 마주치고 함께 일하잖아요~ 결국 제가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많으니까, 두 팀 다 제가 잘 챙겨보는 마음으로 일해볼게요! 팀장님 저 한 팀이라고 생각해 주실 거죠?”

나는 서운한 마음보다 계속 팀장님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구팀장님의 말씀대로 이번 프로젝트는 안타깝게 실적 달성을 못했고, 정말 많이 준비했지만, 마지막에 간발의 차로 아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었고, 그 모든 고생을 내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전략기획팀은 내가 하루에도 기본 두세 번은 가서 기밀 서류를 전달하거나, 무언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많이 했었기에 큰 낯섦도 없었다. 전략기획팀 팀장님은 그리 따뜻해 보이진 않지만, 보통 무난한 직장상사의 모습으로 일을 잘하는 팀장중에 하나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분이셨다. 구팀장님이 정말 날 좋게 보셔서 이쪽 팀의 티오에 날 넣어주시려 하는 듯 한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 한편이 뭉클할 지경이었다.

전략기획팀으로 옮겨진 나는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내가 전략기획팀인지 영업전략팀인지 모를 만큼 많이 움직이는 업무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전략기획팀의 업무는 그리 많이 오픈되지 않았다. 영업전략팀에서는 정말 내가 이대리라도 된 것처럼 돌아가는 많은 상황을 알고 그에 맞춘 자료들도 미리미리 챙겨볼 수 있을 정도로 업무가 숙지되어 있었다면, 전략기획팀은 모든 서류나 정보들이 나에게 철저히 감춰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팀장의 분위기 탓이겠지만, 문득 서럽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괜찮았다. 영업기획팀으로 가서 뭔가 업무지원을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 부분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 결국엔 전략기획팀의 업무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묵묵하게 투덜대지 않고 일하는 나의 모습이 상사들이 보기에 인정되는 포인트였던 것 같다. 전략기획팀장님도 하나둘씩 나에게 업무를 맡기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잘 적응하다 보니 어느덧 인턴 1년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비공개 채용으로 인한 티오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우리는 5명의 인턴 중 2명은 정직원이 되었고, 3명은 계약직으로 계속 회사에 남아있게 되었다.

“우리 성공한 인생이야!!!”

오랜만에 인턴들이 계약직 및 정직원 계약서를 모두 다 작성한 어느 봄날 작은 모임을 갖게 되었다.

각자의 팀의 고문관 이야기, 티오는 없지만 괜찮은 옆팀의 분위기, 불륜이 의심되는 기혼직원들의 연애 이야기 등등 다들 큰 회사에 각자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공유되었다.

“아 맞다! 종이씨 그거 알아? 구팀장님 애도 있다며? “

동기 한 명이 구팀장님 이야기를 꺼내며 나에게 물었다.

“네? 구팀장님이 아이가 있다고요? 저는 미혼인 줄만 알았는데요~ 음,,, 아이가 있는 엄마치고는 너무 회사에 오래 계시는 거 아닌가요? 상상도 못 했어요~”

난 처음 접하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아니 내가 아예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는 건지, 구팀장님이 뭔가 조심스레 통화하는 건 본 적이 있는 것 같지만, 그냥 뭐 사생활이니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당연히 나이가 많으시니 남자친구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업무에 큰 지장을 줄 만큼 자주 보이는 포인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예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오래 머물지 않았다.

“우리 이번 5월 행사에~ 작년에는 인턴이라고 참여하지 말라고 해서 우리 안 갔었잖아요~ 그 직원 행사 주말에 하는 거~ 거기 가족행사라 매년 남편이랑 아이랑 온다는데? 올해 우리 볼 수 있겠다~!”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사생활이 보이지 않는 회사에서의 생활과 업적들.

그때부터 난 구팀장님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모든 어려움의 시작이 바로 내가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된 그 순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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