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레이오프
처음 몇 번의 레이오프는 그냥 지나가는 태풍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회사는 실적이 떨어질 때마다 몇 명을 줄이고, 조직을 조금 재정비한 후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오면서 살아남았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두 번째 레이오프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이 정도는 지나가겠지.” “이번에도 운이 좋다면 피해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네 번째 레이오프가 시작되었을 때, 그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인원 감축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의 시작이었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몇 명을 줄이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이번에는 조직 자체를 재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감축의 대상은 단순히 퍼포먼스가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중간 매니저들과 디렉터급 인사들까지 포함된 대규모 변화가 시작되었다. 건축 스튜디오의 구조 자체가 달라지는 시점이었고, 그 결과 4실과 우리 5실이 통째로 해체되었다.
한 순간이었다. 어제까지 당연했던 팀, 익숙했던 자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모든 것이 흔들렸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우리의 스튜디오 디렉터가 발표와 동시에 장기 휴가를 신청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휴가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는 사실상 퇴사의 전조였다. 팀이 해체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새로운 팀으로 이동하든지, 아니면 회사를 떠나든지. 그리고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 팀이 사라지자, 디렉터도 떠났다. 남은 것은, 소속을 잃어버린 팀원들뿐이었다.
소속이 없다는 것의 의미
회사에서 소속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마치 돛 없이 떠다니는 배와 같다.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다음 감축의 1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어떤 조직이든, 정리해야 할 인원이 있으면 가장 먼저 손대는 것은 애매한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이다. 프로젝트가 없는 사람, 역할이 없는 사람, 혹은 단순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1순위가 된다. 나는 이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발표가 나자마자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친 사람이 있었다. 과거 현상팀에서 함께 일했던 1실 디렉터. 회사 내에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평소에도 여러 프로젝트에서 다른 팀과 교류하며 관계를 만들어두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 관계가 내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실과 2실, 어디로 갈 것인가?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요청을 해서 이동할 수 있는 팀은 두 곳이었다. 1실과 2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였다.
2실은 해외 프로젝트 중심의 스튜디오였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고, 내부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팀 중 하나였다. 팀원들의 글로벌 경험도 풍부했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적용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곳으로 가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가진 스킬 셋이 기존 멤버들과 겹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미 그곳에는 해외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강한 인재들이 많았고, 내 역할이 뚜렷하지 않다면 몇 개월 후 다시 ‘불안정한 상태’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외국인 직원 비율이 높다는 점이었다. 이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가진 차별성이 희석될 위험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레이오프가 반복될수록, 조직 내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지닌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회사가 어려워질 때 가장 먼저 정리되는 사람은 ‘대체 가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반면, 1실은 국내 프로젝트 중심의 스튜디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해외 프로젝트는 매력적이었지만, 경기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몇 개의 해외 프로젝트가 연기되면서 2실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불안정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이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가였다. 나는 단순히 가장 인기 있는 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팀을 선택해야 했다.
게다가 1실 디렉터는 과거에 나와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회사에서 누군가가 나를 적극적으로 ‘추천’해줄 수 있다는 것은 조직 내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크게 높여주었다.
결국, 나는 1실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발표 후 단 이틀 만에 소속 변경을 마치다
구조조정 발표 후, 나는 단 이틀 만에 소속 변경을 완료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회사가 레이오프를 발표하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내가 대상이 될까?” “이직을 준비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사이, 기회는 사라진다. 내가 배운 것은 혼란의 시기에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발표가 난 날 바로 1실 디렉터에게 연락했고, 단 이틀 만에 이동을 확정 지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의 생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회사는 내부 이동을 차단했다. 즉, 나는 마지막 순간에 살아남을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체되었다면, 나는 소속 없는 상태로 방치되었을 것이고, 다음 감축 대상이 될 확률이 높았다.
살아남은 자만이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나는 지금 1실에서 다시 적응해가고 있다. 이동은 성공적이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구조조정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또다시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살아남은 자만이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