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로의 여정
어떻게 나는 이곳 실리콘밸리에 오게 되었을까? 나의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들은 유독 두 번째 시도에서 빛을 발했다. 이번 여정 역시 그 패턴을 따랐다.
코로나 팬데믹 속 졸업한 나에게 취업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그때 처음 시작한 회사는 보스턴에 위치한 병원 설계 전문 중견 설계사였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라이프사이언스 전문가로 성장할 가능성을 탐구하며 첫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입사 후 3개월, 예기치 못한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Are you still interested in Junior Designer?”
SOM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보낸 이메일이었다. 지원한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였다.
기회와 도전 사이에서의 선택
처음엔 망설였다. 현 회사도 괜찮았고, 그린카드 스폰서십도 보장된 상태였다. 괜히 욕심을 부리다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몇 년 뒤 어차피 이직을 고려할 거라면 지금 연습 삼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SOM의 첫 인터뷰에 응했다.
미국 설계사의 첫 인터뷰는 보통 1주일 이내에 진행된다. 나는 프로젝트 리드와 디렉터 두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눴다. 미국 건축업계에서 인터뷰의 핵심은 포트폴리오다. 이력서는 문을 여는 도구일 뿐, 포트폴리오는 자신의 강점과 비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 인터뷰의 전략: 포트폴리오의 중요성
내 포트폴리오는 대형 설계사에 맞춘 구성으로 준비했다. 초고층 세미나, 마스터플랜 공모전 등 학생 때 진행했던 대형 프로젝트들을 선보였고, 현업에서 활용한 BIM과 모델링 프로그램(Revit, Rhino 등)을 활용한 사례를 강조했다.
특히, 첫 회사에서 받은 체계적인 BIM 트레이닝 덕분에 기술적인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Your project is only as good as your worst image”라는 말을 되새겼다. 건축업계에서는 단순히 많은 프로젝트를 나열하기보다는, 자신의 역량을 날카롭게 보여줄 수 있는 대표작 몇 개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이 전략적이다.
2차 인터뷰: 리더들과의 만남
SOM의 2차 인터뷰는 첫 인터뷰와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다. 스튜디오 디렉터들, 즉 회사의 핵심 리더들이 나를 평가하는 자리였다. 인터뷰에는 두 본부의 디자인 디렉터와 한 명의 테크니컬 디렉터를 포함한 총 네 명이 참석했다.
여기서 내가 느낀 점은, 이 단계에서는 이미 기술적 역량은 검증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나의 진솔함, 그리고 나의 경험이 이 회사와 얼마나 잘 맞는지였다. 단순히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를 강조하기보다는, “이 회사가 나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이 시점에서 나의 태도는 평가받는 대상에서 벗어나, 나 역시 회사를 평가한다는 관점으로 전환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마이너리티로서의 여정
건축과 기술이 교차하는 실리콘밸리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간다는 것은 특별한 도전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기술 중심의 접근 방식,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협업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나는 단순히 ”적응”이 아니라 “영향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두 번째 도전이 준 기회는 단순히 SOM이라는 대형 설계사의 이름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더 큰 비전을 품고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실리콘밸리의 다이내믹한 환경은 나의 도전을 환영했고, 나는 그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