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간을 달려온 버스에서 내리자 흙먼지가 눈앞을 가렸다. 낙타 사파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일행 모두 탈이 났다. 나는 좁은 의자 틈에 다섯 시간 동안 구겨져 있던 몸을 폈다. 기지개를 켜도 굳은 몸이 어색했다. 누군가 인도인의 녹색 토사물로 젖은 배낭을 털다가 구토를 했다. 부연 흙먼지 속에서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뉴델리의 한인식당에서 만난 사람들로 우연히 행선지가 같을 뿐이었다. 자이살메르.
먼지가 가라앉자 사내들이 몰려와 우리를 에워쌌다. 동시에 떠드는 통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둘 중 하나였다. 자기 릭샤를 타라든지, 좋은 숙소를 알고 있다든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콧수염 하나가 내 팔짱을 껴왔다. 그때 검게 물든 배낭을 한쪽 어깨에 걸친 한국인이 다가왔다. 그가 릭샤꾼에게 경고하자 화들짝 떨어져나갔다. 유창한 영어 발음과 완강한 어조였다. 인도풍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매단 여자가 창백한 얼굴로 그에게 숙소로 데려가 달라 졸랐다. 난무하는 사기와 콧속을 파고드는 매연에 질릴 대로 질린 사람들이 일제히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너는 일행 중 가장 오랜 기간 여행을 한 사람이었다. 목이 늘어난 하늘색 티셔츠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배낭은 엉망으로 젖어 있었고, 검게 그을린 피부가 막 입국한 여행객들과는 대조되었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릭샤꾼과 흥정을 마쳤다. 달리는 오토릭샤 안에서 누구도 말이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다는 한 마음으로 모래바람을 맞았다. 체크인 수속을 밟고 2층 더블 룸을 배정받았지만, 나는 1층 싱글 룸을 고집했다. 너는 흔쾌히 맞바꿔주었다. 누구라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하고많은 나라 중에 인도에 왔느냐고.
내가 인도에 간 이유는 두 가지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갈 수 있는 여행지다운 여행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그 때문에 온힘을 다해 자신을 지켜야 하는 곳. 그게 한국에서 폐차 처리한 인도 버스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서적도 인터넷 정보도 뒤져보지 않고 무모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한인식당 저녁식사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탈바꿈하고 싶다는 이유로 인도를 찾는다는 걸 알았다. 뱃속이 거꾸로 뒤집힌 것은 사실이었다.
1층 싱글 룸에서는 온갖 소음이 다 들려왔다.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노란 바나나를 든 너였다. 모래성 앞 가판에서 사온 것이라며 어색하게 내밀던 모습. 다른 일행은 현지 약을 찾아 먹는데 아무래도 넌 눈에 띄지 않는다, 네가 말했다.
속이 뒤집히면 과일을 먹어.
차일피일 미뤄졌던 낙타 사파리가 출발했다. 모래로 덮인 황무지를 끝없이 달렸다. 낙타는 달린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느렸다. 반대로 큰 움직임에 몸이 쉴 새 없이 들썩였다. 나를 태운 녀석은 자꾸만 무리를 이탈했다. 채찍을 든 인도 소년이 녀석을 재촉해주었다. 이탈과 동행을 반복하는 사이 작은 오아시스를 낀 마을 두어 개를 지났다. 이제 겨우 모래 둔덕이 나타날 쯤 낙타몰이꾼들이 앙상한 나무 아래 낙타들을 모여 앉혔다. 그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내가 난과 감자, 계란을 쪄주었다. 까맣게 탄 난에서 모래 알갱이가 씹혀 접시를 비우지 못했다.
과일을 먹으라던 너의 말이 떠올랐다. 카메라를 켰다. 뷰파인더로 나무 그늘 아래 웅크리고 앉은 네가 들어왔다. 언제고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멎어 있는 뒷모습. 그 위로 나무 그림자가 출렁이고 있었다.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금도 너를 생각하면 사막의 나무 아래 굽은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사랑에 빠진 순간은 바로 그때였다. 야윈 듯 단단한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지울 수가 없어 나는 자꾸만 네가 뒤돌아보기를 기다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일생 동안 기다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명의 시작부터가 기다림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렇다고 누구나 기다림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하리란 법도 없다. 나는 그 예외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기다림 끝에 이룩하는 것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 기다림은 폭력이다. 나의 경우 명백히 그렇다. 단순히 기다리는 일을 싫어하고 성미가 급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너는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자면서 동시에 사랑받고 싶은 모순 그 자체였다. 폭력을 동반해 오는 사랑이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던 거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거나 사랑 없는 폭력이었다면 바로 그때, 멈출 수 있었을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일.
우리는 귀국하자마자 발품을 팔며 월세 방을 구했다. 창 넓은 이 층 앞에는 건물 하나 없이 개천이 흘러 해가 잘 들던 집. 문이라곤 화장실과 현관뿐인 원룸도 넓게만 느껴졌다. 네가 나를 등지고 새벽녘까지 업무를 볼 때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꼿꼿하게 일자로 잠을 자는 너에게 안겨 다리 한 짝을 올리고서야 잠드는 버릇이 들어 있었으니까. 원목다리를 뺀 낮은 침대매트와 책상 사이의 거리는 반나절 동안 낙타를 타고 건조한 사막 하나를 다 건너도 닿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너를 기다리고 너의 등을 바라보는 일과만으로 나는 바빴다.
