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by 윰글

“조립 컴퓨터도 파나요?”

내가 남편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25년 전, 내가 처음 근무했던 작은 시골 학교의 교무실. 전담 시간이라 나는 그곳에 있었고, 교실 한 칸 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교감 선생님, 행정직원 한 명, 전담 교사 서너 명. 회의나 잠시의 휴식을 위해 쓰이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고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들어섰다. 손에는 클리어 파일 한 권. 그가 인사하며 미소를 지었을 때, 창문 너머로 들어오던 햇살이 그의 어깨 위에 비쳤다.

‘어, 누구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안녕하십니까. ○○컴퓨터 ○○대리점에서 홍보차 나왔습니다.”

교무실에는 나와 행정직원 한 명뿐이었다. 직원은 일에 몰두해 남자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내 쪽으로 다가와, 손에 든 클리어 파일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그때 내가 물었다.

“혹시 조립 PC도 파나요?”

그 시절은 막 학교에 컴퓨터가 도입되던 때라,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교사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젊다’라는 이유로 내가 정보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나 역시 잘 몰랐다. 부담감이 컸고, 그래서 직접 컴퓨터를 구매해 익혀야겠다고 마음먹던 차였다. 그때 그가 나타난 것이다.

“네, 당연히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견적을 내주실래요?”

나는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제가 견적을 열 장쯤 받아봤는데요, ○○○만 원에 해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아. 조정해 보겠습니다.”

“그럼 전 수업 들어가야 해서요.”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나는 그 일을 잊었다.


다음 날 아침, 1교시가 끝나고 교무실로 들어서는데 문 앞에 어제의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어제 말씀하신 그 가격에 해드리겠습니다.”

놀랐다. 내가 제시한 금액은 그가 제안한 가격보다 50만 원이나 낮았다.

“오후에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컴퓨터를 사들였다. 저렴한 가격에.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한 달 후, 내 인생의 반을 함께하기로 그와 약속하게 될 줄은.




“도대체 얼마 남기고 판 거야?”

“5만 원. 오기가 생겼거든. 꼭 이 여자한테 팔아야겠다고.”

순간의 오기가 인연을 만든 셈이었다. 결혼에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결혼까지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의 반대 때문이었다.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부모는 이기적이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효녀가 아니었다. 엄마의 마음보다 우리의 사랑을 선택했으니까.

“자기는 나중에 애들이 우리가 반대하는 결혼을 한다면 어쩔 거야?”

“가만두지 않지.”

남편의 대답에 웃음이 났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25년 전, 낯선 타향에서 한 남자의 손을 잡고, 내 인생을 맡겼다.

‘나, 참 용감했다.’

결혼은 두 사람의 결단력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그 점에서 닮았다. 주변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서로만 보였다.

“그럼 자세히 보자. 데리고 내려와 봐라.”

끝까지 반대할 줄 알았던 엄마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나는 남편에게 곧장 달려갔다. 그리고 서로 안고 울었다.


“너는 꼭 연애결혼을 해라.”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나를 방으로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은 뜻밖이었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내 눈에 비친 부모님의 모습은, 결코 다정한 부부 같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에게 ‘연애결혼’을 권하시는 걸까.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 속에서,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가 아버지보다 훌륭한 사람이야.”

나는 아버지의 뜻에 따랐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 네 남매 중 오직 나만 연애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 안에 이런 ‘연애 세포’가 숨 쉬고 있을 줄은.

“처음 그 사람을 봤을 때 후광이 보였어요.”

중학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재촉하던 우리에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그땐 믿지 못하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오만을 깨달았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에, 나는 분명히 봤다. 그의 뒤편으로 번져 흐르던 빛을.




직장 생활을 하기 전, 나는 ‘남자’라는 존재가 낯설었다. 오빠가 있었지만,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자들끼리만 어울렸다. 지금은 덜하지만, 여전히 남자와의 개인적 소통은 거의 드문 편이다. 그런데, 이 모든 습관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사랑은 사람을 바꾼다. 평소 핸드폰을 잘 보지 않던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기다리며,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같이 있자고 보채고, 헤어지는 시간을 억울해한다. 그가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질투로 몸이 떨렸다.

‘사랑은 마음의 변화일까, 아니면 신체의 변화일까?’

사랑하는 사람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차가워진다. 얼굴에는 홍조가 번지기도 한다.

이런 신체적 변화는 흔히 ‘사랑의 호르몬’ 작용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이 호르몬의 영향으로 마음 또한 요동친다. 집착과 행복감, 에너지의 증가는 불안과 초조와 함께 감정을 롤러코스터처럼 흔든다. 평소와 다른 자기 모습을 보고 이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무에게나 상대방 이야기를 늘어놓고, 내 일정과 계획을 그의 편에 맞춘다. 불편함도 감수하며 배려하고, 때로는 희생하기도 한다.

“오빠는 전혀 힘들지 않아.”

사랑 앞에서는 천하장사가 되나 보다. 밤새워 운전해도, 먼 곳을 가도 전혀 힘들지 않고, 상대가 하는 말에는 꿀을 바른 듯 달콤하게 느껴진다. 우리 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내미는 말 한마디에도 웃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매일 만나 그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사랑은 만병통치약일까. 약으로는 고칠 수 없는 영역, 그것이 ‘마음’이다. 안 보면 죽을 듯 그리운 사람, 그가 나타나는 순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한때는 헤어질 생각에 가슴이 무너졌지만, 다시 만날 마음을 먹는 순간, 모든 것이 가벼워지고 마음조차 회복되었다.

남편이 내 마음에 들어온 뒤, 나는 외로움을 잊었다. 퇴근 후에도 피곤함은 없었고, 오히려 그를 만날 활력이 넘쳤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또 감사하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버거운 일이 생기면, 나는 연애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의 감정을 마음에 쏟으며, 남편에게 품은 서운함을 희석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25년이 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이어가려 노력할 것이다.


“당신과의 인연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연애하던 그 시절의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해요.”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2화둘째가 만들어 준 우리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