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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여백, 함께 있는 사람들

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by 윰글

‘출가외인(出嫁外人)’.

예전에는 여자가 결혼하면 친정을 떠나 남편의 집안사람이 된다고 했다. 시집간 딸은 친정의 식구가 아니라 외인, 즉 남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집에 뼈를 묻어라.”

평생을 남편의 집안에서 살며 끝까지 책임지라는 의미다. 한마디로, 여자는 시집을 가면 남의 집 식구가 된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힘들어도 친정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다. 왜 그래야 할까. 내 딸이 결혼해 시댁에 잘하고,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하지만 그러느라 친정과의 소통이 단절된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결혼은 성인 남녀가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일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 모두 각자의 가족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자의 독립만 강조된다. 이건 분명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명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 이유 모를 피로감과 두통이 찾아온다. 딸과 아들은 덜한데, 유독 며느리의 몸만 먼저 반응한다. 마치 그 피로가 ‘명절 전용 알람’처럼 몸속에 설치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명절 하루 전날 시댁으로 향한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차례상을 차린다. 명절 당일엔 더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준비한다. 식사가 끝나면 상을 물리고, 정리하고, 설거지한다. 잠시 쉬나 싶으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손님이라도 오면 일은 배로 늘어났다.

‘먹고, 치우고, 또 설거지.’

이 과정은 끼니 수만큼, 하루의 시간만큼 반복된다. 그릇에 담긴 건 음식이지만, 그 안에는 며느리의 땀과 한숨이 함께 담겨 있다.

“조금 있다가 갈래? 동생 얼굴 보고 가야지.”

시어머니가 이런 말이라도 보태면, 며느리의 ‘분노 버튼’이 작동한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친정에 갈 계획을 세웠지만, 시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선뜻 일어설 수 있는 며느리가 얼마나 될까. 거기다가 남편이 “알겠습니다.”라고 한마디라도 거들면, 그날은 부부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다들 말 수를 줄인다. 이럴 때는 대화가 독이 된다. 괜히 이야기를 꺼내면 싸움이 되니까. 남편이 시댁을 나올 생각이 없으면, 며느리는 설거지통 앞에서 분노를 삭인다.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점점 더 식어간다. 이러고 나서 친정으로 향할 때, 차 안의 공기는 냉랭하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 이미 마음속에서 부딪혔던 작은 불씨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다툼도 결혼 초기에나 발생할 법하다.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분위기는 냉랭해진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명절이 끝나면 이혼 신청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명절 기간 가족과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갈등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갈등의 원인을 오로지 한쪽에게만 돌린다면, 문제를 해결되지 않고 가족 간에 서운함만 쌓일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다. 서로의 배려와 노력이 함께할 때, 명절이 진짜 가족의 시간이 된다.


“남편에게 잘해야 해.”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엄마가 내게 해주신 말이 있다. 물론 그 말씀을 따르며 살아왔지만, 지금은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서로에게 잘해야 해.”




25년의 결혼생활 가운데, 나만의 명절 생존법이 서서히 자리 잡았다.

첫째, 완벽을 향해 몸을 던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려 들면 마음이 먼저 지친다. 최선을 다하되, 나만의 선은 잃지 않는다.

둘째, 명절을 ‘행사’라 여기지 않는다. 이것저것 해내야 할 일들이 아니라,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으로 여긴다.

셋째, 준비할 것은 미리 손을 댄다. 상차림 재료나 필요한 물건들을 사전에 챙기면, 당일의 어수선함이 조금 덜하다.

넷째, 일을 홀로 떠맡지 않는다. “제가 할게요. 저건 맡을게요.” 그렇게 한마디 건네고, 함께 걸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다섯째, 쉬는 틈을 확보한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잠시 숨을 고르면, 짧은 고요가 하루를 버티게 한다.

여섯째, 남편에게 사전에 손을 내민다. 시댁에서 아내가 혼자 일하게 두지 않기 위해, 남편이 중간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명절이 끝나고 나면 회복의 루틴을 지킨다. 잘 먹고, 깊이 쉬고, “이번엔 이 정도면 잘했어.”라고 자신을 안아준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말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우리 가족은 명절 하루 전날 새벽 여섯 시쯤 집을 나선다.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고, 일곱 시간이 넘는 길을 달린다. 예전에는 도착을 서두르며 마음이 급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내려놓았다.

“우리 대천해수욕장에 들렀다 갈까요?”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했던 장소, 가족과 외출했던 공간이 떠오른다. 아이에게 솜사탕을 사주고, 포장마차에서 군것질하며 보냈던 시간. 초임 시절 근무했던 학교도 찾아간다. 그런 소소한 여정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시댁으로 향하는 길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열어준다.


1년에 두 번,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누구에게도 두렵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이 흐르면 내 아이들도 언젠가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아내가 될 것이다. 그때만큼은 이날이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두 딸이 결혼해도 ‘출가외인’이 아니라, ‘함께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이런 소망을 오늘도 마음에 담았다.

우리 두 딸과, 미래의 두 사위를 위해.

그리고 그들의 행복한 명절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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