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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만들어 준 우리의 ‘봄’

3부. 서툰 우리, 그래도 함께

by 윰글

“매일 행복하고 신나요.”

저녁을 먹던 중, 둘째 아이가 우리 세 명의 가족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편안하고 담담한 목소리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일 년 전만 해도 이런 장면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반항적인 태도와 눈빛을 보였다. 사춘기 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불안하고 변화무쌍한 모습이, 우리 둘째에게도 있었다. 감정이 격해지면, 둘째는 소리를 지르거나 방문을 힘껏 닫아버리기도 했다. “혹시 위험한 생각이나 행동하지 않을까”라는 노심초사함에, 나는 한순간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유치원생처럼 아이를 관찰했고, 아이가 내뱉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가족회의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저, 정말 화가 많았어요. 엄마 눈에는 무던해 보였을지 모르지만요.”

마트를 다녀오는 길, 아이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 순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그 지난 시간에 대해 자책하진 않기로 했다.


그랬던 아이가 달라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어졌다. 지난 1년 동안 아이로 인해 흘린 눈물과 가슴 졸인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셀 수 없었다. 과거가 아름답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작년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만큼 아이도, 우리 가족도 아픈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 둘째가 달라졌고, 우리 가족의 풍경도 바뀌었다.

“엄마를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자식이라는 존재가 부모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닌데, 둘째는 그렇게 느꼈다. 성적이 낮거나, 부모를 난처하게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부모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그 아이를 위해 온몸과 마음을 다할 운명을 지닌다. 나 역시 나의 부모에게 그런 존재였고, 내 아이는 나에게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아이는 얼마든지 부모에게 기대고, 투정해도 된다고 믿는다. 이건 어쩌면 운명적 대물림일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엄마가 00 이를 키우느라 힘든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렇지만 그건 단지 그 순간일 뿐이야. 넌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에게 기쁨이야. 네가 무엇을 잘하든, 못하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단다. 이 말을 이 순간부터 꼭 가슴에 새겼으면 해.”

“그래요?”

“엄마가 어릴 적부터 자주 이야기했지만, 다시 이야기하는 거야. 우리 딸.”

“네. 알겠어요.”

끝없이 표현해야 하는 것이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 아닐지 싶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에게 받아야 할 사랑에는 총량이 있는 듯하다. 만일 어릴 적에 채워지지 않았다면, 부족했던 사랑은 성장해서라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둘째에게 다 채워주지 못했던 사랑과 시간을 지금 채워가고 있다.




“언니, 저 지금 둘째를 낳으면 늦지 않을까요?”

“아니야. 우리가 살아갈 날 중에서 오늘이 제일 빠르다고 하잖아. 그러니 지금도 늦지 않았어. 아이를 낳는 일은 때가 있으니, 고민 말고 가지도록 해봐.”

“그럴까요?”

“그럼, 그럼. 지금 안 낳고 고민하면 나중에 70살에 낳는다.”

진심 어린 선배 언니의 말에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씀을 따랐다.


첫째를 낳은 순간부터, 둘째의 출산은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남편은 나에게 둘째를 가지자고 이야기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누구의 말도 따르지 않는 나는 계속 거절했다.

“엄마, 저만 동생이 없어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돼서 ‘가족 그림’을 그리다 이렇게 말했다. 동생을 낳아달라는 부탁은 입학 전부터 이어졌고, 나는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큰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주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타향에서 친정 식구 한 명 없이 아이를 키웠기에, 그 버거움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둘째는 없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바뀌었다. 큰아이가 9살이 되면서 내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늙은 아버지’와도 같아 보였다. 그래서 8년간 굳혔던 ‘둘째 없음’의 결심이 흔들렸다. 그리고 둘째가 왔다—내 나이 41세에.


둘째가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 집안의 풍경은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첫째였다. 첫째는 원래 성격이 무던했다. 누구에게나 자기 것을 다 줄 정도로 욕심이 없고, 주변 사람에게도 무관심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동생이 생기면서 집에 오면 안방에 누워 있는 동생을 먼저 찾아냈다. 동생을 위해 자기 시간을 쓰고, 무언가를 챙겼다. 무덤덤해 보였던 눈에 꿀이 떨어졌다. 말도 못 하는 둘째에게, 언니가 속삭였다.

‘배려와 사랑’—이건 둘째가 언니에게 준 선물이었다.

어딜 가도 전화를 걸지 않던 큰아이가 수학여행을 가서 내게 말했다.

“엄마, 00 이는 뭐해요?”

“놀지. 그런데 넌 엄마 안 보고 싶어? 동생만 찾고.”

“엄마 진짜 죄송한데요. 저는 엄마보다 00 이가 보고 싶어요.”

