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80-0-0
이들은 단 네 개의 곡이 담긴 이 앨범을 이들의 1집으로 명명했다. 이 때는 ‘미니 앨범’이라는 단어가 아직 생경했던 시절이었다. 참 얄궂은 우연이다.
이 앨범은 생각보다 ‘저항’과 거리가 멀다. 세상의 무게에 짓이겨진 사람들을 표현하는 듯한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는 하이퍼 리얼리즘에 입각한 서사가 아니라 차라리 신파적 스토리텔링에 대한 거대하고 풍자적인 제유(提喩)처럼 들린다. (트로트 리듬을 바탕삼은 연주 또한 곡이 지닌 풍자적인 힘에 더욱 힘을 보탰다.)
이 곡에서 백현진은 그저 특유의 위악적인 보컬로 하나의 패러디를 말하고, 각설(却說)하고, 또 하나의 패러디로 넘어갈 따름이었다. 그는 이미 청자에게 힌트를 줬다. ‘책’에서 읽은 세상이 아름다운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래야 하냐고. 그는 그저 '남자'의 비극과 책에서 읽은 ‘아름다운 세상’ 사이에서 ‘혼란스럽다’라고만 말했을 따름이었다. 분노보다는 부조리한 상황을 더 조명하는 이런 제스처 덕분에, 이 곡은 저항이나, 소재주의, 반영론에서 벗어나 독특한 상징을 구축했다. (그렇기에 이 곡은 백현진의 자전적 이야기라 볼 수 없다.)
「담요 세상」, 「쏘세지 깍두기(웩!)」 또한 무엇에 저항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들리는 건 오직 ‘믿을 수 없는 화자’의 혼잣말(방백) 뿐이다. 도시락에 있는 소시지 반찬을 맛있겠다고 말하며, ‘짝꿍’이 싸온 깍두기 반찬을 맛없겠다고 놀리던 백현진의 목소리는 어느새 짝궁과 자신의 반찬도 바꿔 말하고, 깍두기를 맛있는 반찬으로, 소시지 반찬을 맛없는 반찬으로 바꿔 말했다.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하모니카 연주가 이 ‘장난’을 강조했다.) 「담요세상」은 폭력이 난무하는 초현실주의의 세상을 네 글자 안에 가둔 일종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아니 담요다.
원일의 (장구와 북, 워터폰을 비롯한) 타악기 연주는 이 ‘갈 곳 없는 울분’에 일종의 민중 예술적인 ‘요소’를 집어넣었지만, 이 앨범의 음악엔 민중 예술의 ‘특징’이 거의 두드러지지 않는다. 「담요세상」의 후반부를 장식한 풍물 연주엔 ‘목적성’이 불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을 편곡하며 여러 악기를 연주한 장영규는 그저 백현진이 만든 곡이 지닌 이상한 로우(Raw)함을 (드럼 파트를 국악 타악기 파트로 대체한) 밴드 사운드로 살렸을 따름이었다.
개성이 강한 이 앨범에서도 가장 예외적인 성격을 지닌 「녹색병원」은 희한하게도 내레이션이 노래보다 더 잘 들린다. 유일하게 건반 연주와 (이상은이 참여한) 코러스 사운드를 동원한 이 곡 또한 화자를 속이고 가두는 이가 누구인지 끝내 밝히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가둬진 상황, 빈둥거리는 상황,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계속 노래할 따름이었다.
이 앨범은 세상의 모든 질서를 거부하고 (사실상 자폐에 가깝게) 자존하며 또한 조소했다. 한편으로 이 앨범은 동시에 기묘한 방식으로 대중과 ‘접선 지점’을 찾았다. (그 때문인지 이 앨범은 불친절할 대목에선 친절하게, 친절해야 할 대목에서는 불친절하게 노래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어쩌면 이 앨범은 그저 이들이 세상에 내놓은 거대한 첫 농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농담은 어쩜 이렇게 날카롭게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지!