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머물고, 느끼고, 배운다
시곗바늘이 9시를 막 스치고 있었다. 그때, 친구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스며들었다.
“들깨칼국수 먹으러 갈래?”
짧은 제안에 마음이 설렜다. 나는 간단히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우리 두 딸은 어제 늦잠을 잤으니, 오늘 아침도 한참은 더 잘 것이다. 그들이 깰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세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친구와의 소소한 데이트를 즐기려 한다.
살짝 집을 나서려던 순간,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그 소리 때문일까, 작은 아이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어디 가세요?”
“잠시 밖에 다녀올게. 오후 3시까지는 돌아올 테니, 그때 같이 나가자.”
크리스마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날에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서는 일은 드물다. 마음 한켠이 살짝 걸리기도 했지만, 곧 아이들이 다시 잠들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늘 내 선택을 존중해주는 두 아이는, 계획에 없던 오늘의 외출에도 아무런 불평 없이 이해해주었다. 그런 아이들을 떠올리자, 가슴 한켠이 따뜻해진다.
차를 타고 15분 남짓 달리자, 친구의 집이 눈앞에 나타났다. 친구를 태우고, 그녀의 안내를 따라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식당 근처에 주차할 자리가 있어 차를 세운 뒤, 5분 정도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걸어 올랐다.
칼국수집에는 아침부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온 듯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등산복을 갖춰 입고,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는 모습들.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구나.’
평소 등산과는 거리가 멀어서, 산 아래 칼국수집에서 식사할 일은 거의 없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일상을 스쳐 지나며 마주하는 풍경들이, 내 마음 속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절에 갈까? 저 위에 보면 절 하나 있는데, 가끔 가는 곳이야.”
“그래, 가 보자.”
식당을 나와 다시 차를 탔다. 15분 남짓 달리니, 산 꼭대기에 독특한 외관의 절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부터 불교와 관련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절 곳곳에는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은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타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조금 낯설거나 거부감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간단히 절을 올리고, 법당 입구 쪽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어릴 적부터 엄마를 따라 절에 다닌 덕분인지, 낯선 공간임에도 마음이 편했다.
친구는 곧 시험을 앞둔 딸에게 좋은 기운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우리는 대웅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향의 은은한 냄새가 법당 안을 채웠다. 그 사이 우리도 절을 올렸다.
대웅전 안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앞에는 신도들의 정성이 담긴 공양함이 놓여 있었다. 나는 지갑에서 지폐 하나를 꺼내 공양함에 넣었다. 친구 딸의 시험 합격을 비는 마음을 담아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동글동글한 등이 법당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등 아래에는 종이 등표가 매달려 있었고, 그 위에는 불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저 등 하나하나에는 어떤 사람의 어떤 소망이 담겨 있을까?’
법당 오른쪽 구석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은 검은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자주색 네모 방석들이 줄지어 있었다. 네 귀퉁이가 둥글게 닳은 모습은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이 마음을 담은 흔적 같았다. 이 방석은 불자들이 마음을 담아 기도할 때, 스님들이 법문을 외우실 때, 혹은 고요히 명상에 잠길 때 곁에 놓이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다.
우리 둘은 방석을 두 개 꺼내 조용히 앉았다. 잠시 마음이 고요해졌다. 요즘 내 마음을 채우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관련한 기도문을 속으로 읊었다. 그리고 문득, 종교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때때로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이 종교를 통해 드러난다고 느낀다. 내가 믿는 존재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망하고, 반드시 들어주리라는 기대를 품는 일.
나는 특정 종교를 깊이 믿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엄마를 따라 절에 다니고,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날 찾은 장소에서 마음 닿는 대로, 생각나면 한 번씩 소원을 빌곤 했다. 들어주시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으니, 내 기도는 그저 마음을 살짝 던져보는 가벼운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다 보니, 진심으로 기도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일들—가족의 건강과 평안, 부모님의 장수, 배우자와 연인의 일, 진로. 혹은 고통을 잊고 싶을 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때 등. 이런 것들을 마음에 담고 소망하다 보면, 문득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바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묻게 된다.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질 거야.’
아마 나는, 이처럼 조용히 자신을 다독이는 믿음을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도를 하면서 내 마음이 고요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부처님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무언가를 간절히 빌면 이루어질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기도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 내 마음을 읽고, 소원을 들어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나의 간절함이 그 길을 조금은 열어줄지도 모른다.
오늘만큼은 고요 속에서 기도에 집중하며, 혼자가 되어본다. 곁에 친구가 있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 마음 속 깊은 곳과 오롯이 마주한다.
“크리스마스에 절에 오는 건 우리뿐일 거야.”
“그러게. 생각해 보니 조금 웃기네.”
그 말에 살짝 웃음이 번졌다. 절 입구에 들어서자, 주차장에는 우리 차 한 대만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의 분주함과는 다른, 고요한 시간을 혼자 차지한 듯한 느낌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평소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오늘만큼은 문을 열어볼 법한 날. 나 역시 어릴 적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발길을 끊곤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올라왔던 우리는, 내려가는 길에서도 아찔함을 느꼈다. 마주 오는 차를 피하며 진땀을 흘렸지만, 크리스마스라서인지 절에 깃든 고요함이 좋았다.
햇볕이 등에 내려앉는다. 커피 한 잔이 생각나 카페를 찾았다. 조용히 앉아, 따스한 빛과 향을 함께 느끼며 시간을 채웠다. 친구와 나, 모두.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에 절을 찾은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