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드부르
드디어, 조리원에서 친해진 동기모임 ‘모유시대’ 엄마들이 만났다. 첫 번째 모임은 아기는 맡기고 엄마들끼리만, 두 번째 모임은 아기와 함께. 고작 두세 시간 동안의 외출이지만 엄마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오랜만에 모임으로 설레며 거울 앞에서 단장을 하고, 아기가 울어도 되도록 차갑게 마시는 콜드브루처럼 쿨한 척을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밖에 나가면 얼굴 표정을 가려주는 썬글라스는 필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기를 낳고 새해를 조리원에서 맞이했던 우리는 날씨가 따뜻해지고 봄이 오니 마음도 싱숭생숭 이다. 봄바람이 불어 온 것이다.
우리의 첫 번째 모임은 아기 백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카톡!
“우리 백일도 지났는데 한 번 만날까요?^^” 한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카톡!
“좋아요♡”
카톡!
“와우~기다렸어요.(엄지 척)”
카톡! 알람 소리가 나길 무섭게 다른 엄마들도 연달아 답변을 한다.
“우리 이제 만날 수 있는 거죠?(감격의 눈물 이모티콘)”
모유수유를 하니 엄마는 항상 아기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수유간격이 세 시간정도로 늘어났으니 유축하고 나오면 이제 밖에서 세 시간은 문제없다.
“네~ 아기는 맡기고 우리끼리 만나서 점심 먹어요!”
그렇게 우린 친정엄마, 혹은 이모님 등 아기는 누군가에게 맡기고 엄마들끼리만 만나기로 하고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이게 얼마만의 외출이야?’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아기 낳기 전에 만삭촬영을 한다고 스튜디오에 갔던 게 마지막 외출이었던 것 같다. 외식도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근데, 나 뭐 입고 가지?’
오랜만에 레스토랑에서 사람을 만난다니 너무 좋은데, 어떻게 꾸미고 갈지 막막했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포니테일로 질끈 묶여 있고, 피부는 푸석푸석한 영락없는 웬 아줌마의 모습이다. 아! 너무 낯설다.
‘아, 나 원래 안 이랬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 나왔다.
임신으로 생긴 기미는 더 짙어진 것 같았고, 아기를 낳고 밖에서 외식을 한 적이 없어서 어떻게 화장하는지 화장법마저 까먹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색조화장품도 수두룩하다. 그동안 집에서 아기랑만 지내다 보니 화장을 할 일도 없고, 매일 잠옷인지 츄리닝인지 구분이 안가는 옷만 입고, 인터넷쇼핑으로 기분전환 한다고 새로 산 옷은 수유복인 데다가 하루만 입어도 금새 후줄근해진다. 아직 예전처럼 뱃살도 다 안 빠진 것 같고, 임신복, 수유복이 아닌 임신 전에 입었던 몸에 딱 붙는 옷들은 왠지 너무 타이트하게 느껴진다. 예전엔 이 쪼끄만걸 도대체 어떻게 입고 다녔을까? 이제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느낌!
한참을 뒤적뒤적 한 뒤에야 겨우 입을 만한 옷을 하나 찾았다. 조리원에서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매일 마주했지만, 내가 아기 낳기 전에는 좀 더 나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오랜만에 화장도 해 본다. 그치만 너무 어색하지 않게, 소심하게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 정도만.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나갔다. 조리원에서의 수유복이 아닌 멀쩡한 옷을 입고 만나는 첫 모임.
“어머,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이에요. 날씬해져서 몰라보겠네!”
“다들 원래 이런 모습 이었구나. 반가워요!”
조리원에서 본 그 사람이 맞나? 어딘가 달라 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다들 조금 더 멋져 보였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가도 2주 동안 친했다가 백일 만에 만나는 거라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내가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커리어 이야기도 하고, 남편을 어떻게 만나 결혼했었는지 각자의 연애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랜만에 레스토랑에서 아기 없이 먹는 식사는 왠지 모르게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세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부지런히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두 시간이 넘어가면서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야 했다. 너무 너무 아쉬웠지만,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조만간 또 만나요! 다들 힘내고요!”
