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아침부터 지인과 함께 방문한 도서관에서 북 콘서트가 열린다. 특이한 책의 부제목에 끌렸다. 이 책은 누가 쓰고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왜 이야기가 필요한 것일까?
산복 빨래방은 부산진구 범천동 호천마을에 위치한 독특한 빨래방으로, 세탁비 대신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받는 공간이다. 부산일보 기자와 PD들이 2022년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운영하며 산복도로 주민들의 삶과 역사를 기록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언론의 혁신 사례로 주목받아 한국기자상, 한국신문상 등 여러 언론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산복 빨래방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강의실에 앉아 10분 정도 기다리니 앞치마를 한 남자 한 분이 강단에 오른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분이 작가구나. 그런데 저 앞치마는 또 무엇일까? 사전 정보 없이 방문한 나는 강연을 기다리는 내내 궁금증이 생겼다. "일부러 앞치마를 메고 왔어요."
작가의 이 말에 웃는 사람들. 그분들은 나보다 이 상황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산복 빨래방의 저자는 두 명으로, 둘 다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다. 김준영 기자는 2015년 부산일보에 입사해 가장 부산스러운 이야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좇았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한국기자상, 일경언론상, 한국신문상 등 다양한 상을 받았다.
이상배 기자는 2018년 부산일보에 입사해 부산 기초 지자체 일곱 곳과 각 지역의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지역민이 관심을 가질 보도를 하고자 했다. 예전 시절 산복도로에서 자란 추억 덕분에 이 빨래방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전한다.
강연은 그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탑재된 영상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산복 빨래방이 만들어진 계기와 호천마을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두 기자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산복 빨래방은 총 4명의 인원으로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빨래방을 차리기에는 조금은 희한한 위치에 가정집을 골라 리모델링을 했다. 가파른 언덕길과 계단을 올라 공사 자재를 운반하고 일반 가정집을 빨래방으로 꾸미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힘든 일을 네 명은 왜 시작했을까? 그것은 산복도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예전 그 시절을 들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유튜브 채널과 신문에 게재되었다.
이 책은 총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어쩌다 빨래방 사장이 되어버렸다', '쌓이는 빨래만큼 이야기도 차곡차곡', '빨래방에서 기자로 살아남기'이다. 각 챕터는 이야기처럼 연결되어 있고 눈에 보이듯 장면이 그려졌다. 빨래방을 찾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 빨래방 사장들이 배고플까 봐 부침개를 구워오는 분도 계셨다. 어딜 가나 비슷하듯이 처음에 빨래방을 차렸을 때는 동네 주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한 두 달이 지나면서 이 프로젝트 운영자 4명은 이미 호천마을의 주민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융화가 아닐까.
산복도로는 부산의 산 중턱을 따라 형성된 도로를 뜻한다. 부산은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평지가 부족해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었고,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독특한 산복도로 문화를 형성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오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당시 피난민들이 산 중턱에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었으며, 이를 연결하기 위해 산복도로가 조성되었다. 초기에는 도로의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비포장도로가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도로 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산복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가면 아래로 보이는 부산의 바다 전경이 사랑스럽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일부러 차를 타고 산복도로를 구경하기도 했다. 이곳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영상이 되고 그 영상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는 것. 북 콘서트를 보는 동안 그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과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 책 삼복 빨래방에 넘쳐난다.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다양한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또한 그 어르신들을 대하는 네 분의 모습이 따뜻했다. 마치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팔베개를 하고 듣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그분들이 살아왔던 예전의 삶이 보였다. 4명의 젊은이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그분들은 자신의 모든 정을 내어 놓았고, 그것이 헤어질 때의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이 빨래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이 빨래방은 계속 이어진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다른 것보다도 정이 많이 들었던 어르신들의 마음에 허전함이 들지 않을 터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많은 분들에게 전달되고,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부산의 과거, 아니 산복도로의 옛 일을 떠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산복 빨래방'이라는 책이.
어르신들의 눈과 입을 통해서 산복도로와 관련된 옛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