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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공감력: 다정함을 배우는 시간

4부. 머물고, 느끼고, 배운다

by 윰글

“나 오늘 속상해서 빵을 샀어.”

“빵이랑 속상한 게 무슨 상관이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감정’에 집중하는 경우다.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런 거야?”

다른 하나는 ‘빵’에 집중하는 경우다.

“무슨 빵을 샀는데?”, “몇 개나 샀어?”

이 단순한 대화는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대신한다. 사람들이 처음 만나거나 모임에서 한 번쯤 묻게 되는 질문, “당신의 MBTI는 뭐예요?” 첫 번째 반응은 F(감정형), 두 번째는 T(이성형)에 가깝다. 물론 성향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건 상황과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스펙트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혈액형이나 별자리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MBTI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검사는 네 가지 이분법적 차원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은 세상을 인식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며, 결정을 내리고, 외부 세계에 대응하는가?’를 구분한다. 그 중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기준으로 하면 T(사고형)와 F(감정형)로 나뉜다. T는 ‘논리적’이고, F는 ‘가치와 사람 중심’이다. 물론, T와 F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다른 방식일 뿐이다.

“나는 감정형인데…”

“아니야, 넌 전형적인 사고형이야.”

분명한 건, 이 두 가지 유형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약 한 가지 유형만 존재한다면, 이에 따라 세상은 균형을 잃을지도 모른다.

특히 사적인 만남에서는 공감이 중요하다. 그건 내 이야기에 누군가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감정보다 일이 우선이다. 그러니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감정의 여유를 줄여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내 안의 ‘T’를 꺼낸다.

이처럼 ‘T’와 ‘F’는 공존할 필요가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 그 ‘성향의 옷’을 갈아입을 수 있어야 한다.


“언니, 혼자서 먼저 가면 어떡해요?”

“내가 그랬어?”

“언니, 이제 공감형 대화도 잘하시네요.”

“당연하지. 노력 중이야.”

소위 T 성향이 강한 선배님이 요즘은 공감형 대화를 연습하고 있다. 사고형이 감정형을 동경하는 이유는 ‘사람이 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되고 싶어서일까. 암튼 나는 선배님의 그 노력에 “좋아요”라고 말했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해양 아카데미 연수가 한창이다. 두 분의 선배님과 함께하는 3일째, 나는 10시에 시작되는 강의에 늘 10분 일찍 도착한다. 강의는 3층에서 진행되지만, 먼저 2층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산다. 아침의 커피 한 잔은 졸음을 덜고, 기분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서다.

카페 문을 열면 두 대의 키오스크가 눈에 들어온다. ‘무인 정보 안내 시스템’ — 일명 무인주문기. 처음 사용할 땐 불편했다. 어디를 눌러야 할지 몰라 버벅거렸고, ‘사람에게 직접 말하면 더 쉬울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젠 익숙하다. 화면을 터치하고 결제를 마치면 끝이다. 이렇게 사람은 뭐든 배우면 하게 된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는 오히려 사람에게 주문하는 게 더 번거롭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주문에는 감정이 섞이기 때문이다.

“키오스크가 문 앞에 있으니 조금 불편해.”

“그건 사람들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주문하라고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엔 종업원을 찾던 사람들이 이젠 자연스레 기계 앞에 선다.

키오스크를 만드는 한 회사는 신규 채용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당신은 어젯밤 누구와 어떤 음식을 먹었나요?”

언뜻 보면 엉뚱한 질문이지만, 강사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인공지능 기기를 만든다고 해도 개발자는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동료와 아이디어를 나누고, 의견을 반영해야 하죠. 그러니 기술력보다 먼저, 사람과의 소통 능력을 보고 싶었던 겁니다.”

‘어제저녁에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가?’라는 질문 속에는 지원자가 얼마나 편안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지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나는 말보다 행동을 믿는다. 말은 얼마든지 포장될 수 있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누군가와 소통할 때는 말뿐 아니라 그 사람의 눈빛, 표정, 손짓, 행동까지 본다. 예컨대 말로는 “좋아요”라고 해도 눈빛이 흔들린다면, 그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나 또한 마음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예”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은 속마음까지 파악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강자가 아닐까.


공감 기술. 예컨대 어르신들이 작은 글씨를 보기 힘들어한다면, 큰 글씨의 기계를 만드는 것 —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배려에서 시작된 기술이다. 이런 ‘다정함’이 우리 생활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면 좋겠다. 공감과 배려가 깃든 기술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기계에 MBTI가 있다면, 나는 감정형(F) 기계를 만들고 싶다. 인간의 마음을 반영한 ‘다정함’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이 살아갈 만한 ‘공감의 밭’을 형성할 것이다.

싸늘한 인공지능 시대는 피하고 싶다. 인간은 인간다워야 하고, 그 인간다움에서 비롯되는 ‘다정함’이 결국 세상을 안정시킬 것이다.


공감해 주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만든 기술 속의 다정함 —

상상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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