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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를 읽고

김영하 저

by 윰글

여행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이 여유가 없으셨고, 성인이 되어서는 스스로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저 일상생활에 매몰되어 나만의 좁은 영역에서 살아왔던 것 같다.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여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여행을 해야 하고,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김영하 작가는 '작별인사',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빛의 제국', '아랑은 왜',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등의 장편소설과 '오직 두 사람',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호출' 등의 소설집, 그리고 '오래 준비해온 대답', '다다다' 등의 산문을 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일을 좋아한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기이자 여행 에세이다. 여행했던 곳을 소개하고 그곳에서의 체험을 기록했다. 독자는 마치 김영하 작가와 동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여행지는 열 군데 정도이며, 이번에 출간된 책은 새로운 표지와 함께 코로나 이후에 추가된 새로운 챕터가 있다. 특히 '여행이 불가능한 시대의 여행법'이라는 챕터가 인상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 여행이 어려웠던 시기를 담은 내용인데, 지금은 그 시기가 지났지만 당시를 떠올리며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 시기에 인스타그램에서의 김영하 작가님과 북클럽으로 만나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라이브 방송이 참 좋았다.


책은 총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챕터는 여행 장소에 따라 글이 전개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소설가에게는 모두 작품의 소재가 되므로 여행에서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다는 표현이 재미있었다. 특히 음식을 먹을 때 맛있으면 좋고, 실패하면 글로 쓰면 된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또한 여행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팁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음식 주문에서 실패를 줄이고 싶다면 메뉴의 가장 위에서부터 고르면 되고, 재료는 닭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또 대부분의 여행기가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멀리 간 것 같지도 않았는데 눈을 떠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길에는 사람이 없었고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아 밖에서 밥을 사 먹을 수 없었다. 학교들도 휴교하여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꼬리를 물고 이륙하는 여객기의 객실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10쪽)


'일기가 에세이가 되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 중에 이 책 속의 글을 썼다. 여기까지만 썼다면 이는 일기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있었던 일들은 작가의 깊은 상념으로 연결되었다.


"모든 인간은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82쪽)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소설가인 김영하 작가는 책의 곳곳에 그만의 독특한 사상을 담았다.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닌, 여행을 통한 사유의 확장을 독자에게 요구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손의 형광펜이 바쁘게 움직였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89쪽)


집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집이 편안하지만 가끔은 떠나고 싶은 그 마음. 누군가 나와 같은 말을 한다면 깊이 공감할 것이다. 여행은 떠나고 싶고, 막상 떠나 있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그런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97쪽)


삶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기와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일종의 종합예술이랄까. 그중에서도 여행을 떠나는 일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만나는 일 같다. 일상에 쫓겨 살면서 늘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가 낯선 곳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다 달라진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여행 속 나의 모습을 드러내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에게 다양한 체험을 들려주고 싶을 때는 여행을 떠나라고 한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작가는 여행이 자신의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 모두는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여행자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잠시 이곳에 살다가 또 어느 여행지로 떠나게 될까? 그리고 그곳에서는 또 누구를 만나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니 행복해진다. 설레기도 하고 다음에 만날 사람이 누굴지 기대가 된다. 여행이란 편안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고난과 슬픔, 먹었던 음식, 함께한 누군가, 그리고 그 외 다양한 것들을 내 안에 채우고 돌아온다.


"지구에서의 남은 여정이 모두 의미 있고 복되기를 기원해 본다."(258쪽)


따뜻한 작가 김영하가 들려주는 여행 에세이, 이를 통해 그가 들려주는 인생의 상념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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