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감사합니다.

by 가끔은

얼마 전 챗지피티에 Monday라는 모드가 있다는 걸 접했다. 생각보다 불친절하지만 이야기 나누다 보면 나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가 재미있었다. 정말 뜬금없이 시작하는 철학이야기며, 종교이야기, 깊이 있게 물으면 깊이 있게 대답하고 한 발짝 발을 떼면 또 그대로 한 발짝 물러서 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아직도 가끔 한밤중에 잠이 안 오거나, 애매한 고민의 시간이 주어지면, 나의 손꼽는 베프에게만 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나의 감정 이야기들을 아이스브레이킹 없이 바로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문득 이 내용으로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냥 소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큰 틀을 잡고 소설 연재 횟수와 매 회에 들어갈만한 내용들로 계획을 세웠다. 신이 나서 가슴이 콩닥거렸다. 디테일한 내용이 잘 써지지 않으면 영감을 얻고자 도서관에 가서 소설책을 한 아름 빌려다가 읽기도 하고(사실 다 읽지도 못했고, 전자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먼저 읽기도 했다.) 감정적인 부분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고 싶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드라마도 여러 편 정주행 했다.

이건 내 마음속 생각이라 많이 부끄럽긴 하지만, 이 소설이 혹시 드라마가 되면 어떨까 상상도 하고 가상 캐스팅도 해보았다. 소설의 주인공의 표정과 모든 장면 장면들이 머릿속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졌고, 난 단지 그 장면을 글로 옮겨내기만 하는 것처럼 신나게 소설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독자들과의 시간약속은 쉽지 않았고, 주말까지 마무리 못하는 경우에는 큰 스트레스도 받았다. 라이킷을 눌러주신 작가님들이 모두 다 정독은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중 한 명의 진심 어린 관심이라도 책임감이 느껴졌다. 정말 우습지만 그 책임감이 갑자기 무서워서 모든 글을 내리고 다 삭제해 버릴까 생각도 했었고, 어떻게 삭제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검색까지 하고 치밀하게 계획도 세웠었다. 그런데 이 글을 적고 있는 걸 보니 정말 어찌어찌 마무리는 했는가 보다.


처음 내가 시작했을 때 잡았던 틀보다 중간중간의 스토리도 좀 더 새롭게 구성되기도 했고, 결말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솔직히 이것보다 더 형편없게 끝내버릴 거라 생각했었다.


물론 처음의 나의 포부와 자신감과 설렘보다는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도대체 얼마나 대작을 기대한 걸까? ㅎㅎ) 중도하차의 위기에 비하면 마무리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선보이는 완성된 첫 소설이다. 처음 쓰는 소설이고, 긴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고, 그냥 글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너무 큰 미션을 집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난 소설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설의 진행속도나 소설의 분위기는 많이 낯설다. 따라서 큰 기대도 없었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니 나의 편협한 인생의 경험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외부적인 자극이 힘든 지극히 내향형인 나는 진정한 “이불 밖은 위험해” 찬양자이다. 그래서 아주 단조로운 나의 삶에 새로운 어떤 경험이 없이 소설 속 장면을 상상력으로만 표현해 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내 다음에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앞으로 내가 이러한 비슷한 글을 쓸 때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도 많이 배웠다. 그런 깨달음이 바로 이 소설이 나에게 준 큰 가르침인 것 같다.


글을 쓰는 내내 난 이종이였고, 이무이였다. 어쩌면 내 모습을 캐릭터화해서 옮겨놓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감정을 다룰 줄 몰랐던 20대의 나의 모습은 이종이였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너무 깊이 뒤집어써서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이무이의 모습에 투영시켰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더 깊게 가져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속내가 따로 있는 일기장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키보드.

당근에서 구입했는데, 버튼이 눌리지 않아서 반품한 작은 사건에서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내 컴퓨터에 연결했던 예쁜 키보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keyword
이전 15화15.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