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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읽고

정승우 저

by 윰글

미운 내가 싫어. 달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왜 자신이 싫었을까?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 무엇을 해결하고 싶었을까? '내가 싫다'는 표현에서 소름이 돋았다. '스트레스로 지쳐갔던 시간들'이라는 말에도 공감이 된다. 파란색 표지 속, 달리는 남자는 누군가에게 부족한 산소를 공급하려고 질주하는 듯 보였다.


정승우 러너 작가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대학 기획부서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다. 46세에 러닝화를 신고 달리기 시작하며 느낀 생각들을 책 속에 담았다. 한 걸음이 인생을 바꾸고, 따뜻한 격려가 서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SNS를 통해 국경을 넘어 소통하며, 2021년 외교부 주관 공모전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에서 수상했다. 현재 바나나 스포츠클럽과 갱런크루에서 활동 중이다.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그는 어느 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고, 겨우 몇 달 만에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리고 2년 7개월 만에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달리기를 통해 치유와 위로의 글을 쓰면서, 지금 이 순간 삶이 버거운 독자들에게 이 책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책의 문장 하나하나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것이 바로 감성의 힘일까? '2020년 9월,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작가와 함께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라톤을 하면서 화장실이 급해지는 순간이 난감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문득, 마라톤 코스 중간에 간이 화장실을 배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즐거움'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느껴지는 행복감이 있다. 작가에게는 달리기가 그랬을 것이다. 책에서 "레깅스" 이야기가 나왔을 때 웃음이 났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레깅스를 입고 차 앞에서 달리는 모습을 보면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던 적이 있다. 러너들도 레깅스를 입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런 모든 모습이 책 속 사진들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최근 작가가 달렸던 마라톤 코스, 달리기의 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안내되어 있다. 같은 길을 달리는 누군가에게는 작가의 세세한 조언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벽에 출발해 10시간 만에 마지막 쉼터에 도착하는 모습, 그리고 달리기 중 만나는 따끈한 어묵탕은 상상만으로도 몸이 녹는 듯했다.

100km를 뛴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4시간 55분 동안 달린다는 건,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직접 뛰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작가의 삶. 그 보물 같은 시간을 이 책 속에서 엿본다. 그리고 계속되는 작가의 도전에 저절로 응원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트레일 러닝'

트레일 러닝은 산이나 비포장길을 달리는 것이다. 작가는 아무리 달리기를 좋아해도 이 영역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도로를 달리는 것도 힘든데, 산길을 달리는 건 더 힘들지 않을까?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끊임없이 도전했고, 어느새 나도 그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러너들이 길을 잃고 예상보다 더 달리는 것을 '알바'라고 표현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원래 코스보다 더 달려버린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것 봐, 나도 할 수 있다고. 내가 해냈다고." (177쪽)

어떤 일을 할 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 순간을 이겨내느냐 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달리는 당신은 아름답다." (186쪽)

아버지의 달리기에 두 딸이 함께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따뜻했다. 작가는 얼마나 흐뭇했을까? 그것은 단순히 함께 달린다는 의미를 넘어, 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뜻이다. 아빠로서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책 속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달리기 세상은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달리기의 이름을 적는다'

나의 하루에는 어떤 이름을 적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름을 붙인다면, 그 하루는 적어도 나에게 의미 있는 날이 된다.

"삶이 힘겨울 때,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210쪽)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작가는 달리기에 담긴 이야기로 독자에게 이미 위로가 되고 있었다. 모든 삶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작가의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우연처럼, 필연처럼."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마다, 그리고 삶의 모든 일에는 우연의 옷을 입은 필연이 존재한다. 작가에게 달리기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고통을 사랑할 것이다. 함께 달리며, 피니시 라인에서 모든 질문의 답을 찾을 것이다." (225쪽)

모든 러너들은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달린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책 속에는 주로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나는 가끔 우리가 사는 인생이 마라톤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서 달려가지만, 힘들거나 어려울 때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물 한 잔을 챙겨 마시기도 한다. 타인의 도움을 받지만, 끝까지 결승선에 도달해야 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자신이 미워서 시작한 작가의 달리기. 하지만 그는 계속 달리고, 또 달리고, 오늘도 달리고, 내일도 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위로가 되어 전해진다.


달리기를 통해 위로받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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