아침은 너의 온기를 빼앗기는 시간일 뿐이었다. 시간감각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걸 느꼈다. 시체처럼 누워 있어도 때마다 볕은 들었다. 볕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온통 너를 기다리는 일상이었다. 영원히 멈춘 것도 같고 매초마다 몇 개월이 훌쩍 흘러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우리는 둘 다 알아차렸지만 어쩌지 못했다. 내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순간 네가 떠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혼자 남게 될 운명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알면서 모른 척한 것은 스스로를 멈출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의지의 문제였을까. 나는 그저 네가 우리 집으로 돌아오기를,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옆에 머무르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노랗게 말라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나를 죽였을 때 너는 외출 중이었다. 절대 외박하는 일이 없었지만 타인과 맺은 약속을 어기는 법도 없었다. 신중함이 내 피를 말렸다. 자정을 넘긴 시간, 미친 듯 통화연결을 시도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타인을 저버리는 건 너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그만큼 나는 버림받았다고 절감했다. 너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 옆에 없으니까. 그렇다면 오지 마, 나는 없어질 거야. 정말로 없어지고 싶었음에도 네 반응이 걱정되었다.
방 한구석에는 옷을 걸기 위해 천장까지 뻗은 봉이 설치돼 있었다. 윗줄에는 대체로 무채색인 네 옷이 가지런히 걸려 있고 반대로 아랫줄에는 원색인 내 옷이 불규칙하고 너저분하게 걸려 있었다. 하지만 네가 정리해준 왼편만은 스트라이프 셔츠들이 한 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유행이 지난 스카프를 봉에 걸어 매듭지었다. 길게 늘어진 부분을 목에 감고 다시 한 번 매듭짓기. 의자에서 발을 떼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바닥에 놓인 핸드폰을 흘낏 보았고, 그건 조용했다. 그 매서운 침묵이 잠깐의 망설임을 날려버렸다. 나는 발끝을 뻗어 의자를 넘어뜨렸다.
*
대낮임에도 거리는 스산했다. 배달트럭만 자주 지나다녔다. 골목길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옆집 남자였다. 달려들어 자신을 물어뜯는 캄보디아 아내를 어쩌지 못했다. 그는 건물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인사도 않고 이따금 아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다. 한국어가 숙달된 아내는 개새끼, 하고 맞대응하기도 했으나 말뿐인 저항이었다. 이따금 화사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여자가 어젯밤 무슨 화를 당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아마도 지금이 여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항의일 것이다. 하얗고 정갈한 이를 남편의 어깨에 박고 가차 없이 씹어 삼켰다. 남자는 비명에서 신음으로 바뀐 괴괴한 소리로 울고 있었다. 하얀 뼈가 다 드러났다.
걸음은 느리게, 다시 시작된다. 너의 뒤를 밟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너의 뒤편이다. 느린 걸음에 맞춰 좇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너는 자판기 앞에서 일순간 걸음을 멈춘다. 음료는 뽑지 않는다. 그저 멈춰서 앞뒤로 몸을 흔든다. 걷기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부쩍 지쳐 보인다. 네 발에 돋곤 하던 수포를 생각한다. 고3 때 원인불명으로 생겼다던가. 딱 한 번 대학병원에 물리치료를 함께 간 적이 있었다. 무척 신경 쓰였지만 너는 걸음을 멈추는 일이 없었다. 오늘 너는 매우 낯설다.
일행과 함께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아그라로 향했다. 하지만 성 앞에 다다르자 북적이는 인파에 기가 질렸다. 말하지 않아도 너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타지마할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후회할까를 의논하고 있을 때 호객행위를 해오는 인도인들을 보자 마음을 굳혔다. 들어가지 말자. 하얀 타지마할은 아름다웠지만 여행 책자에 흔히 보이는 사진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것은 그것으로, 그대로 남겨두는 게 어쩐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은 이미 입장료를 계산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너는 의문의 눈빛을 보냈고 나는 답했다.
왕의 기다림 같은 건 지루하고 잔혹해.
대답하고 나자 그건 더한 사실로 다가왔다. 죽은 왕비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때문에 수많은 사람을 혹사시킨 기다림. 죽은 사람을 향한 기다림. 자기 사랑이 그칠 때까지의 기다림. 그 때문에 또 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한 기다림.
이 많은 생각을 한마디로 함축하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타지마할 뒤편으로는 갠지스 강의 최대 지류인 야무나 강이 흐르고 있었다. 한 차례 방문이 있었던 듯 주황색 꽃목걸이가 여기저기 떨어져 더럽게 지고 있고, 폐허가 된 알 수 없는 건물의 잔재가 드문드문 드러났다. 사람 몸집만 한 떠돌이 개가 지친 듯 가만히 앉아서 타지마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카메라에 그것을 담았다. 개의 뒷모습. 그것을 찍는 너. 그런 네 뒤의 나. 심사가 뒤틀려 너를 재촉했고 우린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카메라에 폐허를 담았다. 서로의 피사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농을 주고받으며 걷고 걷다가 총을 멘 군인에게 저지당했다. 강가가 코앞이었는데. 검은 물가에 닿고 싶었지만 별수 없이 돌아서야 했다.
그 강을 생각한다. 차마 가닿지 못했던 야무나란 이름의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강. 갠지스 강 하류 어딘가에서 배를 타야지만 갈 수 있는 강이었다. 우리는 둘 다 배 같은 건 타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꼭 꿰맞춘 것처럼 너의 의향은 내 생각과 같아서 예의상 물으면 어김없이 그러자,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나는 딱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었고 그것은 알 수 없는 흥분을 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도착지의 언저리에서 걸음을 멈췄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