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머물고, 느끼고, 배운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은행 안으로 들어섰다.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고, 다른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 아이는 내성적인 성향이었다.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모습조차 보기 힘들었다.
이런 아이의 성격 때문일까. 엄마는 아이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며, 동전으로 바꿔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아이를 그 자리에 두고 은행 안 의자에 앉는다. 아이의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려는 듯이.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탁에 아이의 표정은 굳어졌다. 왜냐하면 한 번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부끄러움에 붉어지고, 말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말씀대로 은행 창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직원과 눈을 마주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이거… 동전으로 좀… 바꿔주세요.”
“네, 고객님. 500원짜리랑 100원짜리로 바꿔 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은행원은 아이에게 동전을 건넸다. 종이돈이 동전으로 바뀌는 그 순간, 아이는 안도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저 이렇게 바꿔 왔어요.”
“정말 잘했구나.”
엄마에게 칭찬을 받은 아이는 ‘와, 나도 이런 걸 해낼 수 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둘은 은행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누군가 쳐다보기만 해도 고개를 숙였고, 누가 말을 걸면 숨기 바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조금씩 사라졌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집 앞 슈퍼에 가서 쌀을 사오고, 과일 가게에도 혼자 다녔다. 담임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던 아이였지만,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이 아이의 외향성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장래 희망이 교사였던 그 여고생은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을 오랫동안 마주했다.
‘이렇게는 안 되겠어.’
그 결심과 함께 그녀는 노력했다. 학교에서는 발표할 때 먼저 손을 들었고, 어떤 일이든 스스로 한 걸음 내디뎠다. 여고 시절을 마친 그녀는 교대에 입학했다. 실습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며, 내성적인 성격은 빠르게 옅어졌다. 그리고 4년 뒤, 졸업한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 사람,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저는 사실,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에이, 설마요. 그 말 진심이에요?”
회식 자리, 내가 한마디 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내 모습은 ‘외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습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랜 시간 노력해서 만들어낸 외향성이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다수와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하다. 돌이켜보면, 그건 오래전부터 내게 익숙한 방식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새벽에 홀로 깨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회도 종종 혼자 간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피하는 건 아니다. 다만, 때로는 군중 속에 섞여 있을 때보다 고요한 동굴 같은 공간에서 혼자 머무는 시간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런 나의 내향성은 교사인 나에게 오히려 장점이 된다. 그것은 나와 비슷하게 내향적인 아이에게 먼저 시선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반에는 유난히 소통에 어려움을 겪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에게는 내가 먼저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건다. 아이는 어른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놀라울 만큼 달라지니까.
나는 왜 내향적인 아이로 자랐을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외향적인 성향 역시 어린 시절의 내 안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외향성이 왜 그때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까.
‘실수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나를 내 안에 가두어 두었던 열쇠였다는 생각이 든다.
생전의 아버지는 무척 엄하셔서, 우리 형제자매의 실수를 좀처럼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그 일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실패 후에 돌아올 아버지의 꾸중을 미리 두려워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음이 난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처음은 언제나 어렵고,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설령 아버지께서 꾸중을 하셨다 해도, 그 말 한마디쯤은 가볍게 흘려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렸으니까.
‘실패를 통해 배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실수해도 괜찮아.”
이 말은 아이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도 늘 되뇌는 말이다. 어른이라도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 처음 해 보는 일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릴 적에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경험’을 해 본다면, 부정적인 결과를 두려워하던 마음은 누그러진다.
“너희들, 수학을 잘하는 방법이 뭔지 아니?”
“글쎄요. 뭐죠?”
“수학문제를 틀렸다면, 그 문제를 다시 풀어보려는 용기가 있어야 돼. 이 용기를 가진 사람이 수학을 잘할 수 있는 거야.”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신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 말이 내게 인생의 정답처럼 다가왔다.
그렇다. 무슨 일이든 다시 해볼 용기를 지녔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 아이의 실수에 관대하듯, 자신의 실수에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 특히 어린 시절의 나처럼 내성적인 아이라면 ‘실수’에 대한 부담을 조금 덜었으면 한다. 모든 걸 잘해야 한다면, 그 일에 발을 내디디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다.
나는 아이가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다.
“괜찮아.”
“잘못하면 어때. 실패에서 더 배우면 되지.”
그래서 아이가 실수했을 때, 어른들이 더 허용적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던 시절, 나는 치열함으로 하루를 채웠다. 그 속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자주 스스로를 탓했지만—이제는 안다. 그 모든 실수는 나를 자라게 한 과정이었다는 걸.
그래서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넌 충분히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