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레이오프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은 예측 불가능한 연속이었다.
나는 유튜브에서나 보던, 드라마틱한 레이오프(layoff) 소식을 현실에서 경험하게 될 줄 몰랐다. 회사에서 1차, 2차, 3차, 4차 레이오프가 2~3개월 간격으로 일어났고, 그것은 단순한 뉴스가 아닌,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료가 사라져 있었다. 어제까지 함께 프로젝트를 논의하던 선배가, 아침에 출근했을 때 이미 책상을 비우고 떠난 후였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졌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긴장감 속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나는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이었기에,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한 일”로 여기고 버텨야 했다. 매일매일 실력을 증명해야 했고, 시키는 모든 것을 할 줄 알아야 했으며, 단순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 리더십까지 보여야 했다.
이곳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레이오프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자,
그렇다면 다섯 번째 레이오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 그때도 나는 무서웠고, 이번에는 나도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연봉만 조금 더 올려준다면, 그래도 이곳은 아직 다닐 만한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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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레이오프: 리더십의 사업적 오판이 부른 위기
이번 레이오프는 단순한 인력 조정이 아니었다.
회사의 경영진이 내린 사업적 판단이 틀어지면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상황이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 실패의 결과라고 본다. 샌프란시스코의 오피스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는 가운데, 코로나 이후 투자금이 대거 몰린 라이프 사이언스 섹터,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중동 프로젝트와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못한 선택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패착 1: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은 것
가장 큰 문제는 리스크 분산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특정 사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중동 엔터테인먼트 파크 설계와 국내 라이프 사이언스 프로젝트에 지나치게 많은 인력을 집중 투입한 것이 핵심적인 패착이었다.
당시에는 미래 가치가 매우 긍정적으로 보였다.
“이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것이고, 우리는 업계를 선도할 것이다.”
이러한 희망적인 전망 속에서, 회사는 과감하게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공격적으로 스카우트했고, 인력을 대거 투입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중동 프로젝트는 예상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되었고, 라이프 사이언스 분야에서도 경쟁이 심화되면서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시장 점유율은 생각보다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대규모 인력을 유지해야 했고, 결국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패착 2: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시장의 변화에 대한 대응 실패
또 하나의 문제는 샌프란시스코의 오피스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팬데믹 이후, 기업들은 원격 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오피스 빌딩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고, 오피스 건축 프로젝트가 전반적으로 축소되었다.
하지만 회사는 여전히 기존의 전략을 고수했다.
“곧 시장이 회복될 것이다.”
“기업들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디게 움직였다.
이제 와서 보면, 당시 경영진이 좀 더 빠르게 시장 변화에 적응했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확보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을 취했더라면 레이오프의 규모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레이오프 속에서도 살아남는 법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사실, 5차 레이오프까지 경험하고 나니, 레이오프에서 살아남는 법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1.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인가? “를 끊임없이 질문하기
레이오프는 단순한 운이 아니라, “회사에서 없어도 되는 사람”이 제거되는 과정이다.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물었다.
• 내가 없어지면 팀이 힘들어질까?
•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가?
•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강점이 있는가?
회사는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을 남긴다.
2. “시키는 것”만 하지 않고,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기
나는 단순히 내 업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리더십을 보이려고 했다.
회사는 단순히 ‘업무 수행자’보다 ‘팀을 이끄는 사람“ 이게 아니라면 ‘한 사람 이상으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3.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회사 내부의 변화도 신경 쓰기
슬프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다. 레이오프는 단순히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사의 의사 결정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고, 누가 누구를 신뢰하는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는 프로젝트 리더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내가 하는 일들이 잘 전달되도록 했다.
나는 다섯 번의 레이오프를 경험하면서,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언제든 회사를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도 회사에 남아 있지만, 나는 늘 긴장하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더 나은 기회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지만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레이오프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