하루는 큰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저 예전에는 사촌들이 우리 집에 오면 언제 가나 조마조마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안 그래요. 나도 동생이 있으니까요.”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 — 그건 내가 둘째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8년간의 고민이었고 숙제였다. 그렇게 내게 찾아온 둘째. 수술 후 힘겨운 몸을 끌고 신생아실 문을 열었을 때, 동그란 얼굴, 아빠를 닮은 입술과 눈매가 내게 다가왔다. 그 순간, 감동 그 자체였다. 이제야 나는 마음속 숙제를 마친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결혼생활에서 육아를 빼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 앙금 빠진 찐빵’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힘들고, 마음대로 안 되는 영역이다. 어느 순간 아이에게서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요?”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눈물, 콧물, 가슴 떨림 등 — 양손 가득 무게를 안은 채 살아가는 것이 육아의 느낌이다.


‘아이를 꼭 낳아야 하나?’

육아의 전쟁 속에 빠져 있던 나는 이렇게 스스로 물었다. 아이를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종족보전의 법칙(種族 保全の法則)’이라는 말이 있다. 곧, 모든 생명체가 자기의 종(種)을 이어 나가려는 본능적인 법칙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유전자의 복제 이상의 일이라고 느꼈다. 나와 닮은 생명체가 세상에 태어난다는 그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옛날엔 자식이 부모를 봉양했다지만, 지금은 그것이 핵심이 아니다. 그럼에도 보통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다 — 왜일까.

물론 모든 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다. ‘DINK 족(Double Income No Kids)’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 아이 없이 사는 부부도 많아졌다. 하지만 나는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내 아이가 나중에 이렇게 살겠다고 해도 크게 반대하진 않는다. 그런데 만약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우리 두 딸이 네게 없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 그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00아,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 아는 거지?”

“인제 그만 좀 하세요. 지겨워요.”

둘째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아이가 달라졌다. 시간이 나면 안방까지 들어와 침대에서 내 옆에 눕는다. 그러고는 아기처럼 조잘거린다. 어쩌다 우리 부부가 같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으면, “달콤한 시간 보내세요”라는 농담을 건넨다. 조금씩 빛을 찾아가는 아이.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는 웃는다.


‘남편이 달라졌어요’

둘째가 태어날 때부터 달라진 남편. 상남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이들에게 다정하다.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고, 어떤 일이든 이해하고 넘어간다. 이런 지금의 남편 모습이 좋다. 부모는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둘째의 사춘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이도 나도 힘들지만, 이 모든 과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 그렇게 자라왔고, 둘째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여기니까.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런 아이의 성장 통로를 지켜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시기를 슬기롭게 지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기도’를 선택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이의 변화에 감사하는 마음을 적는다. 소소한 변화, 아이의 생각 걸음을 기록한다. 언젠가는 이 시간이, 웃으며 회상할 기억이 되길 바라서.


나와 남편을 닮은 모습으로 연결감을 주는 둘째.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왜 그래?”

둘째는 9살 터울인 언니에게 대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둘째가 어릴 적 언니와의 시간을 떠올려 이야기해 준다. 그러면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두 아이는 티격태격하다가도 한 침대에서 잔다. 혼자는 놓고 다니기 망설여지지만, 둘이 있으니 우리 부부도 잠시 집을 비울 수 있다. 또, 우리 둘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둘이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덜하다.

“언니가 너 어릴 때 어떻게 한 줄 아니? 넌 언니를 ‘엄마’라고 불러야 해.”

“아, 그랬구나. 알았어요.”

투덜거리면서도 내 말을 수긍하는 둘째.

“네 몸도 돌보면서 아이를 키워야지.”

엄마가 내게 하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육아할 때면 매 순간 고민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육아에는 자신감이 없고, 정답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이 생기면 책을 뒤적이고, 영상에 귀 기울이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럼에도 분명히 잘한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내가 둘째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둘째를 꼭 낳으세요.”

육아가 어렵고, 출산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특히 둘째 출산을 망설이는 분이라면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다.

“첫째가 달라져요. 부모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부분이 둘째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우리 집이 그랬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두 명 사이에 싸움이 잦았고, 아이 한 명 키울 때보다 열 배는 더 힘든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상쇄할 만큼 좋다. 둘이 노는 모습에서는 광채가 난다.

내 가슴에 장작불 하나 피우는 일. 그것은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을 생각한다면 아이 한 명을 낳지만, 그 아이를 생각한다면 무조건 둘은 낳아야 합니다.”

선배님의 말씀이다. 부모와 아이를 위해서라면, 꼭 둘째를 낳으라고 말하고 싶다. 두 아이가 함께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은 원석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느낌을 준다. 부모는 나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갈아 넣는다. 뼈가 갈리는 듯할 때도 있고, 영혼이 사라지는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육아는 태어나서 내가 하는 가장 값진 일이다.

내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기를 나는 기도한다. 지금도, 나의 생이 다한 이후에도 그러하길.

“너희는 서로에게 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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