두 번째 모임은 아기가 이유식을 잘 먹기 시작한 6개월쯤 되는 어느 날이었다. 이번엔 우리 아기들끼리도 만나게 해주자고 아기를 데리고 만나기로 했다. 그동안 아기와 잠깐씩 외출을 해본 경험들이 쌓여서 이젠 혼자서 아기를 데리고 외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였다. 엄마와 아기까지 하면 인원수가 많았기 때문에 방이 있는 곳으로 예약을 잡았다.
만나기로 한 날, 한팀 두팀 속속들이 도착을 하고 서로의 아기들을 보고 인사했다.
“네가 쑥쑥이구나! 많이 컸네.”
“쭉쭉아, 안녕! 조리원에서도 머리숱이 많았는데 벌써 어린이가 다 된 것 같아. 이제 유치원 가도 되겠어.”
아기들을 보면서 한 마디씩 덕담도 해주고, 조리원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작은 아기였는데 벌써 이만큼 쑥쑥 자라서 달라진 아기들을 보니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했다. 이제는 아기들이 혼자 꼿꼿이 앉아서 ‘엄마, 맘마’ 옹알옹알 의사 표현도 한다. 엄마들은 음식을 주문하고, 아기들은 음식이 나오기 전에 먼저 집에서 싸 온 이유식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유식을 먹다가 흘리기는 다반사라 물티슈로 닦아주고 심하면 옷도 갈아입히니, 주변이 더러워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들이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기가 다 먹기 전 까지는 엄마가 음식을 챙겨 먹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기들이 냠냠 먹는 사이에 엄마들 음식은 다 식어가고 있는데, 한 아기가 이유식을 먹다 말고 갑자기 얼굴이 벌게지면서 힘을 준다. 끙~끙~! 아차, 똥을 싼 것이다.
“어머, 실례를!”
뭐 어쩌겠는가! 집에서도 흔한 일인 것을. 다만, 외출해서 똥을 싸면 기저귀를 가는 엄마가 조금 힘들 뿐이다. 똥이 아니더라도 쉬는 자주 싸기 때문에 다른 팀도 기저귀를 갈러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여럿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다 그러고 있으니 다 같이 한 자리에 앉아 있기가 정말 힘들었다. 정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실감했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전 다시는 남편 없이 외출은 하지 않겠어요! 호호호!”
힘들었지만, 그래도 같은 또래 아기들과 엄마들을 만나서 즐겁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내 아기는 지금 이런데 다른 아기는 요새 어떤지 정보를 나누다보면 ‘다 그런 거구나.’ 안심이 되기도 하고, ‘지금 이런 걸 해야 하는 구나.’ 하고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한다. 아기의 나이가 같으면 그렇게 엄마들은 친구가 된다.
세 번째 모임은 아기가 8개월쯤 된 어느 여름 날 이었다. 가까운데 사는 엄마들끼리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점심은 집에서 먹고 나왔기 때문에 아기들이 낮잠을 잘 시간이었다. 아기들은 유모차만 타면 낮잠을 무지 잘 잔다. 아기를 유모차에 눕혀놓고 슬슬 밀며, 아기가 잠이 들기를 바라며 우리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콜드 브루, 디카페인으로 주세요!”
아직 모유수유 중인 우리는 모두 디카페인 커피를 시켰다. 한 손에는 디카페인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며. 그리고 햇볕이 강하니 썬그라스는 필수다!
공원을 거닐기 시작하니 아기들은 다행히 유모차에 누워서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이제부터 아기들이 깨기 전 한 시간 정도는 자유 시간이다. 세 명이 동시에 나란히 서서 유모차를 밀며 가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유모차 부대’가 아닌가! 이렇게 잠깐 만나는 것 자체로도 힐링이 되고 친구들이 있으니 육아가 즐겁다. 우리는 지나가던 커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자, 이제 유모차 부대가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