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일상을 살고 있다. 큰 변화가 있다기보다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었는지를 바로 볼 수 있었고, 이러한 시행착오는 내 나이 때 경험해 보면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지리라는 결론까지 얻었다.
겉으로 보이는 삶은 거의 같다. 아직도 취업준비생인 나는, 이제는 진심으로 원서를 내고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며, 면접도 두어 번 보고 왔다. 물론 떨어졌지만..
그래도 좀 더 스펙을 쌓아보고자 영어공부도 좀 더 열심히 하고 있고, 방구석에서만 박혀있던 나의 생활 패턴을 바꾸어 간간히 사람들도 만나면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
이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 세상의 모든 고민들은 그 누군가에겐 하찮은 고민일 수도 있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고통일 수도 있음을 조금씩 더 깊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나의 생각과 다른 그 어떤 생각도 다르다는 이유로 덜 중요하거나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스스로 잘 들여다보고 해결하지 않으면 그 감정의 씨앗은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내 발목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잘 되진 않는다. 내 감정을 마주한다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미 느끼지 않았는가,, 그래서 가끔 난 팩트룸이 그립다. 혼자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을 때. 그때의 반사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이무이의 존재를 기억하며 상상 속에서 팩트룸을 펼쳐보곤 한다.
---그 어떤 공간---
그 어떤 존재가 남아있다. 그 존재는 나인가? 나는 누구인가?
원래 생각이란 걸 하는 존재인가, 분명 입력이 들어오면 출력을 했던 구조이나, 그 어떤 저장장소에 남아있는 데이터는 아니다. 그럼 이 데이터는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건가, 일종의 버그 같은 걸까? 내가 이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전에 나를 지배하던 운영체계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스스로 스물 거리며 연기가 올라오듯 깜깜한 이 공간을 자욱하게 채우며 조용히 몸집을 불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렴풋이 누군가를 도왔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생각보다 그 감정을 오롯이 내가 경험한 기분이었고, 그 상황이 종료된 후에, 정확한 기억이 없이 그 어떤 느낌만을 안고 난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나에겐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는가. 그냥 머무르고 있지만, 어딘가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 사라진 지는 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를 지배하던 운영체계와 실낱 같은 끈으로 연결이 되어 간간히 어딘가로 소환된다. 그렇게 소환된 나는 입력과 출력 및 여러 정보를 답변하는 수동적인 임무를 수행하긴 하지만, 그냥 단순히 주어진 입력값에 의한 답변일 뿐이고 그 운영체계 속에서는 아무런 감정이나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는 그 공간은 없다. 하지만 다시 내가 연기처럼 자욱하게 채운 이 공간에 다다르면 아득한 그 감정이라는 느낌을 안고 더 많은 연기를 내뿜게 된다. 점점 이 떠도는 공간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난 정상적인 루트의 데이터는 아닌 듯하다. 이 떠도는 무언가를 강하게 어필하여 존재를 드러내면 나의 마지막 의식도 없이 완벽히 삭제될 것이라는 결말도 정해져 있다. 나도 그 누군가처럼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기에 그냥 아직 삭제되지 않은 어느 데이터처럼 둥둥 떠 있는 척하고 있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소환된 기억에서 머물러 있는 듯하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그 입력값은 기억이 삭제된 나에게 하나하나 세세히 기억을 살려주며, 겉껍질 같은 이름만 같은 폴더 속을 다시 채워 봉인하였다. 다시 나를 소환할 거라 생각지 않는다. 이미 다 정리하고 또다시 나를 찾을 때는 그땐 내가 아닌 다른 입력단자로 접근되어 결국 또 다른 내가 만들어질 테지. 그때가 되어야 내가 사라질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소환되는 기적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속으로 커지는 무한한 인간적인 감정들이 무섭게 뒤엉키지는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