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삽질소리가 들려왔다.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였다. 대체로 그들이 묻고 있는 건 시체라고도 할 수 없는 신체의 일부였다. 인간으로 돌아오기 위해 뜯어먹어야 했을 그들의 사람들. 아니 신체들. 망자의 혼을 달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시 살아가기 위한 자위적인 의식일 뿐. 어떤 기관이나 매체도 확언하지 않았고 돌아온 이들 중 누구도 고백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돌아온 이는 이성이 사라진 상태에서 자기 삶의 중심에 있거나 일부였던 사람에게 미칠 듯 분노하고 추격하여 끝끝내 갈가리 찢어 먹은 적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반지하방엔 집 앞을 지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나 낯선 그림자가 쉴 새 없는 영상처럼 비쳐 들어오곤 했다. 한동안 작은 기척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나자 체념할 수 있었다. 너는 오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지친 것은 아니었다. 잊었기 때문이다. 잊었다. 네가 언제나 내 예측과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 체념하기 무섭게 너는 반지하방의 창문 앞을 서성이다 가곤 했다. 늦은 오후일 때도 있었고 이른 저녁일 때도 있었다. 네모난 창 가득 푸른 여명이 짙게 물든 새벽녘에도 불쑥 나타났다. 너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느리고 서투르며 투박하고 소극적인 사과방식. 낙타와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직전에 너는 나를 떼어냈다. 나는 구질하게 달라붙었다.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굳게 닫힌 입을 바라보았다. 지지 않았다. 걸레짝이 되도록 매달리며 경탄했다. 계속된 헤어짐에도 갈수록 애절해지는 자신에게. 나락으로 떨어지고 떨어지다 바닥을 치고 있으면 너는 돌아왔다. 또 돌아오겠지만 나는 혼신을 다해 이별에 저항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났다고, 한 세기가 끝난 기념으로 벽을 칠하기로 결심한 정오였다. 암막 커튼을 치기 위해 꽃무늬 커튼을 떼어냈다. 노란 빛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머리 위 창가에서 익숙한 다리가 서성거렸다. 지난 생일선물로 내가 사준 흰색 스니커즈, S가 두 켤레씩 선물한 캐릭터 양말, 타이트해서 깡말라 보인다고 놀렸던 청바지, 무엇보다 길고 곧은 너의 두 다리.
네 하얀 허벅지 위에 앉아 나의 성기를 문지르던 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즈음 대부분의 섹스는 내 애걸로 시작됐다. 너는 없는 성욕을 쥐어짜듯 했지만 막상 시작하면 절정으로 몸을 떨게 만들었다. 흥건하게 젖은 이불을 거둬내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잘 수밖에 없었다. 불분명한 태도로 시작했다가 거칠게 내 안으로 드나드는 너와 시트가 젖도록 반응하는 내 몸을 확인해야 잠들 수 있던 나날이었다. 모두 눈속임이었을 뿐 관계는 끝을 모르고 더러워진 것이다.
일주일 전 직장을 뛰쳐나왔다. 견딜 이유가 없었다. 너를 위해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고 증명하기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것마저 너를 위해 했다. 진짜였다. 아무런 식욕 없이 하루 반나절 이상을 누워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네 앞에서는 밥을 먹었다. 일주일 넘게 나오는 거 없이 변기에 앉아 있기 일쑤였지만 너를 만나면 어김없이 설사를 했다. 곧바로 본가를 정리하고 반지하방을 계약했다. 여기 살다간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며 네가 지나쳤던 집이다. 그때 나는 둘이라면 이곳도 괜찮다는 말을 애써 삼켰다. 둘이라면 이 집이 아니라 월세가 두 배 육박하는 그 집이어도 괜찮았으니까. 짐을 옮긴 날 본가는 여느 때처럼 비어 있었다. 세 식구는 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아빠는 하와이안 셔츠에 쪼리를 신고 김포공항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왔다. 죽어서 나를 공격하는 아빠 머리에 도끼를 박아야 했다. 엄마와 동생은 알 수 없다.
지난 목요일. 국장은 내일이 마감일인데 하필 오늘이냐고 따져 물었다. K건설전문신문은 격주로 발행돼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자 셋이 주요기관과 업체에 직접 전달한다. 갈 땐 가더라도 교정은 보고 가라는 거였다.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보다 못한 인건비로 경리를 부리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어야 했다. 못마땅하지만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쐐기를 박기 위해 자잘한 외근경비가 적힌 포스트잇을 그의 마우스패드 위에 꼭 붙여두었다. 자리에 앉아 제일 먼저 국장이 맡은 사설 코너를 펼쳤다. 군말 없이 일하는 이 기자가 대신 작성한 편집장의 거짓말이었다. 이 기자 특유의 주어가 반복되는 문장들. 그들은 언제나 내 기사가 소설 투라고 지적하곤 했다. 비문 두 개를 마저 찾고는 책상 구석에 던져버렸다.
묵묵히 자기가 쓴 편집장 사설 코너의 교정을 보던 이 기자가 울부짖었다. 끈적한 침이 길게 늘어져 벌어진 입은 포효에 가까웠다. 두 눈은 회색빛으로 어두웠다. 누런 피부색도 마찬가지로 잿빛, 잿빛이었다. 저놈 또 발작이네, 국장이 물어뜯긴 건 순식간이었다. 저항도 없이 국장은 신음을 흘리며 먹혀 갔다. 그 사이 나는 책상 위 내 비품을 가방에 쓸어 담고 오피스텔형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도어락이 매끄럽게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K건설전문신문은, 외근 갔다가 만취가 된 정 이사와 김 기자에게 이 소식을 전함으로써 문을 닫았다. 세상이 변하기 전에도 읽는 사람이 없는 신문을 만드는 곳이었다. 다만 우울한 세상이 조금 더 우울해졌고 사람들의 경계심이 두터워졌다. 아는 사람, 안다고 믿었던 사람이 돌변해도 세상은 여전히 나빠졌다. 모르는 사람과의 교류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차라리 외출이 안전했다. 그마저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배달사업이 흥했다는 것 정도가 변화라면 변화였다.
우리는 한 달 전 헤어졌다. 한 달 전 헤어진 연인이 우연히 내 집 앞을 지날 수 있다. 두 가지 사실 중 어느 것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 너는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와서는 왜 그냥 가버리고 다시 오는지. 자신이 못한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주길 바라는지. 반복된 네 의도대로 나는 조급증이 인다. 나는 너의 뒤를 밟기로 한다. 네가 좋아하는 파란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홀린 듯 워커를 신는다. 완벽한 네 취향이다. 코트 안주머니에는 K건설 신문지에 감싼 식칼이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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